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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만 5년이 지난 얘기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느덧 그때 아이들은 졸업하여 사회초년병이 되었다. 그 때 그 사건.........



학부 때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라고 부를께.

니가 이 글을 읽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니가 생각과 생활을 함께 나눠온 학생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은 얘기여서 여기에 적는다.

니하고 나하고 LTC 때 같은 조였던 것 기억나나?

그때 니는 참 고민이 많은 후배였지.

진지하게 고민하고,대충 답을 구하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납득이 가는 답을 찾으려고 했지.

그게 참 좋아보였다. 아마 간사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그런 자세로 살아왔겠지.

그래서 내가 널 자주 보지도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널 신뢰했다.

내가 아래에 쓴 많은 글에서도 이미 말했지만,이번 일을 처음 들었을 때도 한기연이 걱정되는 한편으로 '현석이가 실수를 했구나. 현석이가 너무 큰 상처를 받으면 안될텐데'하는 걱정도 컸다.

그런데 문제 해결 과정에서 보여준 니 태도는 정말 실망스러웠고 안타깝다.

그동안 내가 니를 잘못 봐온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이 문제 과정에서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너에 대한 얘기는 최소한의 사실에 입각한 얘기만 인정하려고 해도 많이 실망스럽다.

처음엔 너도 좀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면서?

그런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 '나는 자유연애가 옳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 가치관이다' 이런 거라는 거지?

니가 치열한 고민을 한 결론이 고작 그정도라는게 정말 실망스럽다.

그래서 그동안 한기연에서 학생으로 간사로 활동하면서 니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신앙과 사회의 문제도 고작 그정도 수준에서 밖에 소화하지 못했을거란 생각에 더 실망스러운거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너를 만나서 설득하려고 했지만 넌 설득되지 않았지. 오히려 당당하게 니 가치관이라는 걸 주장했지.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던 그 설득하려는 노력을,내가 여기서 한번만 더 해볼께.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니가 '설교'한 얘기 중에 이런게 있었다.

정주영이나 이건희 입장에서 보면,노동자들을 대하는 그 사람들의 태도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도,내가 정부라도 어쩌면 그럴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두려운거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칫 잘못하면 나도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합리화하고,지금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라고 하는 그런 자세로 세상을 살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늘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갈고 닦아야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니가 지금 그런 '자칫 잘못된'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본능,특히 남자의 본능이야 다 비슷하지. 니 같은 행동을 하려는 마음,가질수도 있지. 니같은 처지에서는 행동으로 옮길수도 있지. 더구나 그 행동으로 제3자가 무슨 물리적인 피해를 입은게 있나?

그러니 어쩌면 잘못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동안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온 내 생각이나 사람들의 일반적인 가치관이 잘못된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가치관,잘못된 대다수의 생각과 싸워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배경에대한 전달도,내 생각을 존중해주는 토론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 간사를 징계하는거지? 저 사람들도 가치관의 다양성을 인정해온 사람들인데,그렇다면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좋다. 그렇다면 행정적인 결정은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최소한 ***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계속 ***의 가치관을 나누는 것은 놔두는게 맞지 않은가.

혹시 이런게 니 생각이니?


있잖아,내가 언젠가 니한테도 했던 얘기 같은데,제일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꼴통 보수인 사람도 아니고 극좌 모험주의로 사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제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너무나 뚜렷하고 스스로 '내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고 반성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히틀러도 나름대로 가치관이 있었거든. 지금도 독일에 가면 그 가치관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하거든.

그런 히틀러를 죽여야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거든. 그 가치관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런데 히틀러는 자기를 반성할줄 몰랐다. 히틀러를 죽여야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매일 자기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정직하게 반성했다.

나는 후자의 사람이 좋고,그렇게 살고 싶거든.

너는 어떠냐. 너는(설마 스스로 히틀러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두 사람 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자기 가치관과 생각이 있으니 양쪽 다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그래서 너의 가치관도 존중해달라고 말하고 싶니? 근데 내가 보기엔 그게 히틀러처럼 위험한 생각이거든. 니가 '설교'했듯이 잘못된 생각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거거든.

내가 학생대표들에게 쓴 글에서 누누히 말했듯이,그런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는 것은 그건 가치관을 존중하는게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거든. 그래서 동문들이 이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는 거다.

한기연은 니 혼자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많은 구성원들의 공동체인데,이렇게 너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면 적어도 니 자신을 반성해봐야하지 않겠니? 그런 반성의 기간 동안에는 자숙하고 모든 사태에 개입하지 않고 물러나 있어야하지 않겠니?


