나, 고대 나온 남자다. 아내는 고대 나온 것으로 부족해, 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장인과 장모는 고대에서 함께 공부하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지난 18년 동안 나는 고대 근처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가끔 조깅을 해도 고대 운동장에서 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딸은 세상에 대학교라곤 고대밖에 없는 줄 안다.

제국대, 미션스쿨 그러나 고대는 민족대?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10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붉은 티셔츠의 무리를 보았다. 붉은 악마는 아니고 고대생들이다. 이틀간 열리는 ‘고연전’(어떤 이는 ‘연고전’이라 한다)의 첫날이었다. 저 신촌에서는 푸른 티셔츠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을 테다. 그들을 따라 잠실 야구장, 목동 아이스링크에 가버릴까? 문득 나는 옛 정체성이 그리워졌다.

고연전은 고대생의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는 최고의 ‘의례’다. 1993년 가을 고연전을 앞두고, 고대 축구팀 스위퍼 이임생은 국가대표팀 합숙소를 무단 이탈했다. 미국 월드컵 예선전이 코앞이었다. 국가대표 감독은 나가지 말라 했고, 고대 감독은 나오라 했다. 이임생은 태극마크와 월드컵을 포기하고, 붉은 줄무늬 유니폼과 고연전을 택했다. 곧바로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제명됐다. 1-0으로 고대가 이겼다. 이임생은 고대 총장과 함께 연단에 올라 모든 고대생의 환호를 받았다. “고대, 만세!” 그렇게 연호했던 것 같다. 고대의 정체성은 대한민국보다 우선한다.

그 정체성을 포함해 여러 집단 정체성의 융합이 바로 ‘나’다. 나는 집안의 장손이고, 대구에서 자랐으며, PD(방송국 직군 말고 운동권 말이다)들과 어울렸고, 한겨레신문사 기자고, 결국 한국인이다. 각 집단의 정체성을 섞으면 나를 얼추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맘에 쏙 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막내딸이었다면, 고향이 광주였다면, NL이었다면, 핀란드인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기수 고대 총장은 지난 9월6일 혼란스런 내 정체성의 일부를 설명해주었다. “국립대학(서울대)은 일본이 침략의 방편으로 만든 관립대학이었고, 연세대·이화여대는 기독교 전파의 수단으로 만든 대학이었다. 고려대는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건학이념으로 만들었다.” 총장이 직접 강의하는 이른바 ‘고려대學’ 첫 수업의 내용이었다.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이 제국대학·미션스쿨의 후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총장의 강의에 두 가지 잘못이 있다. 남의 흠을 들춰낸다 하여 내가 잘나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치장한다 하여 오늘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대 설립자 김성수는 가난한 선비 집안 출신이다. 19세기 말, 그의 증조부가 전북 고부의 대지주에게 장가가면서 가세가 폈다. 김씨 집안이 전북 고부 대지주와 연을 맺던 시기, 바로 그 고장에서 관리·지주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김성수 아버지대에 이르러 이 집안은 다시 한번 크게 일어섰다. 일본에 쌀을 수출하고, 경성방직을 세워 만주에 물건을 팔았다. 절대다수의 조선인이 경제적 궁핍의 밑바닥을 체험하던 1910~30년대의 일이다. 1943년 김성수는 이런 말도 했다. “대의에 죽을 때에 황민의 책무는 크다.” “나는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 그가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뜻으로 고대를 세운 것이 맞다 해도,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제대로 밝힐 필요가 있다.(<오마이뉴스> ‘김성수 집안 재산 축적기’ 참조)

교수는 영어 능력 필수, 와인 마시기 운동…

지난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김성수의 이름도 올라 있다. 책에 나온 친일 행적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중일전쟁의 의미를 알리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시국강좌 참여 △총독부 학무국 주최 전 조선 시국강연대회 참여 △경성군사후원연맹에 1천원 국방헌금 헌납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에 참여 △학도지원병 참가를 독려하는 다수의 글 발표…. “민족자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항력’의 논리로 그를 변호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때의 잘못을 근거로 평생을 매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과자라 하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저지른 잘못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 반성하거나 처벌받아야 ‘사회적 갱생’이 가능하다. 김성수는 그런 일 없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 부통령까지 지냈다.

경성방직·고려대·동아일보 등을 건립한 김성수가 일제 시기 ‘토착자본가’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하여 곧장 민족자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 땅에서 돈을 번 자 가운데는 민중의 고혈을 빨아 일제에 부역하며 일신의 출세를 도모한 ‘매판자본’도 있다. 식민지 조선의 최고 부자였던 그가 독립운동가에게 자금을 댔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가 일제에 침략전쟁의 자금을 쾌척한 것 역시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도 김성수는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될지언정, 순수무구한 민족자본가는 아니다. 그 대목을 빼놓고, 제국대학과 미션스쿨을 험담하면, 남들이 코웃음치기 마련이다.

한 세기 전의 ‘친일 여부’를 길게 논할 것 없이 세간의 비웃음을 사는 이유는 오늘에도 있다. 한국사·국문학을 포함해 모든 학과의 신규 교수 임용 때, ‘영어 강의 능력’을 요구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인문계열 교수들은 “한국 학생에게 국문학을 가르치는데 왜 영어로 수업해야 하느냐”고 개탄한다. 느닷없이 와인 마시기 운동을 펼치다, 막걸리 열풍이 불자 슬그머니 와인 행사를 접어버린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학생들은 “아무리 부잣집 자제들이 득시글대는 학교라도 어떻게 학생이 와인을 사마시겠느냐”고 개탄한다.

국내에서 최고로 비싼 공대·의대 등록금을 필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선도한 대학이 있다. 특목고 출신 학생을 집중적으로 입학시키고, 총장이 나서 “기부입학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고향 후배들은 “강남 부자들만 가는 대학이 됐으니, 지방 출신은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다”고 개탄한다. 이 대학은 지난 10여 년간 가장 ‘탈민족적’이고 ‘탈서민적’인 행보를 최선봉에서 걸어왔다. 권력자의 지배 논리를 관철시키는 게 제국대학이고, 자본주의적 서구 논리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미션스쿨이라면, 고려대는 이들의 ‘건학이념’을 오래전에 끌어안아버렸다.

고려대 교우회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교우회보를 배포했다. 교우회 간부들이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고도 지난 6·2 지방선거 때는 이 대학 출신 후보들의 지지를 요청하는 전자우편을 교우들에게 보냈다. 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권력에 줄을 댈 수 없다 하여 ‘고·소·영’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자기들끼리 권력을 독점하려는 ‘패거리 대학’이라는 비난이 먹혀들 자양분을 쉼 없이 제공하고 있다. 민족 고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民(의)敵’ 고대로 변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정권의 제적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그때

고연전이 치러지지 못한 적이 있다. 1983년 가을이었다. 당시 고연전은 수만 명의 학생이 ‘합법적으로’ 거리에 나설 기회였다. 경기가 끝나면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를 염려한 전두환 정권이 행사를 취소시켰다. 고대생들이 학생회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의 학내 진입과 연행이 불 보듯 뻔했다. 고대 총장이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대신 총장은 학내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학생 제군들, 몸을 다치지 마라.” 다음날 학생들은 무사히 학교 밖으로 나갔다. 총장이 나서 당국과 협상한 결과였다.

이듬해 가을 고연전 무렵, 전두환 정권은 총학생회 간부를 제적시키라고 전국 대학에 명령했다. 모든 대학이 그 명령을 따랐다. 오직 고대 총장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총장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정권마다 총리직 제안이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장준하와 함께 광복군을 이끌었던 그는 김준엽 총장이었다. 그 여파가 남아 있던 1990년대, 고연전이 끝나면 본관 앞 잔디밭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만취한 학생이 김성수 동상에 술병을 던지는 소리였다. 치기를 섞어 동상에 올라 볼일을 보는 이도 있었는데, 동상 주변의 깨진 술병 조각에 손을 다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시절의 고대를 일컬어 머리 나쁘고 가난한 시골 학생만 입학하는 친일 대학이라고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진 집 자식들의 질펀한 잔치가 돼버린 고연전을 보고, 어떤 이는 축제를 빌려 데모했던 20년 전이 그리울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야말로 고대 정체성의 정수라고 아껴주던 총장도 그리울 것이다. 과거가 아닌 오늘에서, 힘있는 자가 아닌 소외된 자의 편에서, 집단 정체성을 새롭게 가꾸지 못하는 대학을 졸업한 탓에, 나는 내 정체성이 많이 부끄럽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심화를 걱정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현상은 가치관의 양극화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대립이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보수 인사들은 텔레비전 뉴스도 보기 싫어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이번에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비치기가 무섭게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언론매체조차도 양쪽으로 갈려 있다. 보수 성향 신문이 있고 진보 성향 신문이 있다. 보수성향 신문은 진보 진영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하고, 진보 성향 신문은 보수층의 기득권 수호를 질타하기 바쁘다.

 정당도 보수 쪽과 진보 쪽으로 쫙 갈려 있다. 보수 진영은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의 편을 들고 있고,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야당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여당과 야당은 줄곧 팽팽하게 맞서서 싸움질만 해댔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민생문제 해결을 고민한다든가 시끄러운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시원하게 타협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여당과 야당도 그렇게 싸움질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자체가 정당들로 하여금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게 한 면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과 같은 사회적 현안을 놓고 국민들 사이에 찬성론과 반대론은 무성했지만 중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러니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당의 속성상 타협안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치관에 있어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것은 중간층이 약화됨을 뜻한다. 그러나 수적으로 보면 극보수나 극좌는 언제나 소수에 불과하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결집해서 자신들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면 이들이 언제나 선거 결과를 결정짓게 되어 있다. 소위 중위투표자 이론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중간층의 성향은 극보수도 아니고 극좌도 아닌, 중도노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결과도 온건한 중도노선으로 낙착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 정치판에서 보듯이 보수와 진보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락가락 하는 선거결과는 생각하기 힘들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선거결과가 널뛰기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중간층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줏대 없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2년 반 전에는 이들이 보수진영에 붙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압승하였고 이번에는 진보진영에 동조했기 때문에 야당이 압승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중간층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그 대신 보수층과 진보층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양쪽 끝이 너무 기세등등하니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이 그간의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중간층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기 전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여당은 이런 사람들을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고 마냥 느긋해 있다가 한 방 맞은 꼴이다. 여론 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크게 달라진 이유도 중간층 사람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이미 내려졌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가치관의 양극화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가? 진지한 연구가 필요한 어려운 질문이다. 그냥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이해관계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잃은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말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상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노출된다. 그 많은 정보를 모두 우리의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적절히 취사선택하게 되는데, 이 때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과 잘 부합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잘라버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이 소위 인지부조화 이론의 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기득권 유지에 유리한 정보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시장의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정보나 자료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편식을 하다보면 보수 성향의 인사들은 점점 더 보수화되고 보수 세력 확장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물론, 이런 논리는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도 편식을 하다보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진보 이념을 열심히 전파하게 된다.

  얼마 전 인지부조화 이론에 대한 얘기가 어느 신문에 실렸다. 요지는, 천암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 때문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마치 진보 진영 사람들에게만 인지부조화 이론이 적용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보수층에게도 에누리 없이 적용된다. 오히려 보수층을 덮친 '인지부조화의 덫'이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스럽다. 자칫 체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도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에 경도된 금융 실무가와 정책 당국자들이 금융대란의 징후를 줄기차게 외면한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는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 모두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가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식인부터 앞장서서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양 진영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특히 중간층에 있는 지식인들이 기죽지 말고 떳떳이 나서서 양쪽의 인사들의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 한 쪽 날개로 날다가는 기우뚱거리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가 양쪽 날개로 착실히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좌우를 아우르는 건전한 중간층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우선 가치관의 양극화부터 완화된다면, 경제적인 양극화(빈부격차)도 점차 누그러질 것이다.

