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장:
혼자서
영웅 되는 사람 없어요. 그것도 영웅을 필요로 하는 대중이 있고 대중이 밀어줘야 되는 거예요.
때는
같이 만드는 거예요. 어느 사람이 앞장서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혼자서 다할 있을 같죠. 아니에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요.
잘난 척해서는 안돼요. 봐요. 바둑알 하나로 이길수 없어요. 모두 다 합해야 해요

강우석검사:
전 그런 거 모릅니다. 전 검사입니다. 검사가 해야 할 일밖에 모릅니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우린 깊은 애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그린 화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밀레는 하루 종일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편 채 이삭을 줍는 농촌의 가난한 여인들을 그렸습니다.
풍자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는 지치고 피곤한 몸을 삼등열차에 맡긴 도시의 가난한 민초들을 포착했습니다.
도로시아 랭은 배고픈 아이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감에 빠진 어머니, 그리고 뼈 빠지게 일해도 형편이 나아질 줄 모르는 노동자들의 암울한 상황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 따뜻한 가슴을 지닌 예술가들의 명단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고흐는 깊은 신앙심으로 성경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렘브란트의 성화와 정직하게 빈농의 삶을 그려냈던 밀레를 동경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영혼의 깊이는 이러한 신앙심과 가난한 이웃에 대한 이해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반 고흐의 영혼이 잘 투영된 한 작품을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보리나쥬라는 탄광촌에 머무르며 평신도로 전도와 봉사활동을 했던 시절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따듯한 사색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1885년 4월 30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이 같은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테오에게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 날짜에 맞춰 <감자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했지만 완성하진 못했다. 마지막 부분은 기억을 더듬어 그리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되겠지.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해 왔다.
강한 열의를 갖고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루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무어냐. '행동하고 창조하는 것‘ 아니냐.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 손은, 몸으로 하는 힘겨운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
나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황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는 충분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감자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한 농부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분위기의 것을 원하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 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진실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처녀는 날씨와 바람과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갖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숙녀의 옷을 걸친다면, 그녀의 개성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 이와 비슷하게, 봉부의 삶을 닮은 그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냄새, 비료냄새, 거름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겠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
분명 “웬 쓰레기 같은 그림이냐!”는 말을 들을게 뻔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있듯 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농촌생활을 그리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술과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반성을 하게 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밀레나 드그루 같은 화가들이 “더럽다, 저속하다, 추악하다, 악취가 난다” 등등의 빈정거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는 모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런 악평에 흔들린다면 치욕이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할 것이고,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가는 잊어야 한다. 자주 생각하는 문제인데, 농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명화된 세계보다 훨씬 더 낳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그들이 예술이나 다른 많은 것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 (....)
이 그림에 빠져 지내느라 이사해야 한다는 것도 잊을 뻔 헸다. 이사에도 신경을 써야했을텐데,
걱정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런 장르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워낙 할 일이 많아 다른 화가보다 편하게 자내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런 화가들도 어떤 식으로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이상, 나도 물리적인 어려움으로 잠시 주저할 수는 있겠지만, 파괴되거나 침식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어쩔 수 있겠니.
나는 <감자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너도 알다시피, 근래 몇일 간은 물감 때문에 고생했다.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는 그림을 망칠 각오를 하지 않고는 붓질 한번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정할 때는 작은 붓으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해야 했다. 가끔 그림을 친구에게 가져가서 혹시 내가 그림을 망치는 건 아닌지 물어본 것도 이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너도 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걸 곧 확실하게 알게 될 거다. 네 생일에 맞추지 못해 절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1885년 4월 30일.
시장을 돌아보다
이정전「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로버트 라이시「부유한 노예」

당신의 삶은 작품입니까?
언젠가 경제학 원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냈던 문제다. “당신은 작품입니까? 상품입니까?” 학생들 대부분 자신은 작품이라고 답을 적었다. 이 질문에 나는 작품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작품이라고 답을 적었던 학생들에게 지금 다시 대답해보라고 하면 과연 몇 명이나 그 때와 같은 대답을 할까? 세상은 사람들에게 작품이 아닌 상품으로서의 삶을 강요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적성과 재능보다는 금전적인 보상이 큰 분야를 선택한다. 자신 외에는 대체재가 없는, 비탄력적인 재화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세상은 경쟁력이란 이름으로 이러한 노력을 부추기고 당연시한다. 그렇게 되자 인생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꾸려가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무엇이 우리 삶을 이렇게 왜곡시켰을까? 많은 이들이 그 범인으로 시장을 지목한다. 그렇지만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이는 시장이 삶의 질을 크게 높였을 뿐만 아니라 자유와 선택의 폭을 크게 증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시장이 물질적 풍요는 제공했을지 몰라도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과연 시장은 우리에게 득이 되는 제도일까? 해가 되는 제도일까?