어쩌면 이럴지도 모르겠는데,혹시라도,니가 한기연을 떠난,그것도 명예롭지 못하게 떠난 뒤의 삶에 대해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 논리를 만들어서 주장하고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한기연에 머물려고 하는 것이라면,그런 두려움은 떨쳐버려라.

니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니가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널 용서해주시고 널 써 주실 거다. 다윗이 그랬거든.


***아.

난 말이지,차라리 니가 니말대로 니 나름대로의 '남녀간 애정 관계'에 대한 소신 때문에 이러는게 아니라 사실은 속으로 니가 헌신해온 한기연을 떠나는 것에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 당당한 척 주장하는 것이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니가 반성하고 뉘우칠 가능성이 있으니까.

제발,제발. 무엇이 옳은지 제대로 판단해라. 니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이 선배가 이렇게 너에게 부탁하니 제발 한번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주려무나.

무엇이 옳으니. 무엇이 그르니.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봐.

그리고 니가 어떤 책임을 지는게 맞는지,생각해봐.



난 요즘 솔직히 세상 살 맛이 안난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 사이에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학생 시절의 소박한 믿음이 깨진지는 오래됐지만,내게 가장 소중한 공동체였던 한기연에서도 그걸 다시 경험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지,무엇이 그른지,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 이런 생각이 다를 때 어떤 해답을 `공통답안'으로 만들수 있을까.

유한한 경험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행동할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가 이런 걸까.

이런 인간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하니,니나 나나 참 힘들다,그지?

내가 차라리 한기연이란 공동체를 포기해버리면 너랑 나랑 서로 힘들 일은 없을까?

어차피 천년 만년 살아갈 세상도 아닌데,나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할 일이 많은데 그냥 그러는게 나을까.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실 때까지는,이렇게 너를 설득하려고도 하고 학생들도 만나보고,동문들과 논의도하고,내가 정말 하나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되돌아보고,이렇게 살수 밖에 없구나.

우리가 이런 한계를 가진 인간이니,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하는 것이겠지.

하나님이 주신 생,우리의 짧은 생각과 잘못된 판단으로 허비하지 않도록 기도해야하는 것이겠지.

지금 너랑 나랑 서로 세상 살맛나지 않게 만드는 관계이지만,이렇게는 기도해주지 않겠니? 우리가 서로 하나님을 범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혹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빨리 돌이켜 한번뿐인 인생마저 허비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해달라고.

잘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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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관3층 복음동아리실.

문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에 덜 쪽팔려서 들어간 곳이 한기연이다.

대학에 들어오면 결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기독교 동아리이다.

영자신문사 granite tower, 과내 모임 한국사연구회....멋모르고 가입했던

많고 많은 동아리들 중에 결국 남은 것은 1학년 1학기 내내 한번도 정기모임인

한마당에 가본 적이 없던 한기연이다.

내게 이기적이고 부끄럽고 무기력하게만 보였던 복음이란 것을

세상을 구원시킬 수 있는 유일하고 강력한 것으로  

새롭게 인식시켜 준 곳, 그렇지만 우리는 한기연을  鷄肋이라고 했다.

뭔가 있는 것 같지만 아무 것도 없는 곳.........  

그런 한기연은 내 대학 생활의 전부였다. 
한기연의 이런 저런 소식들을 들으면서, 저 나름대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한기연이라는 이름에 대한 미련을 지우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한기연을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정신과 비전만은 잃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한기연을 떠난 지 오래되었기에, 비록 제가 고성숙 지부의 담당 간사였고, 한기연의 대표간사였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에게 공식적인 부탁을 할 자격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한 선배로서, 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려가는 한 개인으로서의 바람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 바람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분 중에 하나인 박노해 시인의 ‘희망의 뿌리 여섯’이라는 내용에 잇대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는,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의무와 명분으로는 약합니다. 단순한 진보적인 의식만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정말 내가 잘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모두 다 버리고 떠나도, 나 혼자서도 스스로 주어진 삶을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일에 자신을 올인해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주변의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영성의 깊이를 더해가십시오.’ 특별히 명상을 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고, 일기를 쓰고,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고, 여행을 하고,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깊이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지 않으면, 습관이 나를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당위가 나를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진보하고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늘 깨어서, 나의 작은 의식과 삶까지도 성찰하고, 새롭게 반응해 나갈 때만이 끝까지 푸르고, 성장해 나가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평생공부를 해 나가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앞으로의 삶에 플러스의 효과를 잠시 줄 수는 있으나, 보장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진짜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대학 때는 최소 200권 정도의 책을 읽어내고, 졸업 후에는 의무적인 공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서, 꾸준히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급변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공부가 없이는, 진정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공부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삶의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공부여야 하고, 나아가 깊은 묵상으로까지 이어져, 삶으로 나타날 수 있는 지혜의 공부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공부는 곧 인격의 변화와 성숙으로까지 나타날 수 있는 공부여야 합니다.