 

 

SBS스페셜팀이 유시민 전 장관을 만났다. 나레이터는 유시민의 인터뷰 첫 마디를 들려주면서 '냉정'이란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유시민이 자신에 대한 평가에서 '냉정'했다는 말이다. 유시민은 참여정부에서 최연소 장관을 지낸 데엔 운과 수완이 따른 것도 있을 것이라며 세상의 시기어린 평가를 일부분 인정한다. 




그리고 유시민은 "대통령한테 아부해서 장관했다 이렇게 보는 분들도 있"는데 그걸 객관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자신에 대해 냉정했던 유시민은 엘리트에 대한 평가에선 관대함을 보여준다. 엘리트가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엘리트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그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더 나아가 그들이 보수적인 것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보수가 압도적으로 강한 사회에서 출세 루트는 보수세력에 가는 것 뿐인데 그걸 탓해서 어쩌겠냐는 거다. 



 그들은 앞서지도 뒤떨어지지도 않은 한국 사회의 평균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유시민의 말은 결국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이 모든 걸 다 바꾸겠다고 분통을 터트리는 걸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유시민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패배주의자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서 유시민은 보수 엘리트의 불편한 속살을 건드린다.   



유시민은 우리 사회에 주류들만의 세상이 있다고 고발한다. 없는 직책 만들어 자리에 앉혀놓고 용돈 주는 식으로 주류들끼리는 관계를 맺어온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걸 당연시 하며 살아온 그들이 이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엔 이 현실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한 세대 후에는 그런 모습이 아니기 위해" 우리가 노력을 해야한다고 유시민은 말한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점진적 개혁에 보수 엘리트들도 동의해야 한다는 부탁에 가까워 보인다.  


조였다가 풀어지더니 이내 다시 조여들어온다. 존경과 편안함을 동시에 누릴 수는 없다는 유시민의 일갈이 보수 엘리트의 가슴을 깊숙이 박힌다.     


출 세 만 세 - 4부 리더에게 길을 묻다

마지막으로 SBS.스페셜은 유시민에게 한국 사회가 필요하는 리더의 모습에 대해 묻는다. 유시민은 그에 대해 수오지심이라고 답한다. 


누가해도 오류는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불가피한 오류를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리더는 오류를 인정하고 교정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이는 운동권이라 그러고 어떤이는 객기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글을 올린 학생의 태도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런 학생의 주장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보수 대 진보의 대결 양상이 뚜렷해지는 것 같다. 진보세력의 힘이 이제 보수세력과 맞장을 뜰 정도로 우리 사회가 진보한 것 같기도 하지만,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 꼴통'들의 변함없는 행태나 자칭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 아직도 까마득한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보수(保守)가 보호하고(保) 지키고자(守) 애쓰는 것이 전통의 가치나 사회 안정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어제 오늘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백 보 물러서서 이들 기득권 지킴이들을 보수라고 부르기로 하자.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일 뿐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김규항) "한국의 보수는 이념이 아니라 반공이라는 식칼을 들고서 제 기득권을 지키는 일종의 처세술이었다."(진중권) 이 시대 독설가들에게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수모를 당하는 진정한 보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오늘날 자칭 보수들은 거의가 수구(守舊)라고 봐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와 냉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진정한 보수가 정치세력화 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진정한 진보는 있는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와 평등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나이나 성, 피부색, 민족,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 그것을 진보라 부른다면 이 땅에 참된 진보주의자는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보수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진보세력은 그 대항 이데올로기로 민족을 내세우면서 시대적 한계를 드러냈다. 민족주의가 서구사회에서는 파시즘과 함께 몰락하면서 보수의 이념조차 되지 못하는 마당에, 자칭 진보를 외치는 우리 사회의 좌파들은 민족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냉전 상황 속의 현실이었다.

보수도 진보도 그 색깔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판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색깔 논쟁을 벌이면서 그나마 보수와 진보의 양당 구도로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다시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사람이 있듯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분법은 실제 삶 속에서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스스로 이런 이분법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독일에서 귀국한 송두율 교수를 둘러싸고 새삼스럽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색깔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연이은 대선 패배로 코너에 몰린 것 같던 보수세력이 작심한 듯 반격에 반격을 거듭하더니 이제 진보세력이 또 다시 코너에 몰린 느낌이 든다. 거의 평생을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 친구들이 있는 고향에서 살고 싶어 돌아온 한 인간을 이념의 그물로 사로잡아서는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려드는 이 땅의 보수세력들을 보면서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죽기 전에 좀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조국땅을 밟은 한 인간의 바람이 이루어지기에는 이 땅이 아직도 너무 비인간적인 곳이다.

이런 시대에 교육다운 교육의 길을 고민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앞당기는 가장 확실한 길은 나부터 먼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과연 '사람답게' '산다'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다움과 답지 못함의 경계는 어디며 삶과 죽음의 경계는 또 어디일까?
망명객만 경계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계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과 북의 경계만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 비인간성과 인간성,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가로놓인 외줄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것, 달리 말해 죽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깨어 있으면서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원들 출근시간 아침 8시 30분,





하지만 야마다 사장은 10시가 넘어서 출근한다.





괴짜사장 야마다, 그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벽면을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연극 포스터,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매일 아침 그의 책상엔 일본 전역에서 보내 온 연극포스터들이 배달된다.





200장이 넘는 포스터 중에서 날짜 지난 것을 찾아내기.





그의 하루는 전날 끝난 연극포스터를 떼어내고

새로 막이 오른 연극포스터를 붙이는 일로 시작된다.




회사를 돌아보는 게 사장님 일이 아닌가요?





회사는 안 돌아보세요?






성공한 CEO라면 회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사무실에 틀어박혀 연극포스터만 붙인다니...




그래도 회사가 돌아가나요?



야마다 사장, 그의 나이 일흔 여섯.





세상의 상식과는 정반대쪽에 서서 그는 회사를 만들었고

그가 만든 회사는 일본 최고의 중소기업이 되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창원쯤 되는 곳.

사방이 논으로 둘러싸여 있다.





창립 42주년을 맞은 미라이는 전국에 30여개의 공장과 영업소를 가진
전기설비 제조업체이다.





대단한 기술은 없다.

제품의 대부분은 중국이나 다른 중소업체에서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성과급 팍팍 주어가며 영업에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라이 연매출은 2500억 원.







이런 기업에서 야마다 사장에게 한 말씀 청한다고?









정전이 아니다. 쉬는 날도 아니다.





다소 어두운 사무실.





낮에는 웬만해선 불을 켜지 않는다.





형광등엔 담당자 이름까지 달아서 켜고 끄는 것을 관리까지 한다.








300명이 넘는 사원이 근무하는 본사 전체 건물에 복사기는 딱 하나.





네. 정말 한 대밖에 없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되요.





서류봉투 한 장도 발신인, 수신인을 계속 바꿔주면서 열 번 이상 재활용.








백 엔짜리 돋보기안경, 안경다리도 부러져서 테이프로 감아져있다.





다른 안경은 클립으로 다리를 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한 여름에도 에어컨 설정온도는 27도.





70평생 자가용이라곤 사본 적이 없다.






이런 야마다사장의 미라이공업이 돈을 물 쓰듯이 하는 데가 있는데.





미라이 본사의 식당에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6개 방송사와 18군데 신문에 소개된 이 행사는

미라이 전 사원 해외여행 프로젝트 !





자그마치 회사 돈 25억이 투입됐다.





5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 사원 무료 해외여행을 실시한다.





한 번 떠나는데 20억은 기본,

전기세, 복사비 아껴서 사원들의 사기를 얻는 것이다.









인쇄비가 아깝다면서 식권도 만들지 않으면서 1년에 한 번씩 직원들 국내여행도 보내준다.

노는 것에 관해서는 미라이가 일본 제일이다.





3달에 한 번씩 열흘짜리 휴가가 있다.

게다가 샌드위치 데이는 무조건 논다.





그런데도 사원 평균연봉은 6천만 원. 일본의 웬만한 대기업 수준.





많이 놀게 해주고 돈도 많이 주다니...





미라이에는 어르신이 많다.

정년이 70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오는 게 즐거워요.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즐거워요.





단 한 명도 비정규직이 없고, 단 한 명도 명예퇴직이 없다.





70세까지 잘릴 염려 없고, 일본 회사들 중에 가장 많이 놀게 해주고,
월급도 많이 주는 미라이공업.









퇴근 시간 오후 4시 45분.

일본에서 업무시간이 가장 짧다.





잔업금지, 특근도 없다.




휴일인데 왜 나오셨어요?






전사원이 해외여행을 가서 공장 문을 닫았을 때도 야마다 사장은 혼자 출근해
표어를 붙였다.





문을 닫고 다니라는 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지는 않나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중요한 것이구나 라고 생각해요.
다들 익숙해 졌어요.






회사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문구.









이 진지한 분위기는?

꼭 시험 보는 것 같은 이 풍경은 사원들이 제안한 제안서를 심사하는 모습이다.

미라이의 월례행사.





한 눈에 봐도 허투루 쓴 구석이 없는 제안서들,

신제품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제안자들이 이렇게 열심이니 심사를 설렁설렁 할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열심히들 할까요?

이런 풍조니까요, 회사 분위기가 원래 이래요.





아이디어가 회사제품에 반영되기도 하나요?

최종적으로 제품을 만들 것인가 하는 기획회의가 열리는데
제안이 채택되면 제품화가 됩니다.





사원들은 다양한 제안을 한다.





몸에 좋은 낫토를 메뉴에 넣어 달라.





매 해, 만 건 정도의 제안을 합니다.





견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전병. 제안이 채택된 것 중 하나다.





초록색 마크가 붙은 것은 사원들의 제안을 현실에 적용해 작업의 효율과 능률을 높인 것들이다.





사원들의 아이디어가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여기.





미라이 생산품의 98%가 특허상품.

실용신안과 의장은 신청 중인 것까지 포함해 2300건이 넘는다.





건물 벽속에 들어가는 설비.

고장이 나면 위치를 찾느라 벽을 뚫어야 했던 문제를 쉽게 해결하게 되었다.





시장 점유율 1위인 이 나이프도 사원 아이디어.





기존의 전기나이프는 모두 접었다 폈다 양손을 사용했는데 이 칼은 한 손으로 충분하다.

미라이 제품의 공통점은 단순하지만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7일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가 미국의 제 4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많은 이들이 힐러리 클린턴(Hillary Diane Rodham)의 행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오바마와 경합을 벌였던 그녀지만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학창 시절부터 공화당에 심취했다. 그런 그녀가 민주당으로 전환한 계기에 대해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힐러리의 선생님은 새로운 토론 방식을 제안했다. 공화당 지지자인 힐러리에게 민주당의 변호를 맡기고 민주당 지지자인 학생에게 공화당의 변호를 맡겨 서로 토론을 벌이게 했던 것이다. 민주당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던 힐러리는 민주당의 역사와 사상, 활동에 대해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서 몇 날 몇 일 동안 민주당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던 그녀는 이 과정에서 민주당에 대해 잘 몰랐던 부분이나 오해했던 부분에 대해 바르게 알게 됐고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게 됐다.

흔히들 ‘잘못된 앎은 무지보다 무섭다’ 혹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크고 작은 정치적 현안에 대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사실 여부와 각 진영의 의견을 철저하고 또 객관적으로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힐러리가 민주당에 대해 조사해 볼 기회가 없었다면, 혹은 아버지의 신념을 그대로 물려받아 맹목적인 공화당 지지자로 남았다면 오늘날의 힐러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지 깨달았다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정립하는 것, 더불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비판적 지지자’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지는 시기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조차 극좌의 주장이다. 북유럽 사민주의자를 한국에 옮겨 놓으면 아마도 한나라당과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그리고 조·중·동 등은 세상에 이런 새빨간 악질 빨갱이를 그냥 놔두냐고 온통 난리법석을 칠 것이 분명하다. 결국에는 하다못해 인혁당이라도 다시 불러내와 감옥에 처넣거나 처형하는 그림이 눈에 훤하다.
 
