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광복의 빛을 가슴 속에 간직할 줄 알고, 타율의 무거운 도전에서도 자율을 위한 온갖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고대정인은 민족국가의 장래와 새역사 창조를 위해 길이 보존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학은 현재의 문제해결을 위해 그 힘을 모두 소진할 수 없으며 현실의 정치를 위해 교육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되겠습니다. 대학은 민족장래의 믿음직한 발전을 위한 도약대이지 현실정치의 거점이 되어서는 안되며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학원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엄연한 교육의 주체입니다.

여러분은 가치혼돈의 산업사회로 나가서 이와 같은 건전한 가치관을 전파하는 정신적 지도자가 되고 의리와 신의가 쇠미해가는 무정하고 삭막해가는 경쟁사회속에 인간이 인간을 믿고 존중하는 유정한 인격사회의 실현을 위해 우리 모든 고대인의 뜻과 힘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우리 민족의 보람찬 내일의 비전을 마련하는 민족 부흥의 힘이며 우리 고대인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있는 지혜와 힘을 바칠 줄 아는 애국애족의 민족적 양심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교 고려대학교의 영원무궁한 발전을 축복하면서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영원히 빛나라”의 교가의 한 구절을 우리 모두의 가슴 깊이 길이 간직합시다.

1985년 고려대학교 졸업식사 중.....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이번에 졸업하는 4학년 녀석이 먼 길을 찾아왔다. 취직을 했다더니 **웨딩, 돐 이벤트 회사란다.

자기가 유치해오는 고객의 수만큼 수당만 받고 기본급도 없다고 한다.

오늘이 영업 첫 날이라고 나보고 가입하라고 찾아왔다.

4시가 되었는데 점심도 못먹은 녀석에게 아주 이른 저녁을 사먹이고 보냈다.

철이 없긴 하지만 착하고 순한 녀석들이 만나는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라.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

 

파커 팔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 중에서

나, 고대 나온 남자다. 아내는 고대 나온 것으로 부족해, 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장인과 장모는 고대에서 함께 공부하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지난 18년 동안 나는 고대 근처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가끔 조깅을 해도 고대 운동장에서 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딸은 세상에 대학교라곤 고대밖에 없는 줄 안다.

제국대, 미션스쿨 그러나 고대는 민족대?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10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붉은 티셔츠의 무리를 보았다. 붉은 악마는 아니고 고대생들이다. 이틀간 열리는 ‘고연전’(어떤 이는 ‘연고전’이라 한다)의 첫날이었다. 저 신촌에서는 푸른 티셔츠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을 테다. 그들을 따라 잠실 야구장, 목동 아이스링크에 가버릴까? 문득 나는 옛 정체성이 그리워졌다.

고연전은 고대생의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는 최고의 ‘의례’다. 1993년 가을 고연전을 앞두고, 고대 축구팀 스위퍼 이임생은 국가대표팀 합숙소를 무단 이탈했다. 미국 월드컵 예선전이 코앞이었다. 국가대표 감독은 나가지 말라 했고, 고대 감독은 나오라 했다. 이임생은 태극마크와 월드컵을 포기하고, 붉은 줄무늬 유니폼과 고연전을 택했다. 곧바로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제명됐다. 1-0으로 고대가 이겼다. 이임생은 고대 총장과 함께 연단에 올라 모든 고대생의 환호를 받았다. “고대, 만세!” 그렇게 연호했던 것 같다. 고대의 정체성은 대한민국보다 우선한다.

그 정체성을 포함해 여러 집단 정체성의 융합이 바로 ‘나’다. 나는 집안의 장손이고, 대구에서 자랐으며, PD(방송국 직군 말고 운동권 말이다)들과 어울렸고, 한겨레신문사 기자고, 결국 한국인이다. 각 집단의 정체성을 섞으면 나를 얼추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맘에 쏙 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막내딸이었다면, 고향이 광주였다면, NL이었다면, 핀란드인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기수 고대 총장은 지난 9월6일 혼란스런 내 정체성의 일부를 설명해주었다. “국립대학(서울대)은 일본이 침략의 방편으로 만든 관립대학이었고, 연세대·이화여대는 기독교 전파의 수단으로 만든 대학이었다. 고려대는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건학이념으로 만들었다.” 총장이 직접 강의하는 이른바 ‘고려대學’ 첫 수업의 내용이었다.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이 제국대학·미션스쿨의 후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총장의 강의에 두 가지 잘못이 있다. 남의 흠을 들춰낸다 하여 내가 잘나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치장한다 하여 오늘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대 설립자 김성수는 가난한 선비 집안 출신이다. 19세기 말, 그의 증조부가 전북 고부의 대지주에게 장가가면서 가세가 폈다. 김씨 집안이 전북 고부 대지주와 연을 맺던 시기, 바로 그 고장에서 관리·지주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김성수 아버지대에 이르러 이 집안은 다시 한번 크게 일어섰다. 일본에 쌀을 수출하고, 경성방직을 세워 만주에 물건을 팔았다. 절대다수의 조선인이 경제적 궁핍의 밑바닥을 체험하던 1910~30년대의 일이다. 1943년 김성수는 이런 말도 했다. “대의에 죽을 때에 황민의 책무는 크다.” “나는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 그가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뜻으로 고대를 세운 것이 맞다 해도,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제대로 밝힐 필요가 있다.(<오마이뉴스> ‘김성수 집안 재산 축적기’ 참조)