시장이 주는 득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한 학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대공황 등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20세기의 최대 사건은 한국, 대만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시장의 힘이다. 마르크스조차 인정했듯이 시장은 다른 어떤 체제보다도 인류에게 최대한의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시장이라고 했다.

경제학의 시조로 꼽히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묘사한 시장은 무질서에서 질서를, 그리고 부조화에서 조화를 연출해내는 경이로운 ‘보이지 않는 손’이다. 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제멋대로 거래를 하고 나서는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곳이다. 무척 무질서해 보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 만큼씩 사고파는 가운데 마치 미리 계획을 세우기나 한 것처럼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놀라운 질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보다 놀라운 것이 있다. 시장에 나간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 장사꾼들, 겉으로는 천사 같아도 뒤로는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물건 사는 사람들, 장사 잘되라고 물건 사주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공익 증진을 위해 시장바닥에 나가는 사람은 없다. 시장에서의 거래란 거래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시장은 결국 거래하는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킨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시장은 각 개인으로 하여금 상충된 사익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가운데 저절로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진시키는 기막힌 장치이다.
 
시장이 주는 해
오늘날 사회는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시장의 덕택으로 사람들은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향유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때로 시장에 대해 호의적이기보다는 강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드러낸다.  사실 시장은 장점만큼이나 치명적인 단점도 많다. 우선 시장은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시장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달성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시장은 이미 주어진 인간의 선호나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방안에만 골몰할 뿐 그 욕망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침묵 한다. 시장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이익만 추구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시장은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 구매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부채질한다. 물건이 잘 팔려야만 기업의 생산도 활발해지고 그래야 경제성장도 가능해지며 자본주의 체제도 무리 없이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부풀리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점점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와 이를 기반으로 한 소비 증가를 행복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인간을 매우 탐욕스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물욕과 소유욕을 끊임없이 조장함으로써 쓸데없는 수요를 부풀린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행복하기는커녕 늘 부족함을 느끼도록 만들고 무언가 부족하게 만든다.
과도한 시장의 힘
 
목욕통 안의 목욕물이 더럽다고 목욕통 안의 아이까지 버릴 수 없듯이 시장이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시장이란 제도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시장이란 제도가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면서 심지어 우리 자신을 포함해 주위의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상품화하고 가치관을 획일화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힘이 정당한 한계를 넘어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진보시켜온 다른 사회 영역을 침범하여 마구 짓밟고 있으며 삶의 구석구석 미세한 부분까지 지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시장은 우리 사회의 어느 한정된 범위에서만 작동해야 하는 원리이다. 현실의 시장은 그 본연의 영역을 넘어서 과도한 월권을 하고 있다. 시장은 원래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인간이 고안한 제도인데 이제 시장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시장의 월권으로 인한 가장 심각한 폐해는 노동의 상품화다. 노동은 본디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활용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행위였으나 상품화되면서 순전히 금전을 획득하기 위하여 육체와 정신을 사용하는 행위로 폄하되었다. 시장에서 생산의 목적은 생산성의 극대화이다. 기업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노동을 세분화하고 전문화시킨다. 결국 노동은 단순화된다. 시장에서 노동자는 하찮은 부속품으로,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노동의 실상에 대해 헨리 조지는 “인간이 싫어하는 것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는 노동, 결과를 볼 수 없는 수고이다. 매일매일 안간힘을 쓰며 일해 봤자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것, 이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얘기했다.

노동시장이 자유와 자주성 그리고 보람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소비로부터 찾으려고 한다. 흔히들 직장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날은 월급날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직장인들은 사무실을 나오면 되도록 빨리 일을 잊고 싶어 하며 각종 향락과 소비활동을 통해서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향락과 소비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다. 이런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그 정도의 성공을 위해서 사람들은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무장하여 치열한 생존경쟁에 뛰어든다. 본말이 전도된 이러한 구조에서 공동체니 헌신이니 봉사니 하는 것들은 사람들에게 무의미할 뿐이다. 폴라니의 지적처럼 시장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삶의 의미와 지향할 목적을 제공하던 문화적 환경과 제도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며,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사소하게 만들고, 사람마저도 천박하게 만들고 비하시킬 수 있다.