네 번째는, ‘몸 수련을 해 나가십시오.’ 젊을 때는 잘 못 느끼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 통하지 않는 진리는 공허함을 알게 됩니다. 몸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기독교의 복음주의적인 전통에서는 몸에 대한 강조가 없습니다. 오직 영에 대한 강조만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에서는, 몸을 닦는 것이 곧 영혼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몸과 영혼은 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운동이건, 어떤 수련이든 한가지는 꼭 붙들고 가야 합니다. 먹는 것도 아무거나, 그냥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고 먹는 것이 아니라, 깨어서 잘 먹고, 잘 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몸을 가볍게 만들어 가는 일, 우리의 삶에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다섯 번째는, ‘관계능력을 키워가십시오.’ 젊을 때는 지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높은 책임의 자리를 맡아 갈수록, 그 사람이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이 어떠하냐, 그 사람이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을 만나고, 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한 사람의 깊은 부분과 만나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그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그런 만남에서 만이 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남에서 만이, 외롭지 않은 깊은 사랑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또한 용서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 내 마음에서 용서하고, 품어 안을 수 있는 그런 큰 마음을 키워갈 때만이, 사람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는, ‘나눔과 연대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나중에 뭔가 갖추게 되면, 돈이 있으면, 시간이 생기면 이 아니라, 지금 작은 것부터, 나눌 수 있는 것부터 나누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 땅에서 소외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과의 깊은 일치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놓치지 않고, 지금의 나의 자리에서 그런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거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기도 하지만, 설사 그렇지 못해도 나의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런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이야말로 나 자신이 더욱 더 성장해 나가고, 이 세상이 변화되어 가는 지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온전한 복음, 총체적 복음화가 단순히 사회적인 변화와 혁명의 차원만이 아니라, 나의 깊은 존재의 변화, 나의 몸 생활의 변화, 그리고 나의 내면의 막힌 감성의 깨어남과 사고의 변화까지 함께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전 존재적이면서도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혁명은 단순히 의식만이 아니라, 과격한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부드럽게 그리고 긴 호흡으로, 안과 밖이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으로 깊이 살아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날 때, 이 세상은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내고, 키워내는 운동이 이어질 때, 이 세상은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한기연이라는 이름은 역사에만 남고, 사라진다 할지라도, 이런 비전과 희망과 정신만큼은 우리의 뱃속 깊은 곳에서 흘러 흘러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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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족의 밤때 여러 동문들 오랜만에 만나고 후배들이 공동체에 애착을 갖고 활동하는 모습 볼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준비하신 후배님들 정말 수고많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어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합니다.

뒤풀이 때 **가 왔잖아요.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하고 있죠.
근데, 물론 친근감에서 한 얘기겠지만,뒤풀이 때 같이 왔던 **누나가 "국정원이 가서 보고해"라고 얘기하고 이어서 누군가 국정원을 비하하는 농담을 했을 때 **를 보기가 안쓰러웠습니다. ** 귀가 빨개지더라구요. 그런 행동은 좀 경솔한 행동이고, 사려깊지 못할 뿐만 아니라 편견에서나온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 국정원 시험을 쳤을 때,
저에게 물어보더라구요.
"형, 저 국정원 시험 쳤는데, 가도 될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갈등도 느껴지고..."
그때 저는 단호하게 얘기했습니다.
"**야, 니한테 국정원에서 일하게 될 기회가 온다면, 가서 열심히 일해라.
내가 얘기하나 해줄께.
우리 교회 목사님이 새벽기도 오려고 새벽에 차를 운전해서 오는데, 횡단보도에 사람 없는데도 신호등이 켜졌다고 차를 정지선에 세우고 있으면 다른 운전자들이 지나가면서 '미친 놈...'하는 눈길로 쳐다본다고 그러더라.
그런데 하루는 목사님 차가 신호등 앞에 서 있었는데 옆 차선에 다른 차가 와서 똑같이 정지선에 섰다더라. 그러니까 뒷 차들이 빵빵 거리고 난리가 났다. 아무도 없는데 왜 안가냐 이 미친 차들아!!하는 의미였겠지. 하지만 두개 차선을 두 차가 가로막고 있으니까 뒤차들이 갈수가 있나. 신호등 바뀔 때까지 못가지.
**야.
무슨 말이냐면, 앞차가 먼저 신호를 지키면 뒤차는 어쩔 수 없이 신호를 지켜야한다는 말이다.
국정원에 합격한다면 거기 가서, 신호를 지키는 앞차가 돼라. 그래서 뒤차들이 어쩔 수 없이 신호를 지키도록 만들어라.
사실, 사람들이 국정원의 한쪽면만 보고 안좋게 말하지만 사실은 필요한 일도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 쌀이 모자랄 때 쌀이 많이 나는 벼 종자를 외국에서 비밀리에 가져와 '통일벼'로 내놓게 한게 국정원이었다. 또 반도체 기술, 중동 건설 등 숨은 곳에서 국정원이 한 일이 정말 많다. 그런 좋은 일들 하고, 국정원의 잘못된 부분은 니가 거기서 고쳐가라. 그거 정말 필요한 일이다."