교수는 영어 능력 필수, 와인 마시기 운동…

지난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김성수의 이름도 올라 있다. 책에 나온 친일 행적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중일전쟁의 의미를 알리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시국강좌 참여 △총독부 학무국 주최 전 조선 시국강연대회 참여 △경성군사후원연맹에 1천원 국방헌금 헌납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에 참여 △학도지원병 참가를 독려하는 다수의 글 발표…. “민족자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항력’의 논리로 그를 변호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때의 잘못을 근거로 평생을 매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과자라 하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저지른 잘못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 반성하거나 처벌받아야 ‘사회적 갱생’이 가능하다. 김성수는 그런 일 없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 부통령까지 지냈다.

경성방직·고려대·동아일보 등을 건립한 김성수가 일제 시기 ‘토착자본가’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하여 곧장 민족자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 땅에서 돈을 번 자 가운데는 민중의 고혈을 빨아 일제에 부역하며 일신의 출세를 도모한 ‘매판자본’도 있다. 식민지 조선의 최고 부자였던 그가 독립운동가에게 자금을 댔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가 일제에 침략전쟁의 자금을 쾌척한 것 역시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도 김성수는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될지언정, 순수무구한 민족자본가는 아니다. 그 대목을 빼놓고, 제국대학과 미션스쿨을 험담하면, 남들이 코웃음치기 마련이다.

한 세기 전의 ‘친일 여부’를 길게 논할 것 없이 세간의 비웃음을 사는 이유는 오늘에도 있다. 한국사·국문학을 포함해 모든 학과의 신규 교수 임용 때, ‘영어 강의 능력’을 요구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인문계열 교수들은 “한국 학생에게 국문학을 가르치는데 왜 영어로 수업해야 하느냐”고 개탄한다. 느닷없이 와인 마시기 운동을 펼치다, 막걸리 열풍이 불자 슬그머니 와인 행사를 접어버린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학생들은 “아무리 부잣집 자제들이 득시글대는 학교라도 어떻게 학생이 와인을 사마시겠느냐”고 개탄한다.

국내에서 최고로 비싼 공대·의대 등록금을 필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선도한 대학이 있다. 특목고 출신 학생을 집중적으로 입학시키고, 총장이 나서 “기부입학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고향 후배들은 “강남 부자들만 가는 대학이 됐으니, 지방 출신은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다”고 개탄한다. 이 대학은 지난 10여 년간 가장 ‘탈민족적’이고 ‘탈서민적’인 행보를 최선봉에서 걸어왔다. 권력자의 지배 논리를 관철시키는 게 제국대학이고, 자본주의적 서구 논리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미션스쿨이라면, 고려대는 이들의 ‘건학이념’을 오래전에 끌어안아버렸다.

고려대 교우회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교우회보를 배포했다. 교우회 간부들이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고도 지난 6·2 지방선거 때는 이 대학 출신 후보들의 지지를 요청하는 전자우편을 교우들에게 보냈다. 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권력에 줄을 댈 수 없다 하여 ‘고·소·영’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자기들끼리 권력을 독점하려는 ‘패거리 대학’이라는 비난이 먹혀들 자양분을 쉼 없이 제공하고 있다. 민족 고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民(의)敵’ 고대로 변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정권의 제적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그때

고연전이 치러지지 못한 적이 있다. 1983년 가을이었다. 당시 고연전은 수만 명의 학생이 ‘합법적으로’ 거리에 나설 기회였다. 경기가 끝나면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를 염려한 전두환 정권이 행사를 취소시켰다. 고대생들이 학생회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의 학내 진입과 연행이 불 보듯 뻔했다. 고대 총장이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대신 총장은 학내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학생 제군들, 몸을 다치지 마라.” 다음날 학생들은 무사히 학교 밖으로 나갔다. 총장이 나서 당국과 협상한 결과였다.