대안이 있는가?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주어진 제약 하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경제주체들의 이기심에 기반 한다. 사람들은 과도한 시장의 힘에 노출되면서 더욱 이기적이 되고 도덕적으로 무뎌진다. 과도한 시장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기심을 누를 이타심이 필요해진다. 특히 노동의 상품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타심에 기초한 노사간, 소비자와 생산자간에 상호 신뢰와 인격적인 관계 형성이 필수적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은 시장의 대안으로서 이타적인 삶이나 사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지적해왔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카고대학교의 베커 교수는 이타심과 도덕심이 교육이나 실천을 통해서 얼마든지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빈민을 위한 은행을 표방한 그라민 뱅크 같은 시도들이 간간히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시장의 과도한 힘을 압도할 만한 이타적인 힘은 아직 찾기 힘들다. 특별히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사회가 더욱 그러하다. 여전히 이타적인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이야기이거나 부담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이타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 아닐까? 평생 학습을 통해 익숙해진 지금의 삶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 아닐까? 이타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지, 그 유익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 아닐까? 이미 우리가 충분히 이기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주고 있지 못하기에 그 답을 찾아야 하는 몫이 누군가에게 남겨져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복음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미친듯 헤매도 내 뜻대로 사는 행복을 위해”
입력: 2008년 04월 23일 14:29:30
ㆍ‘대광高 종교자유’ 시위 강의석의 그 후

소년은 세계평화를 꿈꿨다. 자신이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하나 둘씩 바꿔나가면 세계평화는 곧 올 것 같았다. 청년이 된 소년은 이제 세계평화를 꿈꾸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띠를 두르고 나섰을 때 사람들은 응원을 보내오거나 간혹 비웃기도 했지만 누구 하나 함께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청년의 목표는 ‘나 자신’의 평화요, 행복이다.


학내 종교자유를 외치던 투사, ‘대광고 강의석군’으로 이미 유명해진 그는 이제 스물세 살의 청년 ‘강의석씨’가 됐다. 단식으로 핼쑥해진 얼굴을 하고 교복을 입은 채 피켓을 든 모습만 기억한다면 지금의 그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때 이른 여름 날씨, 그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나왔다. 서울대 법학부를 휴학 중인 강씨는 지금 행복을 찾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튀는 행동만 골라서 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르겠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인권운동에 본격 투신하는 듯하더니 복싱에 몰입해 화제가 됐다. 강씨는 지금 호스트바에서 일하고 있다. 1주일 전까지는 택시 기사였다. 그 사이에 주연 겸 감독이 돼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법대에 진학했는데 사법시험은. “준비하다 말았다.” 군대. “안 갈 생각이다.” ‘너무 튄다’는 비난은. “신경 안 쓴다.” 언론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 영악하다는 평인데. “맞다. 내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되니까.” 꿈은. “지금은 영화감독을 하고 싶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안할 거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뒹굴거리며 사는 게 꿈이다.”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미친듯이 헤매고 있는’ 강씨를 만났다.



-이제 20대 초반인데 정말 튀는 이력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호스트바에서 일한다고요. 솔직히 놀라운 걸 넘어 충격적인데요.

“궁금했어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연예계로 나갈 친구들도 있고, 운동하다가 돈 좀 벌어보려고 온 사람들도 있고, 대학생도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 3번 출근했고요. 손님들 앞에 서서 ‘4번, 의석입니다.’ 인사하고 ‘초이스’도 한 번 받아봤네요. 하는 일은, 아시잖아요. 손님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노래 부르라면 부르고, 손님들이 시키는대로 해요. 손님들은 그냥 아직 신기해요. 만원짜리 돈을 그냥 종이 뿌리듯이 팁으로 뿌리니까. 아직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는데 뭐 그냥 재미있어요. 잘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20만원도 벌고 50만원도 번다는데 전 6만원 정도 벌었어요. 두어 달은 해볼 생각이고요.”

-그냥 궁금해서 시작했다고요? 아니, 집에서는 아시나요.