  그만큼 한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반공 정신병동 사회란 올가미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좌도 우도 한국전쟁의 피비린내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런 극단의 대립은 학문과 사상이 그야말로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시초부터 절멸시켜 버리는 고엽제이다. 고엽제가 뿌려진 불모의 땅에서는 기형아, 조숙아, 미숙아들이 속출한다.
 
  시대착오의 뉴라이트가 그런 한국형 기형의 한 예이다. 식민지 지배 긍정론은 사실 마르크스의 전매특허였다. 전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식민지 근대화론만을 차용해 친일파 친미파를 넘어 숭일 숭미파로 변신하고, 사회주의를 증오하는 이런 기이한 이론을 도대체 이론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 짝을 맞추어 뉴레프트를 해야 한다며 북유럽 사민주의의 수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이없는 상상임신이 아닐 수 없다.
  

  김수행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에 수록된 신정완의 스웨덴 사민주의 분석은 왜 북유럽 사민주의가 한국에서는 태어나기 어려운지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민주의란, 그리고 영국 등의 복지국가 체제란 제3세계 민중들의 피와 땀, 제3세계의 천연자원을 무자비하게 수탈하지 않으면 안되는 착취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이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스웨덴의 복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라는, 자원을 제공해 주고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비서구 식민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스웨덴 사민당은 경제성장만이 복지국가 체제를 가능케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웨덴 사민당은 볼보라는 자동차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대재벌을 키웠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성장 방식이었다. 사회주의를 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를 육성(?!!)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경제가 침체되고 성장이 중단되면 사민주의와 복지국가는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반 스웨덴에 금융위기가 닥치고 부르조아 정부가 집권하게 되면서 기존의 복지정책이 대폭 수정된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유럽의 사민주의가 근원에서부터 생태 환경 문제를 외면하거나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까닭은 바로 이같은 강한 성장주의 때문이다. 경제성장은 생태적 전환과는 어울리기가 어렵다. 유럽 녹색당이 독자 정당 노선을 천명하게 되는 연유도 근원을 따지면 이런 사민주의 정당들의 뿌리깊은 성장물신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북유럽 사민주의를 비롯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녹색당이 제기한 생태주의 전략을 대폭 수용하긴 하지만, 이른바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전략으로 탈바꿈시켜 마치 생태주의를 수용한 듯이 그럴싸하게 포장을 바꾸었던 것이다.
 
  자,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와 유럽 사민주의를 가능케 했던, 에너지와 각종의 천연자원들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을 비롯한 식량정점론과 각종의 정점론(Peak Everything)이 그것이다. 기후변화 한 가지만 놓고 보아도 이제 더 이상의 경제성장은 범죄가 되고 마는 그런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제 정신을 가지고 사회와 생태 문제를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체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서 석유와 천연자원은 무한히 착취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민주의 복지체제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민주의 복지 체제란 심하게 말해 국가가 착취의 떡고물을 일부 노동자에게 나누어주는 체제이다. 진정한 복지는 그런 의존형 인간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식 복지체제일 수 없다. 복지는 국가가 아니라 자립과 자치의 지역공동체에 있다.
 
  사민주의 복지국가론에서는 심지어 아이들을 돌보는 육아까지도 '돌봄 노동'이라 해서 돈으로 계산하고 국가가 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가가 출산과 교육을 담당하는 거대 빅브라더 체제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우애와 협동의 사회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상상력과 논쟁은 서구에서 직수입한 이론들의 소개와 적용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분석, 비판한 서구의 이론은 타산지석으로 우리가 배워야 한다. 그러나 지식과 배움은 거름을 만들어 줄 뿐, 정작 씨앗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와 문화와 토양에 맞는 씨를 뿌려야 한다.
 
  김수행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은 그런 토종의 씨앗을 뿌리려는 조그마한 시도로 보인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갑갑했다. 대부분의 필자들이 여전히 자본주의-사회주의 패러다임의 틀 안에 답답하게 갇혀 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민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우물안에 함몰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도 직전의 다국적기업 해외지사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파산당할 리먼을 사려 했던 산업은행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 
   
 
 
  박승옥/시민발전 대표

  지난주 7월 30일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공정택 후보에게 패했다. 이로서 학생간 경쟁을 심화하고 사교육비를 치솟게 만드는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수도 서울에서 정면으로 막아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이번 교육감선거 결과는 6월 4일에 있었던 재보선 결과와 매우 대조된다.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이해식 후보는 과반 득표에 성공하며 한나라당 후보를 13% 차이로 여유있게 따돌렸다. 그런데 7월 30일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는 보수 후보가 4명으로 난립한 상황에서 사실상 '촛불후보'로서의 상징적 지위를 독점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택 후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6월 4일 선거와 7월 30일 선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를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물론 7월 30일의 사회적 분위기를 촛불정국이 한창 가열되고 있던 6월 4일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6월초나 그때나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는 바닥을 기고 있으며, 더구나 '교육'은 이명박정권에 대한 불만이 제일 먼저 터져나온 영역이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미친 소 미친 교육'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거리로 먼저 나섰겠는가.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전교조'와 '강남'의 프레임을 넘어
 
  교육감선거가 끝난 뒤, 많은 언론에서 선거결과를 '전교조'와 '강남'이라는 두가지 용어를 이용해 설명했다. 주경복 후보를 '전교조 후보'로 낙인찍은 보수진영의 집요한 공격 그리고 이에 호응한 '강남 아줌마'들의 몰표가 공정택 후보를 당선시키고 주경복 후보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전교조 공포증' 조장이 주효했다는 주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보수진영에서 '전교조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기 전에도, 여론조사상 주경복 후보가 공정택 후보에게 거의 우위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남 몰표'에 대한 해석 또한 매우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강남에서 두배 이상의 차이가 난 것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8개 자치구에서 공정택 후보가 우위를 보였다. 주경복 후보가 우세를 보인 지역에서도 공정택 후보와 10% 이상 차이가 난 곳은 3개 자치구에 불과했고, 5% 이내의 접전을 벌인 지역이 많았다. 즉 공정택 지지자들의 결집도보다 주경복 지지자들의 결집도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다.
 
  결국 '전교조'와 '강남'을 이용한 설명은 부정확하고 기껏해야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이번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은폐할 위험성이 있다. 나는 주경복 후보가 공정택 후보에게 패배한 것은 이번 선거가 '정책선거'였기 때문이라고 보며, 교육감선거의 특성과 한계를 정밀하게 고려하지 못한 주경복 후보 본인과 선거캠프의 안이하고 게으른 정책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책선거에서 패한 주경복 후보
 
  강동구청장 선거는 명백히 정책선거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구청장이 한나라당 출신이건 민주당 출신이건 간에 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투표를 통해 순수하게 이명박정부에 대한 반감을 대중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육감선거는 달랐다.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의 정책은 거의 극단적으로 상반되었으며,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서울시 교육이 크게 달라질 상황이었다. 따라서 주민들은 단순한 '이명박 심판론'에 경도되지 않고 '직관적으로' 이해득실을 계산했고, 2개월 전에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던 강동구민들이 이번에는 이명박 교육정책의 화신이라 할 만한 공정택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택 후보의 정책에 비해 주경복 후보의 정책이 가진 약점은 무엇이었는가? 주경복 후보의 정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상당히 치명적인 약점이 여러가지 있다고 보았다. 내 눈에 띈 약점들 가운데 선거결과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 요소를 세가지 정도 짚어보자.
 
  첫번째 약점은 정책이 전반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정책만으로 보면 70대의 나이든 공정택 후보가 오히려 더 정력적이고 많은 일을 추진할 것으로 보였다. 자립형 사립고, 국제중학교, 일제고사, 수준별 이동수업, 교원평가, 영어교육개혁 등 하나하나 뜯어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것들이고, 스스로 만들어낸 창의적 정책이라기보다는 이명박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서울시의 교육을 나름대로 뒤바꾸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반면 50대의 젊은 주경복 후보는 반대하는 것만 많이 눈에 띌 뿐 도대체 서울시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공정택 후보는 스스로 포지티브 공약으로 무장한 채 상대방에게 '전교조 후보'라는 네거티브 올가미를 던짐으로써 상당히 효율적으로 선거를 이끌어갔다.
 
  두번째 약점은 '강남용 공약'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남'은 단순히 지리적인 영역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선거결과가 보여주듯이, 강남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강남 이외의 지역에도 상당히 폭넓게 분포해 있다.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은 공정택 후보는 강남 이외의 지역에서도 상당히 선전할 수 있었던 반면, 이러한 지향과 가치관에 반하는 주경복 후보는 강남 지역에서 참패를 자초했다. 강남적 가치관에 따르면 어쨌든 수월성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경쟁이 필수적이다. 이같은 강남적 가치관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수월성'을 수용하고 '경쟁'을 버리는 전략이 필요했다. 즉 수월성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되 최대한 경쟁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이같은 '비경쟁적 수월성 교육'에 가장 눈에 띄게 성공한 나라가 바로 핀란드이다). 그런데 주경복 후보는 '수월성'과 '경쟁'을 모두 버리는 오류를 범했고, 이는 대중에게 정책의 현실성을 불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세번째 약점은 장안의 최대 관심사인 영어교육 관련공약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경복 후보 선거캠프가 설마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문제점이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닐 텐데, 현재의 영어교육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정말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반면 공정택 후보는 공식 선거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영어, 학교에서 책임지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대조를 보였다.
 
  교육감이라는 직위의 딜레마
 
  그런데 이같은 주경복 후보의 정책적 약점들이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주경복 후보 진영이 이 선거의 의미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상당히 잘못된 전제를 하고 있었다고 추정한다. 교육감이 가진 막강한 권한을 강조하기 위해 '교육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곤 했는데, 주경복 후보 진영에서는 이를 단순한 수사로 여긴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고 믿은 것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교육감은 초중등교육에서 거의 전권을 휘두를 수 있지만, 대학교육에서는 전혀 권한이 없다. 즉 제 아무리 초중등교육에서 경쟁을 경감한다 할지라도, 대학입시 경쟁은 교육감이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입시 경쟁은 서울 학생들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경쟁을 경감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동의할지 몰라도 그 결과 자기 자녀들의 대학입학 실적이 저하될 가능성은 용인하지 않는다. 이 엄중한 사실에 대하여 주경복 후보 진영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는지 의문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전교조'와 '강남'이라는 두가지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강남을 타자화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게으른 설명을 제공할 뿐, 실질적으로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천적 지침은 없다. 내가 보기에 주경복 후보 진영은 교육감이라는 직위의 한계를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즉 대학입시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초중등교육만 좌우할 수 있는 교육감의 근본적 딜레마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내세운 정책은 결과적으로 반대파의 집결을 유도해내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지지자의 집결을 유도하는 데는 한계를 노출하고 말았다.
 
  이로써 이명박정부 교육정책의 기세를 꺾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일단 사라졌다. 여러개의 국제중과 자사고 설립이 인가된 뒤인 2010년에 다시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교육감이라는 직위의 딜레마와 선거정책의 대중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10년에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저지할 기회를 잡기는 더욱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 나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이인규 후보의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선거운동 방법론상의 견해 차이로 7월 4일 정책위원장직을 사임했다. 사임 직전인 7월 3일 《프레시안》에 〈주경복 후보는 촛불을 하이재킹하려는가?〉라는 글을 통해 주경복 후보의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이인규 후보의 정책은 시민사회단체들의 공동 정책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 필자      
 
 

개혁도 보수도 접고 바른 의제를 찾아라
이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긴호흡으로 생각해야 할 때


개혁이 사회의 주된 이슈이던 시기가 지나갔습니다. 명백히 지나갔습니다.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장로 대통령이 오히려 개혁 세력의 대안이 되어 등장했습니다. 한동안의 촛불집회로 대통령은 스타일을 구겼지만, 그렇다고 촛불집회가 개혁의 소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냥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말일 뿐입니다.