이듬해 가을 고연전 무렵, 전두환 정권은 총학생회 간부를 제적시키라고 전국 대학에 명령했다. 모든 대학이 그 명령을 따랐다. 오직 고대 총장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총장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정권마다 총리직 제안이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장준하와 함께 광복군을 이끌었던 그는 김준엽 총장이었다. 그 여파가 남아 있던 1990년대, 고연전이 끝나면 본관 앞 잔디밭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만취한 학생이 김성수 동상에 술병을 던지는 소리였다. 치기를 섞어 동상에 올라 볼일을 보는 이도 있었는데, 동상 주변의 깨진 술병 조각에 손을 다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시절의 고대를 일컬어 머리 나쁘고 가난한 시골 학생만 입학하는 친일 대학이라고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진 집 자식들의 질펀한 잔치가 돼버린 고연전을 보고, 어떤 이는 축제를 빌려 데모했던 20년 전이 그리울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야말로 고대 정체성의 정수라고 아껴주던 총장도 그리울 것이다. 과거가 아닌 오늘에서, 힘있는 자가 아닌 소외된 자의 편에서, 집단 정체성을 새롭게 가꾸지 못하는 대학을 졸업한 탓에, 나는 내 정체성이 많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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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심화를 걱정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현상은 가치관의 양극화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대립이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보수 인사들은 텔레비전 뉴스도 보기 싫어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이번에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비치기가 무섭게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언론매체조차도 양쪽으로 갈려 있다. 보수 성향 신문이 있고 진보 성향 신문이 있다. 보수성향 신문은 진보 진영을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하고, 진보 성향 신문은 보수층의 기득권 수호를 질타하기 바쁘다.

 정당도 보수 쪽과 진보 쪽으로 쫙 갈려 있다. 보수 진영은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의 편을 들고 있고, 진보 성향의 인사들은 야당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여당과 야당은 줄곧 팽팽하게 맞서서 싸움질만 해댔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민생문제 해결을 고민한다든가 시끄러운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시원하게 타협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여당과 야당도 그렇게 싸움질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자체가 정당들로 하여금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게 한 면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사업과 같은 사회적 현안을 놓고 국민들 사이에 찬성론과 반대론은 무성했지만 중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러니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당의 속성상 타협안을 만들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치관에 있어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것은 중간층이 약화됨을 뜻한다. 그러나 수적으로 보면 극보수나 극좌는 언제나 소수에 불과하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결집해서 자신들의 독자적 목소리를 내면 이들이 언제나 선거 결과를 결정짓게 되어 있다. 소위 중위투표자 이론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중간층의 성향은 극보수도 아니고 극좌도 아닌, 중도노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결과도 온건한 중도노선으로 낙착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 정치판에서 보듯이 보수와 진보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락가락 하는 선거결과는 생각하기 힘들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선거결과가 널뛰기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중간층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줏대 없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2년 반 전에는 이들이 보수진영에 붙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압승하였고 이번에는 진보진영에 동조했기 때문에 야당이 압승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중간층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그 대신 보수층과 진보층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양쪽 끝이 너무 기세등등하니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이 그간의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중간층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기 전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여당은 이런 사람들을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고 마냥 느긋해 있다가 한 방 맞은 꼴이다. 여론 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가 크게 달라진 이유도 중간층 사람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이미 내려졌다.

 그러면 우리 사회에서 가치관의 양극화가 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가? 진지한 연구가 필요한 어려운 질문이다. 그냥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이해관계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잃은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말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상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정보에 노출된다. 그 많은 정보를 모두 우리의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적절히 취사선택하게 되는데, 이 때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과 잘 부합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잘라버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것이 소위 인지부조화 이론의 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보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기득권 유지에 유리한 정보만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시장의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정보나 자료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편식을 하다보면 보수 성향의 인사들은 점점 더 보수화되고 보수 세력 확장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물론, 이런 논리는 진보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도 편식을 하다보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진보 이념을 열심히 전파하게 된다.

  얼마 전 인지부조화 이론에 대한 얘기가 어느 신문에 실렸다. 요지는, 천암함 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 때문이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마치 진보 진영 사람들에게만 인지부조화 이론이 적용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보수층에게도 에누리 없이 적용된다. 오히려 보수층을 덮친 '인지부조화의 덫'이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스럽다. 자칫 체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008년 미국 발 세계 경제위기도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세계 경제위기를 초래한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신자유주의 가치관에 경도된 금융 실무가와 정책 당국자들이 금융대란의 징후를 줄기차게 외면한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는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 모두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가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식인부터 앞장서서 열린 마음과 평형감각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양 진영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특히 중간층에 있는 지식인들이 기죽지 말고 떳떳이 나서서 양쪽의 인사들의 각성을 촉구해야 한다. 한 쪽 날개로 날다가는 기우뚱거리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가 양쪽 날개로 착실히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좌우를 아우르는 건전한 중간층이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우선 가치관의 양극화부터 완화된다면, 경제적인 양극화(빈부격차)도 점차 누그러질 것이다.