“호기심이 생겨 해보고 싶어지면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냥 해봐요. 어머니도 알고 계세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시죠.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어요. 제가 자라온 곳은 청량리 집창촌 근처인데요. 학교에 갈 때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여요. ‘저 사람들은 왜 저런 일을 할까. 저렇게 예쁘면 TV에 나가면 되지 않을까. 저 안에 있으면 기분은 어떨까.’ 그냥 궁금했어요.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구나, 생각해요.”

-얻는 경험에 비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 친구들 반응이 다양했어요. ‘너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구나’에서부터 ‘진짜 상처 많이 받을 텐데….’ 이런 걱정까지요. 물론 수치심이라든가 리스크가 크단 생각은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안하면 안될 것 같았고요.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사람들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었고 앞으로 영화를 하고 싶은데, 이런 일을 하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죠.”

-바로 지난 3월에 택시 운전을 하면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는데요. 업종 변경이 잦습니다.

“사실 호스트바에서 일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택시 운전 중에 하기 시작했어요. 딱 한 달 택시 운전을 했는데 어느 날 태운 손님이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관심을 보이니까 한 번 오라고 했어요. 택시를 관둔 후에 그 사람을 찾아간 거죠. 택시 손님 중 보험회사 다니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 얘기 들으면서 보험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택시 할 때도 물론 사람이 궁금해서 했어요. 한 달 했는데 사람도 많이 만났고 조금 알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만둔다고 하니까 같이 일하는 분들이 한 여섯 달은 해봐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씀도 하셨지만요.”

-하고 싶은 일은 뭐예요. 인권운동으로도 유명했고, 정치도 하고 싶다고 했지 않았나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치를 하고 싶었고, 대학에 와서는 사법시험을 봐서 변호인이 돼 뭔가 바꿔보고도 싶었습니다. 사법시험 공부는 재미있었어요. 하려면 수석을 해서 나 하는 일에 도움받고도 싶었고. 왜 사람들은 권위, 지위 같은 데 약하잖아요. 내가 그런 사람이 되면 내 말이 더 잘 먹히겠지 이런 거요. 그런데 점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요.”

-의미가 없어진 이유는 뭡니까.

“종교자유를 얘기할 때도 그랬고 이라크전 때도 우리 한번 나가보자, 뭔가 해보자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참 대다수는 무관심하더군요. 참 이상하죠. 응원은 하지만 직접 나서지는 않아요. 점점 더 의문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런다고 바뀔 수 있을까’ ‘바뀌면 행복할까’ ‘이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바꿔줄 가치가 있나’ 부정적이에요. 개인적으로도 세상을 빨리 바꿔놓고 재밌게 살려고 했는데 이젠 그냥 저만 재밌게 살면 된다고 봐요. 고등학교 때의 제가 세계평화를 꿈꿨다면 지금은 나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거죠.”

-영화는 왜 하고 싶은 겁니까. 영화를 직접 찍기도 했나요.

“영상으로 얘기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지금까지 두 편 찍었는데 처음 찍은 게 ‘아프리카’라는 다큐멘터리예요. 아프리카에 가는 교양수업이 있었는데 영상을 만들고 싶어서 무작정 찍었죠. 어떻게 찍는지만 공부해가고 뭘 찍을지는 생각 안하고 갔어요. 참 잘 안되더라고요. 또 올해 1월에는 멜로 영화 ‘뜨거운 사랑’을 찍었어요. 한계를 알고 시작했고 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울 정도죠. 뭐 영화감독도 최종 목표인지는 모르겠어요. 영화를 해서 행복할지도 모르겠고요.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랑 뒹굴거리면서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은데 밥 먹을 돈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게 한번 해보다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만두려고요.”

-그럼, 인생관이 바뀐 건 일종의 허무주의 때문인가요.

“큰 희망에 부풀었는데 회의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어요.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이런 무관심을 바꾸려면 내가 더 뛰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공부할 시간은 없어지고, 한 번 시험을 망쳐보니까 이거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난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이러다가 아무것도 안되겠다는 고민. 갈등이 심했어요. ‘내 능력이 모자라지는 않나’하는 생각도 저를 괴롭혔고요. 사람을 너무 모르기도 했어요. 전 웃고 있는 사람들은 다 행복한 줄 알았어요. 하고 싶은 건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하면 되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웃으면서도 허무해하고 회의하고 있더라고요. 아프리카에 갔을 때도 다들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해요. 어, 난 가고 싶은데. 한국에 돌아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잖아요. 행복할 것 같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서도 안해요. 그럼 내가 굳이 이런 사람들을 행복하라고 일을 벌일 필요가 없는 거구나. 나만 행복할 일을 하되 최대한 행복할 수 있게 해보자. 그런데 또 그렇게 마음 먹으니까 행복이 없어져요. 참.”