사회가 이런데 교회가 이런 사회에 대한 해석학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상당히 개혁적이었던 분들이 나름대로 상당한 이유가 있어서 오히려 보수의 자리에 섰습니다. 그들은 개혁을 반대하는 선봉이 된 것 같습니다. 교회의 개혁세력은 여전히 개혁이라는 입장으로 사태를 보려고 하죠.

이런 입장들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정부분 사회와 교회를 견인해 왔고, 그에 따라 사회와 교회가 진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개혁이든 보수이든 그냥 접어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대신에 의제라는 말을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기총 못지 않게 보수적인 카톨릭 지배층과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의미있는 진보의 길을 걸어가는 정의구현사제단이 공존하는 것이 절묘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집안에서는 다툼도 많고 서로 싸우기도 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뭔지 공조하고 있다는 인상이 더 짙습니다. 이것은 개혁의 틀로 보겠습니까, 아니면 보수의 틀로 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것을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이 다 의제인 것이죠.

요즈음 개신교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저는 이것을 "잠재적 기독교인층"이란 개념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산업화가 진행되는 한편에 민주화가 함께 하였던 시대에 개신교 교회는 풍부한 잠재적 기독교인층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잠재적 기독교인층이 없습니다. 어쨌든 개신교 교회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교회다운 그 무엇을 갖출 때 바깥 사람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이 개신교는 너무 약한 상태입니다.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손님맞이를 위해 무엇을 돌아보아야 하겠느냐 하는 것이죠. 우리는 예배도 잘 드려야 하고, 성경공부도 잘 해야하고, 영성훈련도 해야하고, 서로 아름다운 교제도 하여야 하고, 세상에 나가면 낯설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교회의 의제입니다.

저는 교회가 합심하여 개혁도 보수도 접어들이기를 촉구합니다. 정말 긴 호흡을 가지고 담담하게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을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개혁을 하느라고, 혹은 무엇인가를 지키느라고, 그 쪽 방면으로만 마음과 말과 손이 다 쏠려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이 의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알고 보면 이 말은 참 애매모호한 말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사회와 교회를 보면서 이게 무엇인가 하고 물음을 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대답이라고 봅니다. 이 모호한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여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의제에 대하여 더 이야기하게 되겠죠. 이렇게 해서 기독교 교회가 새로워진다면 저는 그것이 교회의 비약이라고 봅니다. 그 비약이 어떤 비약이 될 것인지 미리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야 한다고 봅니다. 단지 우리가 우리 시대는 알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시대가 다 흐른 후에 책임을 다한 시대의 사람들로 불리기 원한다면, 우리는 이제 눈을 돌려 우리의 의제에 대하여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어떤 비약의 방향을 내 놓기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의제와 그를 통한 비약이 요구되는 시기에 아주 중요한 한가지는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환원주의란 다시 의제를 개혁으로 혹은 보수로 돌려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아주 시시콜콜한 것까지 교회가 해야하는 일은 다 들추어서 해야하는 것이죠. 자꾸 이것을 혹은 개혁으로 혹은 보수로 돌려버리면, 우리는 늘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청년을 어린아이들을 진지한 기독교인으로 세울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묻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의제가 요청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의로운 사람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조차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 하셨습니다.

지나치게 무엇을 지키려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은 분명 새로운 길로 과거의 길을 넘어서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긴 호흡으로 늘 나는 무엇이 부족한지 그것을 묻는 기독교인, 그래서 내 할 일을 분명히 찾아내는 기독교인, 그것이 기독교인의 장래입니다.

안영혁 / 예본교회 목사

한국의 보수와 한나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반공보수의 한계를 넘어 보수의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해야

1.들어가는 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 사회는 비극적인 한국전쟁과 군사독재, 1987년의 민주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현대사를 내달려왔다. 한국 현대사는 민주주의의 확장의 역사인 동시에 경제적 부(富)의 성장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는 인권과 같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가 신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고,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횡행하던 인권유린 같은 일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안타깝게도 퇴행적인 형태의 이분법, 즉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라는 낡은 틀에 갇혀 여전히 분열을 반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의와 불의의 대결 전선에서 보수와 진보 중 누가 정의의 편에 서느냐 하는 새로운 형태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보는 보수를 공격하기에 여념이 없고, 보수는 진보를 몰아붙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진보는 아직 보수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보수는 이제 주도권이 진보에게 넘어갔다는 상실감에 젖어 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의 만남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치열한 전투와 대결이 반복되는 양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가 적대적 상대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이 같은 소모적인 논쟁의 덫에 걸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잘하기보다는 상대를 공격해서 반사이익을 얻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기 성찰적 반성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모색을 시도할 때 비로소 진보와 보수의 논의도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던 보수의 공과를 따져보고, 그런 보수를 이끌어온 보수정당으로서의 한나라당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함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가 현 시점에서 지향해야 할 바를 간략하게나마 제시해보고자 한다.

2.진보의 보수 비판은 정당한가

현재 한국의 보수세력은 흔히 “수구” “반동” 등으로 불리면서 부도덕과 부패의 대명사로 규정되어 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굴곡이 많았던 한국 현대사에서 실질적인 주역이었던 보수에게 이러한 평가가 주어진다는 것은 몰역사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충분한 근거를 가진 비판으로서 이를 전면 부정할 수만은 없는 곤혹스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 보수의 역사적 배경을 잘 살펴보고, 그 공과(功過)를 함께 규명하는 과정에서 보수의 새로운 소명을 찾아가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진보진영은 한국의 보수를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채 형성된 왜곡된 역사적 산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진보진영이 가지고 있는 보수진영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에 따르면, 보수정치세력은 1945년 이후부터 4·19 이전까지 만연했던 우익정치 폭력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해방 직후 적극적 친일세력이 국가성립 과정에서 배제되지 못하고 우익애국세력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진영의 편협한 인식을 따라가게 되면, 대한민국은 결국 친일파와 민족분열주의자가 세운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하지만 보수는 그 공과를 넘어서 영욕의 한국 현대사를 앞장서서 이끌고 온 실질적인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분단, 한국전쟁을 지나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이 이룬 역사적 성취는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국 과정에서 극좌와 극우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민족적 역량의 부족으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것은 실로 뼈아픈 일이다.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을 용납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남한의 선택은 미국의 주도 하에 단정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1공화국을 설계했던 주요 인물은 조봉암이나 이범석 같은 좌우를 망라한 독립운동 세력이었다. 물론 근대적 국가로 새롭게 출범하는 제1공화국의 성립 과정에서 부일친일세력이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마련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위안으로 삼을 만한 것은, 부일친일세력이 정권 형성의 주역이라기보다는 동원된 세력으로서 보조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건국을 친일세력의 집권 연장으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미국에 예속되어온 굴종의 역사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진보진영의 편협하고 단편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미국에 대한 ‘편승과 굴종의 역사’가 아닌 ‘선택의 역사’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애치슨라인에 저항하여 강력한 한미동맹을 구축해 한국전쟁에 임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중심의 반공세계 체제로의 편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공산진영 대 자유진영이라는 세계 대결 속에서 대한민국은 자유진영을 선택하는 친미전략을 추구했다. 이러한 선택이 예속적 선택이라는 평가는 자주적 선택의 전형인 북한의 실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몰역사적이고 관념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한국 보수의 선택은 세계사적 시야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989년 소련의 몰락 이후 세계사적 차원에서 전개된 냉전 종식이라는 역사적 파고는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한 자유주의적 가치의 승리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결론적으로 과거 대한민국 보수의 선택이 승리를 만들어내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의 가장 큰 오점으로 흔히 부정부패를 든다. 그 타깃은 주로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기업인들이다. 헌법에 명시된 사유재산권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음성적 정치자금을 통한 정치인 매수, 제왕적 오너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대기업의 중소기업 고유업종 침탈, 폭리를 위한 담합, 작전을 통한 주가조작, 회계장부 조작, 노조활동 탄압 등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비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그렇게 비판하는 진보진영의 물적 토대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인들의 잘못을 따진다면, 절대 빈곤에 시달리던 대한민국을 세계 11위 규모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토대를 다진 기업인들의 공로 역시 올바르게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에 한국의 보수는 혁신의 주체로서 맡은 바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산업화 시대의 한국 보수의 핵심세력은 농업중심 경제 시스템에서 산업화 시스템으로의 변모를 모색하던 혁신 관료와 기업인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경제발전을 모색했던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농경중심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의 혁신을 기획했고 주도했다. 한국이 행정, 교육,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근대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이러한 혁신을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는 삶의 양식, 사고방식, 생산 시스템 등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운동을 주도한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보수는 대한민국의 세계적 도전을 가능하게 한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폐쇄적 국가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관성에서 벗어나 과감한 세계진출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경제·정치 영역의 세계적 경쟁에서 생존과 번영의 법칙을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3.한국 보수의 한계