제 말이 잘못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저는 **같이 반듯하고 속깊은 사람이 국정원에 간다면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나의 직업인 기자도 욕을 많이 먹는 일이고, 사회당 국회의원 후보로 나온 **누나의 위치도 사람에 따라선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자리는 그런 얘길 할만한 자리가 아니었죠.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고요. 하지만 **가 속해있는 국정원에 대해서는 쉽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그 기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고, 그 기관에서 일하기로한 **의 선택에대해 오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에게 국정원에 가라고 했던 저의 권고는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날 그자리에선 **에게 미안하더군요. **의 빨개진 귀가 마음 아팠고, 다른 동문들의 무례함에 화가났었습니다.

**는 국정원에 대한 국민들의 솔직한 생각을 다시한번 알게된 기회로 삼아야겠죠.
**야, 그렇단다. 니가 할 일이 그만큼 많은거다. 국민들도 국정원 같은 정보 수집 기관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겠지만 과거에 국정원이 한 정치적인 역할을 잊지 못했고 또 진보세력이 아직도 취약한 현실에서 국정원의 현실적인 존재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여유가 없겠지. 하지만 다들 한 바다에서 만날 날이 있을거라고 난 믿는다.

**선배

우리는 성경적 신앙을 확고히 하고 한국적 토양안에서 복음화운동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1.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의 뜻대로 창조하시고 이 땅의 역사를 사랑과 정의로 통치하고 계심을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그 분의 주권적인 통치에 적극적으로 순종하여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하고 역사안에서 사랑과 공의를 이루기에 힘써야 할 존재들임을 고백한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몸소 하나님나라를 드러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과 세상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며 부활하셔서 죄와 사람의 권세에 대해서 궁극적인 승리를 성취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이셨던 삶을 따라야 할 제자들임을 고백한다.

3. 성령은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시며, 치유하시고 새로운 삶에로 결단케 하셔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예수의 생명력과 운동력을 가져다줌을 믿는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통에 힘쓰며 오늘도 모든 피조물과 함께 신음하시고 해방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동참할 것을 고백한다.

4.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교회를 만드시고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셔서 예배와 양육 그리고 친교와 세상을 향한 선교를 이루게 하신다. 우리는 공동체의 생활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서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훈련하며, 하나님나라의 질서에 합당한 나눔과 섬김의 삶을 실천하며, 선교적 활동을 통해 그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고백한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전도와 양육, 믿음의 성숙과 선교적 삶의 실천을 통하여 교회의 성장과 발전이 되도록 노력한다.

5.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간의 믿음과 행함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궁극적인 권위이다. 우리는 성경이 진리이며, 오늘의 문제에 답변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고 성경말씀대로 사고하고 실천할 것을 고백한다.

6. 우리는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구속받은 백성을 세상으로 보내심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처한 학교와 사회 속에서부터 우리의 전 삶을 통하여 복음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하나가 될 것을 다짐한다.

7. 우리는 비그리스도인에게 예수를 전하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보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다록 도우며,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를 일구는 활동에 힘쓸 것을 고백한다.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개인과 사회를 복음으로 변화시켜 하나님과 화해하는 일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8.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더불어 이 세상을 사랑과 정의로 심판하시고 그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하나님나라를 향한 우리의 수고와 땀이 갑진 것임을 믿으며 다가오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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