-혼자 행복하려고 해도 또 사회가 받쳐줘야 할 테니 아이러니컬하네요.

“빨리 안되니까, 조급함 때문에 점점 더 회의에 빠지는 거죠. 대학 때는 철학수업도 듣고 사회학 수업도 들었어요. 이런 고민을 가지고 선생님들을 찾아뵙고 상담을 받기도 했고요. ‘선생님, 저는 모기를 죽일 때 죄책감을 느껴요. 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행복하신가요.’ 선생님들은 일단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네가 회의를 느끼는 것도 알지만 응원해 주는 사람도 많다’고 하시면서요. 내가 앞으로 어떤 지향으로 살아야 할까에 대해서 답을 듣고 싶었지만 그런 답은 못 들었네요.”

-대학 생활은 어땠습니까.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은데.

“치열하게 살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고, 남는 시간은 인권 캠페인도 하면서 24시간을 좀더 활용하려고 생각했죠. 대학 생활 초기에는 재미있었어요. 수업도 좋았고, 법대 노래패도 하고 복싱도 했고요. 그런데 내가 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컸나봐요. 날 키우기 위해서 다 쏟아야 하는데 벅찼어요. 하루에 서너 시간 자고, 매일 적어도 책은 세 권씩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에 한 권 읽기도 벅차고. 사회를 빨리 바꿔버리고 편안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그것도 힘들고. 휴학에는 뭐 그런 이유도 있어요.”

-군대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복싱하다 다친 이후로 공익 판정을 받았는데요.

“네. 군대 안갈 거예요. 필요성이 잘 느껴지지 않아요. 예를 들면 경찰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군대는 글쎄요. 다른 사람들 말로는 우리가 일제시대 경험도 있고 나라가 없으면 설움을 당하니까 나라 지키러 가야 한다고 하죠. 그런데 군대가 지금 그런 식으로 가지 않는 거 같아요. 대부분은 가서 삽질을 해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 함부로 굴리고. 제가 택시 태웠던 군인들 얘기 들어보면 그래요. 삽질하고 할 일이 없을 때는 쥬얼리 ET춤 배우고 그러다 나갈 때 되면 영어공부 같은 취업준비 시작하고요. 어떻게든 하기 싫어서 십자인대 끊으려고 밟아달라고까지 한다고 해요. 의미 없잖아요. 다들 하기 싫잖아요.”

-그럼 양심적 병역거부 대열에 들어가는 건가요.

“일단 방법을 생각 중이에요. 사실 그냥 갔다 오는 게 편하죠. 군대 갔다온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 같은 것도 안 느끼고, 감옥 가는 것보다 군대 가는 게 낫죠. 그런데 이게 잘못된 제도라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못하겠어요. 군대는 건강한 남자들이 갑니다. 건강하지 않거나 대다수 여자는 안 가죠. 나라 지키는 게 국민의 의무라면 어떻게든지 모두에게 의무를 부과해야죠. 군가산점 제도 같은 걸로 해결하려는 것도 정말 좀 웃겨요. 군대 가는 게 군가산점 얻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군가산점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피해를 그런 식으로 보상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잘못된 제도를 막으려다 보니 잘못된 제도가 계속 만들어지는 거죠.”

-얘기대로라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무작정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해서 그런가요. 너무 튀려고 하는 거 아니냐, 영악한 거 아니냐 하는 비판도 많습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물론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언론에 나가면서 제가 하는 일에 더 힘을 받을 수 있으니까 제가 이용한 면도 있지요. 고등학교 때 튀었던 이유는 고3인데 퇴학을 당한다 어쩐다 하면서 튀었던 거 같은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튀면 발언할 기회도 많아지고 교류할 기회가 많아지니까. 대학교 1학년 때 복싱하면서 언론을 많이 탔는데 그때는 의도적으로 이용했어요. 보도가 되면 곧 있을 공익소송에도 참여를 많이 해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저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는 건 싫어요. 내가 하는 모든 말, 많은 행동이 비호감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래도 노력한다고 될 것은 아니니까, 같은 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개인적인 비방 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참여’를 많이 해본 사람으로서 총선이나 대선에서 20대들의 참여율은 왜 그렇게 낮은 것 같습니까.