한국의 보수는 지난 역사에서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는 국민적 신뢰를 획득하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리더십의 주체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민주주의적 태도나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의
가치는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 운영의 필수적 요소가 되었다. 정치참여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증대되었고, 시민사회의 비판적 기능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아울러 시장경제의 공정한 운영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엄숙주의로 무장하고 있고, 정경유착의 유착 고리를 끊어내는 데 있어서 반성과 혁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새로운 세계질서에 대응하는 전략의 부재
한국의 보수는 냉전질서 해체 이후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냉전적 세계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1970년대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세계사의 주역으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던 한국의 보수는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별다른 전략적 모색을 하지 못한 채 통과하게 된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도 분명 세계사적 시야를 열어줄 수 있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고 말았다는 것은 한국 보수의 또 하나의 커다란 실책이었다.
1990년대 초반 탈냉전의 시대가 열리면서 한미동맹 중심의 한반도 질서는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제1차 북핵위기가 발발하면서 격랑에 휩싸인다. 이 같은 한반도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대북 햇볕정책을 통해 민족공조 중심의 한반도 구상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이 구상은 국제협조의 결여로 ‘6·15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현재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남게 되었다. “미국에게 할 말은 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미국과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격동의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는 대북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강경파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한 북한 고립화’라는 전략을 고수했다. 한국의 보수는 냉전 체제의 해체, 남북대결 구도의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반공보수주의에 안주하는 패착을 거듭했다. 안보는 보수가 내세우는 최고의 가치로 변질되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것이 보수이념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냉전시대에 이러한 가치는 ‘반공’으로 구체화되었고, 북한의 체제 전복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안보 현안이 되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새로운 동북아 질서가 수립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제 한국의 체제 위기는 북한이나 공산주의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제의 경쟁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가 체제 혁신을 통한 국가적 경쟁력 확보를 통해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보수는 이러한 시대에 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지,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중국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인지,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이 재부상할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따라 한미동맹의 새로운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보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힘을 세계 속에서 확인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요청에, 친미반북 노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이외에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미래세대로부터 주목과 지지를 받는 데 실패했다. 남북문제의 평화로운 해결과 이를 통한 새로운 민족사적 비전을 마련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대해 한국의 보수는 명쾌한 자기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1970년대 산업화를 주도했던 한국의 보수는 1990년대 이후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제시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금융 부문에서는 1985년 레이건의 연두교서에서 자본의 재배치를 선언한 이후 1986년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등 급격한 세계화가 진행됐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세계화 선언’을 하고,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3저 호황 이후 거품경제의 붕괴로 경기가 침체되었고, 자본시장 개방과 환율 하락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게 된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 발생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약에 따라 단기금융 및 채권시장 개방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자본거래를 자유화하면서 지금까지 고도성장의 동력이었던 ‘고부채―고투자―고성장’의 위험공유 시스템이 붕괴됨으로써 성장 동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산업적 기반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2001년 중반부터 본격적인 소비 중심의 내수 진작책으로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주택담보대출비율을 확대했고, 무분별한 신용카드 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가계(금융)부채,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산업구조 재편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을 때 한국의 보수
는 ‘작은 정부 구현을 통한 시장경제 체제 수호’라는 단선적인 대응책을 제시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즉 기업가 정신의 복원과 생산적 자금 흐름의 회복, 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민통합 같은 보수적 가치를 재정립함으로써 새로운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사회·경제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 결과 1970년대 눈부신 한국 경제의 성장은 과소평가되었고, 보수의 경제정책 역시 재벌비호 정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2)역사 해석에 실패한 보수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치열한 역사 해석 논쟁이 벌어
지고 있다. 역사 해석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이 같은 충돌은 정통성의 충돌이고, 존재 근거의 충돌이기 때문에 격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건국 주체세력을 둘러싼 정통성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1민족 2국가 체제인 남북한 분단구조 하에서 한반도 전체 주민의 유일 합법정부의 인정을 둘러싼 정통성의 문제다. 특히 한국전쟁의 상흔과 냉전시대에 벌어진 격렬한 대결의 기억은 이 같은 역사해석의 대립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대한민국의 실질적 역사를 만들어온 주체이면서도 역사 해석을 둘러싼 정통성 대결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지 못하다.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세대에게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을 미래지향적으로 전승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전쟁과 경제건설의 역사적 경험이 ‘경험자의 독백’으로만 이해되고 있을 뿐 미래 지향적인 역사 경험으로 재해석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에게 보수의 역사는 ‘본받고 따라야 할 역사’가 아니라 ‘그들만의 역사’이고 ‘자기 자랑의 역사’로밖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이제 한국 사회에서 역사 해석의 주도권은 진보진영으로 넘어간 것처럼 보인다. 특히 보수가 인권탄압과 빈곤문제 같은 어두운 역사에 대한 과감한 반성과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은 단순한 실기가 아니라 역사 해석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 폐해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진보의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가 바로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주도세력인 보수에 대한 공정한 평가는 공유되지 못한 채 그 자체로 진보의 일방적인 공격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수의 미래 설계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회의 다원화와 민주화, 시민사회의 성장, 새로운 안보 환경,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 등 한국 사회가 새롭게 맞이하는 시대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 즉 비전의 제시가 있어야 함에도 진보의 공세에 맞서 싸운다는 미명 하에 의당 했어야 할 책무를 소홀히 하고 말았던 것이다.
과거 역사를 굳건히 지키고 공유하는 것이 보수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비전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보수에게 비전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진보가 ‘개혁’이라는 명분을 선점하고 이 사회의 주류세력을 비롯한 모든 것을 뒤집으려고 하지만 이에 맞서는 보수는 여전히 과거의 역사를 방어하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인 것이다. 역사 해석의 실패는 곧바로 미래의 어려움으로 닥치고 있다. 보수가 본연의 임무인 자기 개혁을 게을리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지금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4.한나라당의 한계와 문제점
이제 한국 보수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한나라당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한나라당은 대통령 탄핵과 4·15총선을 거치면서 국민에게 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당사를 천막으로 옮기면서까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변화할 테니 기회를 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구태정치와 부패정치를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탄에 빠진 민생경제를 챙기고, 비틀거리는 정부 여당의 확실한 대안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변화와 상생을 약속했다. 박근혜 대표 체제의 출범은 그러한 변화에 대한 약속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 뒤 한나라당은 긴장감이 풀어졌다.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30퍼센트에 이르자 오히려 보수를 결집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30퍼센트의 지지는 참여정부의 계속되는 실정(失政)에 비추어본다면 국민으로부터 확실한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은 여전히 크게 변화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나라당은 아직도 혐오와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한나라당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
문에 생긴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 약속은 한마디로 ‘변화’였다. 물론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약속의 이행 정도가 아직 미약하거나 아예 지킬 생각이 없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우리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지켰으며, 무엇을 지키지 않았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까지도 유추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한나라당이 취한 태도는 국민적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수도 이전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식적 입장은, 지난 제16대 국회 말에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찬성 표결을 할 때 총선을 의식해 졸속으로 찬성했기 때문에 그것을 번복한 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졸속으로 찬성했다고 나중에 ‘반성’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나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졸속으로 찬성하지도 않았고, 이전 결정을 번복함으로써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시기와 예산 문제는 잘 따져야 한다고 봤다. 서울과 충청권 간에 기득권 싸움을 벌이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예산이나 이전 대상 기관을 통제하는 장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인 청와대와 여당도 문제지만, 이 판결을 수도 이전에 대한 부당성을 입증하는 증표로 삼아 의기양양해하는 한나라당의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이번 위헌 결정은 수도 이전 반대파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헌법재판소에 맡겼다는 의미에서 정치권 모두가 정치적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기 반성을 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한나라당은 ‘색깔론’이라는 마약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보수정당에게는 정치적 대결 상대를 좌익 또는 친북으로 몰아세우는 것만으로 충분히 정치적 이익을 챙기던 시절이 있었다. 국민들이 이른바 ‘색깔론’에 대해 가지는 거부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에 대해 ‘좌파적 혐의’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던 사실을 한나라당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상대를 향해 좌파라고 공격할 때, 국민들은 실체도 없는 ‘빨갱이’를 들먹여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하기 위한 정치적 공격이라고 맞받아친다. 이제 좌파 논쟁은 내용과 관계없이 편을 갈라 상대방에 딱지를 붙이고 규정하는 분열적 대립적 행태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제 어떤 정치세력을 좌우로 구분해서 정의하기란 쉽지 않게 되었다. 또 좌와 우를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도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실제로 원론적인 의미에서 좌와 우는 선악으로 나눌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국민들의 삶을더 풍요롭게 하고, 살기 편한 나라를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기업 살리기’도 해야 하고 ‘복지’도 강화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치권도 좌우 논쟁에서 비롯되는 소모적인 대결과 증오의 정치싸움에서 벗어나 정책의 생산성과 구체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참여정부를 좌파로 규정하고 모든 이슈를 거기에 집중해서 비판하는 것도 이
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물론 현 정부에 참여한 386운동권 출신 중에서 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에 대해 자기 생각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든 국정 현안과 연결시키는 것은 비약일 뿐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사안으로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정권의 성격 규정과 자꾸 연결시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참여정부의 성격과 정책을 좌파적이라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촉발된 이른바 ‘정체성 논쟁’에서 한나라당이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한번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흔히 ‘강경 보수’로 지칭되는 분들에게는 자기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는지는 몰라도 새로운 세대에게는 여전히 색깔론이라는 구태를 반복하는 ‘수구’나 ‘반동’의 이미지를 심어주지는 않았을까. 물론 정체성에 대한 공격을 통해 강경 보수층의 환호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박형준 의원이 의원 총회에서 지적했듯이 “우리 당 일부에서 노무현 정권을 좌파 정권이라고 공격하는데, 외부에서 그런 주장을 하면 설득력이 있지만 한나라당이 공격하면 색깔론이 된다. 이것을 계속하면 우리만 과거 이미지로 돌아갈 뿐”이라고 했던 발언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왜 외부에서는 되는데, 한나라당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그건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것들 중에서 스스로가 원하는 것만을 보고 함부로 남에
게 딱지를 붙이려 해서는 안 된다. 자꾸 부정적인 이미지만 생길 뿐이다. 그런 모습이 연속적으로 노출되면, 한나라당은 여전히 구태정치에 매몰된 폐쇄회로 집단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비쳐질 뿐이다. 그런 모습은 한나라당에 그나마 애정을 가진 국민들의 등을 떠미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지금 상태로 가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여전히 한나라당의 변화를 기대한다. 국민들은 한나라당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부패와 인권탄압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남아 있는 한나라당의 일부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성장 우선’의 보수적인 정책을 주장하더라도 도덕성과 신뢰 회복을 통해 씻을 건 씻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자기 반성과 부정의 과정이 없으면 참여정부가 아무리 실패한다 해도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상기하지만, 한나라당은 변하겠다고 국민과 굳게 약속했다. 많은 부분에서 변했고, 또 그런 의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고, 노력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민들이 원하는 만큼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광고 문구에 “고객이 OK할 때까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나라당도 국민이 OK할 때까지 바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희망과 상생, 대안과 비전을 갖고 승부하겠다고 다짐했던 국민과의 약속을 한나라당은 다시금 상기해야 할 것이다.