“얘기를 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사실 관심은 많아요. 고등학교 때 봐도 다들 관심이 많았어요. 고2 무렵에는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 문제가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있었고요. 얘기해보면 다들 의견이 많아요. 그런데 청소년의 정치적인 참여에 대해서는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모른다 이러니까 그게 쌓이는 거죠. 실업률도 높아지고 그냥 대학 가라는 분위기니까요. 또 개인주의적인 경향도 큰 것 같고요. 그런데 이게 뭐 20대만의 문제인가요.”

〈 글 김다슬·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amorfati@kyunghyang.com 〉

강의석군의 글을 읽으며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나요?

저는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인터뷰 내용 속에서 과연 이 아이의 삶에 방향성이란 것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고요.

이것저것 기웃거리지만 자신의 삶을 걸만한 무엇가를 찾지 못하는 것은 중요한 것들에 대한 definition이 없기때문이란 생각도 해 봅니다. 내 뜻대로 사는게 행복이라고 하는데

과연 이 친구의 "내 뜻"이란 무엇인지 잘모르겠고

"행복"의 정의가 무엇인지 잘모르겠고...

강의석군에 대하여 비난하고자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저런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보자는 것이지요.

내 삶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내 삶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 제대로된 definition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도 삶이라는 여행을 방랑하다 끝날지도 모릅니다.

진지한 물음과 성실한 고민 속에 제대로된 삶을 사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연애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참으로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그저 그렇게 가볍게 보아넘길 영화라는, 로맨틱 코메디가 다 거기서 거기지, 라는

또 오류를 범하게 하는 광고들을 보고 지레짐작했던 이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연애따로 결혼따로

하나의 방정식이 되어버린 세대도 그렇고

걸쭉한 욕지꺼리가 난무하는, 그래서 불편했지만 그만큼 절절하게 파고들던

정말 끈끈한 무언가가 없는 사람들은 나누지 못할 욕설의 미학.


영운은 자기 사랑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사회적인 편견을 용감하게 뛰어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자기 감정을 숨기지도 못했다

차라리 영악하게 욕구해소용과 가정생활 영위라는 명제를 제대로 실천했더라면

어쩜 이 영화가 주는 진한 감정이 없었겠지만...


"엄마, 엄마도 그러는거 아니예요. 영운이랑 나랑 4년 사겼거든요, 아니, 살.았.거.든.요."

"난 첩년도 좋고, 세컨드도 좋아. 그러니까 나 버리지마 영운씨..."

"내가 널 어떻게 버려. 울지마 미친년아..."


욕은 생활이다

생활의 잔때가 여기저기 묻어있는 영화가 가끔 날 미치게 한다

"이렇게 술이나 퍼마시면서 평생 놀기만 했으면 좋겠다"

"너 지금 그렇게 살고 있어, 미친놈아"

친구가 좋고

어울려서 술마시는게 좋고

여자 꼬시는 재미가 좋고

흥청망청 물쓰듯 돈을 쓰면서도 벌기는 좇나게 싫은

그래서 결혼이라는 울타리의 가장보다는

슬쩍슬쩍 집안일 도와가며 눈치봐가며 몰려다니는 그 생활이 못내 끝내기 아쉬운 그들


그만큼 연아는 영운에게 부담없는 존재다

그 부담없는 존재는 언제든 떨궈낼 수 있는 직업적 안전장치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당당하게 사랑하면서도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관계다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는 밤새 술에 취해갔다

"내가 영운이 잘 알지.."

가차없는 주먹 앞에서도 저항 할 수 없었던 여자

그런 여자를 외면하고 눈물 질질 흘려대며 "사랑해 수경아"를 안전장치로 내뱉어야 했던 남자

우유부단하고 지 눈에 대들보는 못보면서 남의 눈의 티끌은 엄청 교훈적으로 마다하는 남자

욕을 하고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살스러우면서도 다독여 주고 싶은건

영운이 정말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성질 드럽고 화끈하면서도 정스러운 연아

마냥 불쌍하거나, 동정스런 느낌을 가질 수 없는건 그녀가 당당하기 때문이다

직업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을 할 줄 알았던 여자의 당당함

영운과 연아의 관계는 그만큼 사실적이다


라스트

그만큼의 거리

마주 보지 못하고

서로 흐느껴야 하는 그 거리...