5.한나라당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1)용기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때, 선배와 동료 의원과의 협력과 조화에 대해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론 협력과 조화는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은 아무리 조직이고 선배라 하더라도 옳고 그름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소신 있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행동하지 않으면서 잘못된 결과가 나왔다고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대통령 탄핵 당시 마지막까지 탄핵안 발의에 반대했지만, 결국 당시 소장파 모임이었던 ‘미래연대’ 내에서 “이번에 함께하자. 그렇지 않으면 헤어져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때 끝까지 신념을 지키면서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끝내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명백한 자기 기만이자 용기 부족이었다. 그때 이후 설 자리에서 서고, 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는 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논리에 밀려 끝까지 맞서 싸우지 못한 채 물러서고 말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내외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설득을 하고 소신을 지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라 현재 한나라당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정당은 과거처럼 한 사람의 보스가 지배하는 정당이 아니다. 과거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악습 중 하나였던 보스 정치는 이미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관성은 남아 있는 것 같다. 당 지도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당내에서 다수 의견이 형성되면 각 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마저도 자신의 소신을 접고 따르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관성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당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아니라고 과감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보면, 주인공 임상옥이 중국 연경에서 인삼장사를 할 때 대단히 어려운 상황을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주인공은 자신의 스승이 준 종이를 꺼내서 본다. 거기에는 바로 죽을 사(死)자가 씌어 있었다. 즉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내딛으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이 즐겨 사용했다는 말씀에도 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면 살 것”이라는 말이다. 용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렵고 말하기 힘든 상황일수록 소신 있게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2)낯선 만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한나라당은 외부로부터 많은 협조를 받지 못했다. 노무현 후보 쪽에 영화배우와 영상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 광고 전문가, 인터넷 전문가 등 각종 전문가 그룹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적어도 당시 분위기는 새롭고 역동적인 미래
가 자기 안으로 움츠리고 있는 과거를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한나라당은 수줍은 아이처럼 감히 새로운 것들과 함께하자고 과감하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한나라당에는 여전히 접근하기 쉽지 않은 세 가지가 있다. 젊은 세대와 소외계층, 그리고 호남이다. 젊은 세대는 한나라당에 대해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수직적 조직으로 고리타분한 정당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청년 지지자를 모으자는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 만한 뾰족한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젊은 세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 두려움은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되었기 나온 것이다.
한나라당은 젊은 세대가 가지는 포부와 고민, 희망과 두려움에 대해 나름대로 관심을 기울였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 흔쾌히 실패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는 것이다. 자꾸 외면하고 두려워하면 상대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그럴수록 한층 더 애정과 관심을 갖고 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스킨십의 강화다. 더 자주 만나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젊은 세대의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학생들과의 대화 자리도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또 지금보다 인터넷과 더 친해져야 한다. 설사 듣기 거북하거나 모욕적인 언사가 나오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를 듣고 소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한나라당의 변화상과 비전을 보여준다면 젊은 세대도 언제까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이 받고 있는 불필요한 오해 중의 하나가 재벌비호 정당이라는 것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개발과 지원대책 마련에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건 보수정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한나라당이 성장을 주장한다고 해서 국민의 복지, 특히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소득층과 중소상인, 봉급생활자, 농민, 중소기업 등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많은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야당의 한계 때문에, 또 여러 가지 제약 요인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는 것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해두고 싶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과거 한나라당의 정책이 소외계층의 바람을 실현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는 비판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소외계층의 문제는 이제 단순한 경제적 여건의 개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삶의 질을 이야기하고, 경제규모에 걸맞은 복지를 이야기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가장 밀접한 복지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정책과 대응은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소외계층의 삶은 각종 통계를 보더라도 한층 더 곤궁해졌다. 더욱 극심해진 빈부격차는 사회계층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잇단 경제 실정은 소외계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가진 자에 대한 반감은 이제 도를 넘어선 느낌이 들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소외계층은, 적절한 표현이 아닐지 모르지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만든 이들에 대한 비판과 시비를 가리는 일은 먼저 물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호남은 한나라당에게는 난공불락의 지역이다. 역대 선거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은 권위주의 시절의 지역차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기에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도 여전히 치유되지 못한 내상으로 남아 있다. 한나라당은 호남인들에게 여전히 유신과 전두환 정권의 계승자로 비쳐지고 있다. 그만큼 한나라당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외부 인사를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해 능력 있고 참신한 인사를 공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분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전을 펼쳤다. 하지만 호남지역에서는 공천을 하지 못한 곳이 적지 않았다. 이는 호남지역에 대한 한나라당의 곤혹스러움을 여실히 반영한다. 아예 후보를 내지 못할 정도로 아직까지 호남의 정서는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은 호남에 대해 지난 시절의 과오를 사죄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가 새로운
평가를 받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한 번의 사죄로 되지 않으면 두 번, 세 번이라도 해야 한다. 응어리진 호남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끊임없이 사죄해야 한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자세로 피해자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회초리로 자식의 종아리를 때리는 광고를 내보냈다. 그렇게 그 동안의 잘못에 대해 국민들에게 회초리를 맞고 반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거기에는 당연히 호남 사람들이 때리는 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매를 맞고 진정으로 반성하는 심정이라면 호남 사람들도 받아주지 않을 리 없다.
한나라당은 영남당의 한계에서 벗어나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수차례에 걸쳐 국민과 약속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나라당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호남과 만나야 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지역 주민도 만나고, 기업인도 만나고, 지역 행정가도 만나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한나라당의 의견을 전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서로의 소통을 가로막았던 큰 장벽이 천천히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겠지만 그럴수록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3)민주적 의사수렴의 중요성
한나라당은 지난 시절 ‘제왕적 총재가 권위주의적으로 당을 운영’하는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것은 굳이 한나라당에만 한정된 평가는 아니다. 과거 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 주도했던 이른바 3김 시절의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제왕정치’였다. 공천권과 자금을 쥐고 있는 제왕 앞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거나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정치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그래서 이견은 사전에 조율되었고,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은 별다른 마찰 없이 관철되었다. 그 시절에는 얼마나 잡음이나 뒷말이 없었는가가 얼마나 확고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와 같이 리더십이 과연 올바른 리더십인가 하는 데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리더십은 구성원들의 자발성에 기초해야만 그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만약 그런 자발성이 없으면 권위나 이권에 복종하는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한나라당 내에는 여전히 당내 이견이 표출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가능하면 막후에서 조정하고 타협해서 적어도 겉으로는 일사불란한 대오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각 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입법을 할 때 당 정책위원회와 협의해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경향성은 강경노선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 더욱 강화된다. 당의 보수 회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때마다 적전(敵前) 분열을 획책한다고 못마땅해한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차라리 당을 떠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누가 당에 남아 있어야 한나라당이 더욱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지는 국민들이 판단하도록 하자. 하여간 나는 그렇게 발언하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당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불관용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믿음은 존중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진리여야 한다는 것은 독선과 아집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제1당 자리를 빼앗긴 것도 어쩌면 타인과 공유되지 않은 ‘혼자만의 생각’을 고집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가 아닌지 깊이 성찰해봐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한나라당도 다양한 의견이 역동적으로 교류되고 논의되는 ‘용광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미래의 도전은 창조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지금처럼 다원화·민주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한 가지의 대답만 고집해서는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당이 되기 어렵다.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을 자임한다면, 당면한 모든 현안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구성원의 의견을 한 방향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여러 의견들이 잘 논의될 수 있는 민주적 의사수렴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각별한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6.새로운 보수를 위한 제언 : 통합적 리더십의 중심으로 우뚝 서야

한국 사회는 지금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갈등, 노사 간의 분쟁, 계층 간의 갈등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대립과 분열을 겪고 있다. 가히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할 만큼 격렬한 진통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개혁 열풍은 구악을 철폐한다는 명분으로 갈등과 분열을 오히려 부추기고, 국민을 선과 악의 대결 전선에서 어느 한편에 설 것을 강요하고 있다.
국민들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급격한 변화와 미래를 향한 불안한 질주를 바라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를 잘 지켜내면서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한 변화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보수는 이 같은 사회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어야 할 시대적 사명 속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국의 보수는 실사구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용주의와 실질적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실무 중심주의가 사회 변화와 혁신을 구현하는 보수의 핵심 원리이자 이념으로서 자리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가 신뢰할 수 있는 변화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정확하고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며, 스스로 높은 도덕적 규율을 갖춰 보수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부패와 비리의 고리도 과감하게 끊어내야 할 것이다. 과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단절적인 역사관에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부패한 과거를 치유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만약 그런 과정을 생략한다면 결코 보수에게 미래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1)세계로 열린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지혜와 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동아시아를 무대로 새로운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남북한의 문제가 그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따라서 변화하는 국제환경과 산업구조 속에서 어떤 생존전략과 산업전략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국가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하겠다. 이 시점에서 보수는 과거 역사 속에서 보수가 성취해온 국가발전 모델과 생존전략을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혁신할 것은 혁신해서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발전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는 남북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새로운 경제 네트워크 형성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세계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소리 없는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의 부상과 이에 위협을 느끼는 일본의 견제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특히 시장과 에너지 확보 등의 면에서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대립하고 있다. 흔히 “기름 먹는 하마”로 불리는 중국의 석유 소비량은 2020년이 되면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급증해 석유 수입 규모가 일본과 거의 같아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은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중동 등 기존의 공급지역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동의 원유수출 대상국 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경우 한국의 대 중동 협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고, 그렇게 되면 안정적인 원유 확보에도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다른 국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중국을 견제·견인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시급한 외교 현안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은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해양세력 동맹과 적극 협력하면서 몽골-중앙아시아―인도―호주―베트남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차이나 국가들과 ‘아시아 경제 네트워크’의 건설을 적극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동북아 구상은 러시아가 중심이 된 동북아 에너지 네트워크 구상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중앙아시아―인도―호주―아세안을 잇는 ‘아시아 경제 네트워크’로 그 내용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통일을 대비하는 열린 민족주의와 열린 애국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의 보수는 단순한 반공과 의존적 친미를 넘어서 북한을 책임지고, 미국과 함께 동아시아를 책임질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보수의 애국주의는 반공적 애국주의였다. 반공적 애국주의의 궁극적 지향점은 북한 체제의 궤멸이고, 한반도의 자유화이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미국,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균형점을 의미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한국과 미국의 압도적 힘의 우위에 기반을 둔 한반도 통일은 실현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한반도의 통일은 물리적 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한반도의 통일은 동아시아 지역의 힘의 균형과 공동번영의 기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역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반공적 애국주의는 미래 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 회귀적이고, 실현 가능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 즉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가 넘는 체제 경쟁에서 대한민국은 북한을 압도하면서 민주주의 체제와 경제 규
모, 국가역량에서 우월성을 확보했다. 대한민국은 통일된 한반도의 민족사적 담지자로서 북한을 관리하고 통일을 선도하는 역사적 소명을 주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보수는 폐쇄적 국수주의나 반공적 애국주의에서 벗어나 한민족의 세계사적 비전을 열어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는 당장의 현안이자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북핵 문제의 해결에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좀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의 보수는 미국의 대북 강경파의 입장만을 대변해서도 안 되며, 한반도 문제를 활용해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중국도 견제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최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개성공단 건설이 경제협력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체제의 개혁과 개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통일 비용을 절감하고, 한민족 경제 시스템의 미래지향적 선택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부도 난 체제를 아무런 대책 없이 인수하는 것은 대한민국에게 크나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 체제의 붕괴를 목표로 하는 북한 봉쇄전략은 이제 수정되어야 한다. 오히려 개혁과 개방을 통한 체제 변화를 모색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주도력을 높이는 방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3)보수의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는 민주주의적 리더십이 부족하고, 권위주의적인 엄숙주의로 무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장경제의 공정성보다는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부를 창출했던 부도덕한 과거가 있었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조응하기 위해서는 낡은 문화적 코드도 버려야 한다. 경직성과 완고함으로 표현되는 보수의 낡은 태도를 버릴 때, 안정과 신뢰라는 보수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권위주의는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권위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어떻게 하면 권위주의의 낡은 때를 벗고 새롭게 권위를 세울 수 있을까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시 말하면, 권위주의는 타파해야 하지만, 새로운 권위를 획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보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권위주의적인 문화는 새로운 문화로 무장한 젊은 세대와의 사회적 통합에 심각한 장애가 되어왔던 게 사실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권위를 세우는 일은 한국 사회의 통합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수는 대화와 토론을 중요하게 여기는 열린 자세와 열린 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도덕적 자신감과 성공의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보수의 힘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근간을 지켜내는 새로운 권위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신뢰는 보수의 중요한 가치이다. 무책임한 변화를 추구하려는 경향성에 대응하여 보수는 신뢰할 수 있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변화의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신중하게 그 목표를 향해 나가는 예측 가능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보수의 건강성은 공동체주의의 복원과 자유주의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가족의 해체와 삶의 목표 부재라는 부정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서는 가족 공동체 가치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개인적 삶의 목표를 다시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개인주의가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지만(어떤 면에서는 더욱 장려될 필요가 있다)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의 해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주의가 집단주의로 변질되어 많은 폐해를 낳는 것처럼 개인주의도 절제 있게 발휘될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보수에게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 이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보수도 변해야 하고, 한나라당도 변해야 하고, 나 자신도 변해야 한다. 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당위가 되었다. 그런 변화의 바람은 흔히 한국의 보수가 가지고 있다는 3무, 즉 ‘사회적 변화에 대한 무감각’ ‘사회 성원과 국가공동체에 대한 무책임’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무기력’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의 보수는 지난 시기 국가건설의 시대적 경험을 계승함과 동시에 국제사회에 대한 안목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가진 새로운 보수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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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 1)
담배좀 잘 태우세요
거 진교수님은(어흐흐흐흐) 담배를 좀 점잖케 태우셨으면 좋게쓰~
아 그래 길거리에서 담배피우지마고(어허흐허흐어허흐허흐흐흐) 피우지말고
담배좀 잘 태우세요 다다담배좀 잘 태우세요오?
아 그래 길거리에서 담배피우지 말고

(Rap)
거 담빼쫌꺼쬬 담빼쫌꺼쬬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요 (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배피우지마고)

거 담빼쫌꺼쬬 담빼쫌꺼쬬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요 (어허흐어허흐어허허허허흐흐) 피우지마고

(Verse 2)
거 진교수님은(에헤헤헤) 다다 담배를 좀
점잖케 태우셨으면(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빼피우지말고)

진교수님은(에헤헤헤) 다다 담배를 좀(어헤헤)
점잖케 태우셨으면(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빼피우지말고)

(Rap)
거 담빼쫌꺼쬬 담빼쫌꺼쬬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여? (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배피우지마고)

거 담빼쫌꺼죠 담빼쫌꺼죠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여?

(Verse 3)
진교수님은(담빼쫌꺼쬬 담배쫌꺼쬬) 다다담배를좀(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 않게 매너가 꽝이네)
점잖케 태우셨으면(에헤흐어헤흐헤흐헤헤)
진교수님은(담빼쫌꺼쬬 담배쫌꺼쬬) 다다담배를좀(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 않게 매너가 꽝이네)
점잖케 태우셨으면(에헤흐헤흐어헤흐헤흐헤헤)

피우지 말고~

고~ 고~ (어헤흐헤흐헤흐 어헤흐헤흐헤흐헤흐)
고~ 고고고~

담배좀 잘태우세여?


본 노래의 원본

29일 새벽 1시 께, 서울 종로1가 거리는 모처럼 한산했다. 얼마 전까지 촛불시위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던 전경과 시민들은 잠시 소강 국면을 맞았다.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을 북돋우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차량도 잠시 방송을 멈췄다. 일부 시민들은 전경들 앞에서 대치하고 있었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담소를 나눴다.
 
평온한 분위기의 시민들과 달리, 현장에 있는 전경과 기자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렸했다. '전경이 갑자기 시민들을 공격한다면'하는 생각에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몇몇 사진 기자들은 시민과 전경이 대치하고 있는 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취재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모여 있는 전경과 기자들의 표정에서 피곤이 뚝뚝 묻어났다.
 
피곤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 더 피곤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잠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맙소사, 그 새 카메라가 흠뻑 젖었다. 물기가 내부까지 스몄는지,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카메라도 가방에 집어넣고, 툴툴 걸어다녔다.
 
그 때 갑자기 귀에 들어온 한 마디. "내일 교회 가야하는데…"
 
슬쩍 다가가서 툭 던졌다.
 
"교회 다니시나봐요?"
 
"네. 이렇게 밤 새고 들어가면, 예배 시간에 졸 것 같아요."
 
40대 초반쯤 돼보이는 아저씨다. 대학을 마친 뒤 오랫동안 대기업에 다녔고, 지금은 작은 사업을 한다고 했다.
 
"밤 새워 시위하고서도, 예배는 안 빠뜨리시나봐요?"
 
"네. 아무리 피곤해도 할 건 해야죠."
 
"촛불집회에 여러 번 나오셨나요?"
 
"세 번쯤 돼요. 원래 이런 데 잘 안나오는데, 어쩌다 보니 여러 번 나오게 됐네요."
 
"이명박 대통령도 교회 다니는데…"
 
"그래요. 그래서 더 창피해요. '믿는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거꾸로니까. 사실 오늘은 집회에 안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책임감 때문에 나왔어요. '믿는 사람'들이 다 이명박 대통령 같지는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요."
 
"신문은 뭘 봐요?"
 
"<국민일보>요. '믿는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이니까 봐야죠."
 
"촛불집회에 대한 보도가 마음에 드시나요?"

"글쎄요. 콕 집어서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어요. 입장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 '나쁘다', '좋다' 못박기는 어려워 보여요. 촛불집회 나오는 사람들은 <경향>, <한겨레>를 많이 본다던데, 제가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그런 신문은 읽기가 좀 거북하더라고요."

이쯤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정보통신 벤처기업에서 개발팀장으로 일한다는 김모 씨. 우리 나이로 37살이다. 부인과 함께 나왔는데,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될 무렵 부인을 집에 보냈다고 했다. 그는 <프레시안>을 후원하는 '프레시앙'이기도 하다.
 
"촛불집회에 열 번쯤 나왔어요. 평일에는 바빠서 못나오고, 주말과 일요일에 주로 나왔죠."
 
"시위대의 열기가 대단하죠?"
 
"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정말 대단한 힘을 내는 것 같아요. 저도 벌써 나이를 먹었는지, 별로 힘을 보태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렇게 내뱉고, 그는 자리를 떴다. 일어서면서 그는 "이게 참 뭐하는 짓인지"라고 중얼거렸다.
 
적어도 집회 자체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의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 시위꾼'은 아니었다.
 
모처럼 여유있게 거리를 거닐며, 사람들을 만났지만 '전문 시위꾼'을 찾기는 어려웠다. 물론, 보수 언론이 지적한 '전문 시위꾼'도 분명히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도 한 마디쯤 해야 할텐데….
 
앞서 시위대가 밧줄로 전경버스를 잡아당길 때, 눈 여겨 봐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30대 후반쯤으로 봤는데, 왠걸 27살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한다고 했다.
 
툭, 말을 걸었다.
 
"학부 시절에 운동권이었어요?"
 
"아뇨. 저는 대학 다니면서 운동권 선배 만나본 적도 없는 걸요. 월드컵 거리 응원하느라 이렇게 나온 적은 있지만 데모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까 밧줄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조ㆍ중ㆍ동 기자의 카메라에 담겼다면, 영락없이 '전문 시위꾼'으로 몰릴 법 했어요."
 
"조ㆍ중ㆍ동이 늘 그렇죠. 뭐."
 
"원래 조ㆍ중ㆍ동을 싫어했어요?"
 
"제가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인지, 언론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 보도하는 걸 보니까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한다고 했는데, 혹시 고시생인가요?"
 
"네. 맞아요."
 
"남들 공부할 때, 이렇게 시간 보내면 다른 수험생들에게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들지는 않나요?"
 
"당연히 들죠. 하지만 할 건 해야죠. 다시 80년대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민주주의가 파탄날 거라고 봐요.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겠다니. 국민을 상대로 선전포고한 셈 아닌가요. 대통령이 국민에게 싸움을 걸어오는데, 국민이 가만있으면 폭정이 저질러지는 거죠. 선배들이 고생해서 얻은 민주주의를 이렇게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는 없잖아요."
 
조ㆍ중ㆍ동에 대해 냉소적인 그였지만, 막상 집에서는 <조선일보>를 본다고 했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못 끊겠더라고요. 볼 만한 기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라면서, 그는 좀 쑥쓰러워 했다.
 
그는 "제가 사실, 진보는 아니거든요"라는 말을 변명처럼 덧붙였다.

시청 앞에 있던 시위대가 종로로 몰려오기 전까지, 한 시간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일곱 명쯤 만났는데, 한 명을 제외하면 "진보적인"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우리 사회의 이념적 평균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책임감'을 강조한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였다. '누가 다쳤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들리면, 자신이 다친 것처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은 촛불집회 참가자 가운데 '새총'을 쏜 전문 시위꾼이 있다며 걱정한다. 하지만 집회를 내내 지켜보니, 이들 언론이 전문 시위꾼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들은 행동만 거칠 뿐, 무섭지 않다. 정말 무서운 것은 '착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남을 속이거나 해코지 한 적이 별로 없는 '착한 사람'들을 몹시 화나게 했다. '착한 사람들'이 화나면 진짜 무섭다.




과연 이런 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닫힌 보수와 과열된 진보 그 사이에서 아직도

착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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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라는 말은, 이방인들이 이 대륙을 서술할 때 쓰던 말이다. 로마 사람들은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를 정복한 다음 새로 얻은 지역을 총독 통치지역 아프리카(Africa proconsularis)라고 불렀다.(16쪽)

1696년의 문서를 보면, 포르투갈의 기니 회사에서 검둥이 1만톤의 반입을 허가해주고 있다.(117쪽)

영국 사람들은 남아프리카를 포함해 자기들이 점령한 아프리카 모든 지역에 세가지 자본주의 원칙을 고집했다. 모든 식민지는 자급자족할 것. 영국에 원료를 공급할 것. 영국의 상품을 살 것.(124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막강한 유럽 세력에 맞선 저항의 문서들에서 수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예의 바른 말투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매우 인상적이다. 그에 반해 유럽 사람들은 자주 '야만인들에 대한' 경멸감에서 오히려 원시적이고 평범한 말투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137쪽)

아프리카에서 처음 기독교를 전파할 때 나타난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조 형식을 깨닫게 된다. 이웃 사랑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조 형식은 흔희 대화나 동반자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건 원치않건 간에 구원자라는 태도와 의존을 장기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155쪽)


알베르트 슈바이처에게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등한 동반자가 아니었다. "나는 너의 형제다. 그러나 너의 형이다"라는 것이 그가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할 때 쓴 말이었다.(155쪽)


"우리는 서로를 배부르게 먹이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먹을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구호단체들이 너무 조금 너무 늦게 내놓는 것을 양철그릇에 받으려고 끝도 없이 길게 줄서서 지나가는 바싹 야윈 인간들의 모습을 매일 본다. 우리는 언제나 배우게 될까, 이 지구 상의 인간들은 언제쯤이나 일어나 외치게 될까, 이제 충분하다고.... 인간이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한히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배우게 될까, 그리고 인간을 그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일이며, 이런 모독이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언제나 배우게 될까.

 다른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스스로 인간성을 잃어버린다. 억압은 억압 받는 사람보다 더 많지는 않더라도 그와 똑같이, 억압하는 사람의 인간성도 없애고 만다. 양쪽이 다 정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데스먼드 음필로 투투 주교 - 159쪽)

"오늘날 세계는 무역이다. 세계는 가게로 변해버렸다.... 삶이라는 것은 생활비를 번다는 뜻이다..... 세계 전쟁이라는 끔찍한 촉매로 인해 백인들은 우리를 때리고 비방하고 죽이는 일에서 임시로 등을 돌리고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는데 열중하였다."(아프리카계 미국 학자이자 범아프리카주의 창시자의 한 사람인 윌리엄 에드워드 버거트 두 보이스 - 163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우리는 자유롭게 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교육을 원한다. 우리는 소박한 수입의 권리를 원한다.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권리,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고 만들어나갈 권리를..."(1945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5차 범아프리카 회의의 결정 - 168쪽)



1789년 남아프리카 이스턴케이프에서 태어난 사르트예 바트만은 런던으로 팔려가 '호텐도트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엉덩이를 전시당했다. 그녀는 스물다섯살 때인 1815년 파리에서 죽었다. 그녀의 시신은 '동물인지 인간인지'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해부됐고 밀랍으로 채워져 파리 인간 박물관에 1974년까지 전시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민주 정부가 들어선 뒤인 1995년 그녀의 부족인 코이코이족과 산족의 소원에 따라 유해 송환 협상이 시작됐다. 2002년 8월9일 세계 여성의 날, 그녀는 남아프리카 이스트케이프 근처 작은 도시 한키에 묻혔다.(220~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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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난민의 절반은 어린이다. 부당함 때문에 고통받는 모든 개인을 위해 정의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완전히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러기에는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정의감이 살아있는 생활 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야한다... 문제는 사람들이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건설에 동참한다는 느낌을 갖는, 살아있는 체제를 어떻게 만들수 있느냐는 것이다"(모잠비크 교육부 장관으로 넬슨 만델라와 결혼한 그라샤 마셀 - 231쪽)



"개발 원조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해마다 개발 원조로 받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서방에 빚으로 갚고 있다. ... 빚은 해마다 늘어만 간다... 개발 계획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는 다시 서바엥서 온 사람들 차지다....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옛날 식민시대의 유럽 출신 관리보다 더 많은 서방의 개발 원조자들이 있다는 글을 읽었다."(266쪽)

아프리카는 가난하지 않다. 이 대륙은 보크사이트 크롬 코발트 다이아몬드 금 백금 티타늄에서 세계 생산량의 89퍼센트까지 갖고 있다. 아프리카 전체 경제력이 세계 시장의 1.3%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원료들은 뉴욕과 브뤼셀과 도쿄에서 정해지는 가격으로 수출된다. 세계 무역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2%다. 이 얼마 안되는 수입 중 약 40%가 곧바로 부채 상환과 이자 명목으로 다시 빠져나간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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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한 이후로 아프리카의 전체적인 문화 정책은 전통 가치를 강조한다. 우두머리에 대한 존경심, 노인에 대한 경외심, 상류층과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 돈의 경배, 식민지 이전 과거를 우상 숭배하는 듯한 높임"(악셀 카보 - 282쪽)



개인적인 또는 민족적인 이기심에서 자유롭고, 온갖 종류의 영향에 언제나 그리고 완전히 수동적으로 노출된 수백만명의 사람들에 대한 현장의 존경심을 잃지 않는, 합리적이고 철저한 분석은 아직도 너무나 드물다.