사랑이란

그 마지막의 거리감 같은게 아닐까

어느 정도의 선을 유지해줘야만 하는

마주보지 못하고 외면하면서도 서로를 돌아 볼 수 있는 딱 그만큼의 거리

그 거리를 지키지 못하는데서 사랑은 수많은 갈림길을 만난다

진작 알았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편한 마음으로 갔다가 무거움에 절어서 나오게 된다. 이 영화는.

끝없이 이어지는 욕설때문에 불편했던 마음이 그것 때문에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2007년을 시작한 드라마다. 2007년을 마치며 문득 이 장준혁이 내 머리 속을 떠올랐다.

장준혁은 야망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서 배신, 모함, 아부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욕망의 폭주기관차이다.  오진으로 사람을 죽였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장준혁이 밉지 않다. 오히려 악착같이 성공하기를 바랬다. 결말에서 결코 죽지 않기를 바랬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달랑 오기와 깡밖에 없는 장준혁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장준혁은 쉴 틈도 없이 자기 앞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했다.
때로는 잔인하게 때로는 비굴하게....(노민국에게 무릎을 꿇을 때는 도는 줄 알았다.)

아무리 강한 장준혁이지만 그래도 사람인데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장준혁이 할 수 있는 것은 달랑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를 시골집 문 앞에서
듣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장준혁 속에 내 모습을 보게된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장준혁의 편이 되고 만다.

"어떻게라는 생각을 버려! 조건없이 무조건이야! 쉬지말고 놓지말고 끝까지 붙어.
그럼 결국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된장 이 말이 왜 이렇게 슬프냐!

 

 



90년대 초중반은 프로야구 전성기이다. 당시 최고의 팀은 단연 LG 트윈스다.

신바람 야구의 이광환감독을 필두로 정삼흠, 김태원, 유지현, 송구홍, 김재현, 박종호,
그리고 이상훈....

그 중에서도 나의 Hero는 이상훈이다.

남들과 달리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고대 야구부의 에이스로 스카웃되었고 최고 계약금액으로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가 되었다.

그런 그가 생뚱맞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며 홀연히 한국을 떠나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일본에서도 그리 큰 활약을 떨치진 못했지만 결국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그러나 정말 입단만 했다.

그는 대한민국에 유일무이한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한 야구선수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은 야구와는 상관없이 락을 하는 가수가 되었다.

이런거 아무나 할 수 없다.

이상훈은 야생마란 별명처럼 정말 자유롭게 인생 제대로 산다. 진짜 멋있다.


다음은 2005년에 딴지쩜빵에서 한 이상훈의 인터뷰 중 일부 내용이다.

다 옳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한 선택이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어떤 결정의 결과가 예상보다 못할 경우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결정을 내리게 만든 상황이나, 그런 결정을 내리도록 조언하고 권장한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후회한다. 최종 결정권을 누가 대신 행사한 것도 아닌데도 남 탓을 한다. 후회나 원망이 없다는 건 상황이나 주변은 언제나 '참고'만 하고 매사를 오로지 자신이 결정하고 그렇게 결정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라 여기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이상훈을 읽는 첫 번째 키워드다.

성공의 의미를 모른다..

대한민국 야구 선수 중 일본과 미국의 프로를 다 겪은 건 그 밖에 없다. 그런 그가 성공의 의미를 모른다고 한다. 성공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그 일을 하고 싶다.. 이외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냥 그 순간 그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한 것이다. 그게 다다.

이상훈을 읽는 두 번째 키워드다.

해보고 싶은 게 없어요..

그는 순간에 산다. 미래에 대한 리스트를 뽑고 가능성을 체크해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짜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그런 거 없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생기는 순간, 그냥 그걸 한다. 
대단히 상식적이다. 자신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에 따라 상황을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해 합리화하는 걸 안 한다.

그는 직선으로 사는 사람이다. 가는 길에 방해물이 있다고 에둘러 가지 않는다. 시간이 걸린다면 에둘러 가서가 아니라 그 앞에 고스란히 서서 멀뚱히 때를 기다려서다.

주변 눈치도 보지 않는다. 눈치를 보지 않아야겠다 의식적으로 결단해서가 아니라 그저 볼 필요가 없어서다.
어차피 결정은 자신이 하니까.

그는 성공도 모르고 실패도 모른다.
그가 아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걸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고 사는 게 인생이다. 이상훈은 그걸 온 몸으로 증명한다.

씨바 졸라 멋지다, 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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