 그들의 동경과 꿈을 출발점으로 삼고, 그러면서도 무비판적으로 되지 않고, 책임을 떠맡고, 또 새로운 개발지원금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그 기금만큼이나 중요한-그보다 더 중요하다고는 하지 않더라도-부분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진짜 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283쪽)

21세기에는 젊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린이나 청소년으로서, 여성으로서, 다양한 종족과 소수 무리의 대표자로서 서로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자기 결정권을 실현하고, 그로써 빈곤과 질병과 전쟁에 맞선 싸움에서 개인적으로도 책임을 떠맡는 것이 중요하다. (283쪽)

"아프리카의 역사는 많은 고통과 슬픔을 지녔다. 그런데도 우리가 언제나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 삶의 기쁨으로 가득 넘쳐서 서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다른 어떤 역사책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어떤 내적인 강인함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사람들에게 어딘지 이해할 수 없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진기한 특성으로 서술되지 않고 아주 깊이 인간적인 어떤 것, 우리가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서술돼 있다"(암마 다르고 - 298쪽)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충격을 미친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IMF 금융위기였다. 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현재 논의되는 방향에서 타결된다면 그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정치학)가 한미 FTA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최 교수는 최근 3년 동안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쓴 글을 묶어 펴낸 <민주주의의 민주화>(박상훈 엮음, 후마니타스 펴냄) 중 한미 FTA에 대한 새로운 글('한미 자유무역협정 정책 비판과 대안적 발전모델')에서 노무현 정부의 FTA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미 FTA의 충격효과, IMF 위기 못지않게 크다"
 
  최장집 교수는 한미 FTA에 대한 지식인, 언론의 나태한 대응을 질타라도 하듯 글의 첫 머리를 "현재 한국사회의 최대 이슈는 한미 FTA 추진을 둘러싼 문제라 할 수 있다"로 시작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가 우리 사회에 미칠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고 토로했다. 도대체 왜 그는 한미 FTA에 대해서 이렇게 위기감을 갖는가? 그는 글 마무리에 따로 붙인 편집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하나의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그 체제는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 즉 외부로부터 다른 강력한 정치체제가 부과하는 제약으로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으로 행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영토 밖 행위자들의 승인 없이는 정책결정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미 FTA 정책 추진에서 느끼는 필자의 두려움은 그 충격효과가 경제적이고 사회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기초를 두어야 할 정책결정의 자율성은 치명적으로 제한받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가 가진 제도·문화·인적 조건의 비교우위에 바탕을 둔 자체적인 생산체제의 유지와 발전이 어렵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를 한미 FTA 정책이 가져올 가장 위험한 결과로 본다. 나는 한미 FTA가 현재 논의되는 방향에서 타결된다면 그 충격효과가 IMF 금융위기 못지않게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는다."
 
  이런 최장집 교수의 우려는 한미 FTA가 결국 한국사회 전체를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고착시킬 수 있다는 강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간 최 교수는 민주화 이후 민주정부에서 왜 사회복지 친화적인 생산 및 분배 체계가 발전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집중해왔다. 최 교수가 보기에 한미 FTA는 이런 고민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즉 한국사회에서 영영 '민주주의, 평등, 노동의 권익 신장'같은 것을 말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다시 말해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온전한 민주주의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하는 길에 들어서는 것과 다름아니다.
 
  "경제의 불균등과 사회 양극화, 더욱 악화될 것"
  
 

  최장집 교수는 "성장잠재력 저하, 사회 양극화 등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한미 FTA를 추진해야 할 근거로 동원된다"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을 불러들이는' 이 쉬운 방법을 모르고 그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에 상응하고 한국적 조건에 부합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괜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된다"고 꼬집은 뒤 본격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정책을 비판했다.
 
  최 교수는 "이와 같은 정부의 논리는 '개방이 안 돼서 문제이고 한미 FTA로 개방이 이뤄진다면 생산성 향상과 경제발전 등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인과구조를 특징으로 한다"며 "(이런 논리는) 더 많은 시장원리와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했던 그 동안의 경제정책이 만들어낸 최종적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그간 추구했던 정책노선이 가져온 가장 분명한 문제는 경제의 불균등 심화 내지 사회 양극화이고 노동배제적 생산체제의 지속이었다"며 "한미 FTA 정책은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보다 공고히하고 양극화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정부가 성장과 동시에 양극화 해소를 말하고, 한미 FTA 추진의 근거 중 하나로 그것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고 홍보함에도 불구하고 그 인과논리는 그저 상정된 것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이나 설득력을 전혀 갖지 못한다"며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한미 FTA는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적 미국경제에 전면적으로 개방 내지 통합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장이 계속되더라도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
 
  최장집 교수가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성장 중심론'이다. 최 교수는 "정부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성장의 둔화를 걱정하고 그 원인을 따지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충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동안, 제조업이 급격히 약화된 산업구조와 분절화된 노동시장 체제(정규직-비정규직 문제)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빈부격차 및 양극화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그들에게 양극화 문제는 성장둔화의 결과물일 뿐 그 인과관계가 역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약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과 주요 정책결정자들은 성장의 분배효과(성장이 가져다주는 '넘쳐흐르는 효과', '윗목-아랫목'론)에 대해 일방적으로 과신하고 있다"며 "하지만 성장이 계속된다 하더라도 최고소득 집단은 언제나 제일 앞서고, 중간은 언제나 중간이고, 제일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은 언제나 맨 뒷줄에 서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더 나쁜 경우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최고소득 집단만 소득이 크게 높아지고 중간과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은 비슷해지거나 더 적어지는 경우"라며 "(이 경우)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환경에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고용은 증대시키지 못한 채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오늘날 경제지표들은 이런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비스업 개방되면, 미국의 '사회적 붕괴' 전철 밟을 것"
 
  최장집 교수는 '한미 FTA를 통해 대외개방이 생산성을 제고하고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노무현 정부의 논리도 강하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제조업은 완전히 개방돼 생산성이 높고, 서비스 산업은 개방되지 않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는 식의 논리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신빙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와 관련해 정책결정자들이 사용하는 '서비스 산업'이라는 말은 서비스업 전체를 지칭하기보다는 금융, 컨설팅, 의료, 법률, 기술정보 등 서비스업의 최상층 부분을 의미하고, 일자리 규모로 보자면 서비스업 가운데서도 아주 일부분만을 포함하는 것"이라며 "전체 서비스업은 이들 소수의 상층 부분으로 대표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런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사회적 붕괴' 상태인 미국의 예를 통해 반박했다. 그는 "미국 역시 상층 서비스업 종사자는 가장 높은 소득층인 반면, 노동집약적 하층 서비스업 부문은 소득 및 계층 구조에서 최하층을 구성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 경제의 소득 불평등은 매우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FTA를 통해 미국처럼 서비스업이 재편될 경우 '저학력, 저기술, 저임금, 저소득층들이 집결돼 있는 한국의 대다수 자영업과 영세소기업, 기타 서비스 직종' 역시 파탄을 면치 못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최 교수는 또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기반이 이미 허물어진 상황에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함으로써 중소기업에 대한 무대책을 또 한 번 합리화하고 있다"며 "서비스업의 개방되면 덩달아 제조업 부분과 중소기업 발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정부의 발상은 막연한 기대효과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서비스업이 경제성장의 출로라니, 무모한 발상이다"
 
  최장집 교수는 더 나아가 "서비스업이 결코 한국경제 성장의 출로가 될 수 없다"며 "미국에 대한 개방을 통해 세계적인 서비스업을 만들겠다는 주장은 다소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서비스업은 노동 그 자체가 소비대상이고 제조업 부문에 있던 낮은 질의 노동력이 서비스업으로 이동해오기 때문에 낮은 질-낮은 임금-낮은 생산성의 악순환 구조에 빠져들게 된다"며 "한국의 서비스업의 생산성 데이터는 이런 주장을 완벽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정책결정자들은 금융, 의료, 교육, 법률, 회계 등 고부가가치형 지식기반 서비스업은 미국이 세계최고 강국이므로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 대한 개방이라는 충격에 노출되면 이 분야가 발전하고 그것이 한국경제 전체에 연쇄적 촉매효과를 미친다고 주장한다"며 "이런 주장이야말로 논리비약이 아닐 수 없고, 그런 인과관계가 어떤 이론적 근거에서 도출될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그런 분야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세계 최고의 자본력, 세계의 인재들을 흡입하는 대학교육,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과 기술 수준, 세계 언어로서의 영어와 그 문화의 힘, 그리고 세계시장의 규칙을 정하고 이를 부과할 수 있는 경제외적 힘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우리가 그와 유사한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고 조만간 그런 조건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한미 FTA는) 양국 간의 격차가 극히 심한 조건에서 한국의 개방업종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거나 위계적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나아가 한국사회의 최고 엘리트들이 결집돼 있는 이 분야의 종사자들을 미국 체제에 통합시킴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이미 깊숙이 진행된 사고와 가치체계의 미국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또 "미국에 개방, 통합된 서비스업이 가져올 경제 전체에 대한 효과 또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 분야는 일류대학, 외국유학, 영어사용과 같은 높은 수준의 지적자원을 갖는 사람들만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높은 소득수준의 계층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고용증대나 양극화를 완화하는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설사 정부 의도대로 한미 FTA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그 대가는 한국경제를 미국시장에 더 깊숙이 통합시키는 것으로, 그에 따른 결과는 IMF 위기 이후 현재까지 증폭돼온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세계화와 양극화 해소는 선진 한국으로 가는 양날개'라고 강조했다 해도 그 말이 한낱 공허한 수사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비스업 중심의 개방경제, 잘못된 선택의 연장일 뿐"
 
  최장집 교수는 "제조업 중심의 권위주의 산업화에서 이제 금융, 정보기술(IT), 서비스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개방경제로 발전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민주정부들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해온 결과"라며 "IMF 경제위기 직후 재벌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 경로를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지만 김대중 정부는 이를 외면했고 결국 정부여당-야당-관료-재계-주류 언론-지식인 전문가 등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주요 엘리트 집단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 동맹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형성된 신자유주의적 발전 동맹이 재벌이 주도하는 지식정보·금융·서비스업 중심의 개방경제를 밀어붙이면서 "어떤 대안적 이념이나 프로그램의 형성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런 사정은) 대통령과 경제정책 결정자들이 한미 FTA 추진을 천명했을 때 한국의 여야 양대 정당 어디로부터도 이렇다 할 비판이나 대안이 제기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장집 교수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최 교수는 글의 후반부에서 한미 FTA로 대표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의 대안으로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육성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 사이의 공동연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국내 생산체제로부터 나오고 그에 기반을 두는 '내발적' 발전 전략 즉 "성장정책과 산업정책, 노동 및 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이 만날 수 있는 발전의 틀, 그 속에서 성장과 고용증대가 병행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이 양극화 해소 내지는 완화에 기여하고, 또 반대로 양극화 해소가 성장에 기여하는 산업발전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미 FTA,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
 
  최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라는 외적 제약이 크다 하더라도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발전 경로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사회적·정치적 계기들의 응집을 통해 미국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모델이 고착화되는 것을 억제하고, 사회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생산체제를 향한 적절한 모델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희망을 피력하면서도 "현재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방향의 대안이 개척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며 현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최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한미 FTA 추진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글을 맺었다.
 
  "분명한 현실은 (한미 FTA가) 한국경제를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수직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을 가속시키고 악화일로에 있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한미 FTA의 추진을 통해 일방적 신자유주의 모델로 달려 나가는 것은 단순히 노무현 정부만의 실패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한국경제 나아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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