 

벌써 만 5년이 지난 얘기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느덧 그때 아이들은 졸업하여 사회초년병이 되었다. 그 때 그 사건.........



학부 때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라고 부를께.

니가 이 글을 읽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니가 생각과 생활을 함께 나눠온 학생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은 얘기여서 여기에 적는다.

니하고 나하고 LTC 때 같은 조였던 것 기억나나?

그때 니는 참 고민이 많은 후배였지.

진지하게 고민하고,대충 답을 구하는게 아니라 철저하게 납득이 가는 답을 찾으려고 했지.

그게 참 좋아보였다. 아마 간사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 그런 자세로 살아왔겠지.

그래서 내가 널 자주 보지도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널 신뢰했다.

내가 아래에 쓴 많은 글에서도 이미 말했지만,이번 일을 처음 들었을 때도 한기연이 걱정되는 한편으로 '현석이가 실수를 했구나. 현석이가 너무 큰 상처를 받으면 안될텐데'하는 걱정도 컸다.

그런데 문제 해결 과정에서 보여준 니 태도는 정말 실망스러웠고 안타깝다.

그동안 내가 니를 잘못 봐온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이 문제 과정에서 직접 만나지 않았지만,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하려고 너에 대한 얘기는 최소한의 사실에 입각한 얘기만 인정하려고 해도 많이 실망스럽다.

처음엔 너도 좀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면서?

그런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 '나는 자유연애가 옳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 가치관이다' 이런 거라는 거지?

니가 치열한 고민을 한 결론이 고작 그정도라는게 정말 실망스럽다.

그래서 그동안 한기연에서 학생으로 간사로 활동하면서 니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신앙과 사회의 문제도 고작 그정도 수준에서 밖에 소화하지 못했을거란 생각에 더 실망스러운거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너를 만나서 설득하려고 했지만 넌 설득되지 않았지. 오히려 당당하게 니 가치관이라는 걸 주장했지.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던 그 설득하려는 노력을,내가 여기서 한번만 더 해볼께.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니가 '설교'한 얘기 중에 이런게 있었다.

정주영이나 이건희 입장에서 보면,노동자들을 대하는 그 사람들의 태도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도,내가 정부라도 어쩌면 그럴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두려운거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칫 잘못하면 나도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합리화하고,지금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라고 하는 그런 자세로 세상을 살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늘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갈고 닦아야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니가 지금 그런 '자칫 잘못된'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본능,특히 남자의 본능이야 다 비슷하지. 니 같은 행동을 하려는 마음,가질수도 있지. 니같은 처지에서는 행동으로 옮길수도 있지. 더구나 그 행동으로 제3자가 무슨 물리적인 피해를 입은게 있나?

그러니 어쩌면 잘못이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동안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온 내 생각이나 사람들의 일반적인 가치관이 잘못된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가치관,잘못된 대다수의 생각과 싸워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배경에대한 전달도,내 생각을 존중해주는 토론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 간사를 징계하는거지? 저 사람들도 가치관의 다양성을 인정해온 사람들인데,그렇다면 다른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좋다. 그렇다면 행정적인 결정은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최소한 ***의 가치관에 입각해서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계속 ***의 가치관을 나누는 것은 놔두는게 맞지 않은가.

혹시 이런게 니 생각이니?


있잖아,내가 언젠가 니한테도 했던 얘기 같은데,제일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꼴통 보수인 사람도 아니고 극좌 모험주의로 사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제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확신이 너무나 뚜렷하고 스스로 '내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고 반성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히틀러도 나름대로 가치관이 있었거든. 지금도 독일에 가면 그 가치관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하거든.

그런 히틀러를 죽여야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거든. 그 가치관을 추종하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런데 히틀러는 자기를 반성할줄 몰랐다. 히틀러를 죽여야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매일 자기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정직하게 반성했다.

나는 후자의 사람이 좋고,그렇게 살고 싶거든.

너는 어떠냐. 너는(설마 스스로 히틀러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두 사람 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자기 가치관과 생각이 있으니 양쪽 다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그래서 너의 가치관도 존중해달라고 말하고 싶니? 근데 내가 보기엔 그게 히틀러처럼 위험한 생각이거든. 니가 '설교'했듯이 잘못된 생각을 스스로 합리화하는 거거든.

내가 학생대표들에게 쓴 글에서 누누히 말했듯이,그런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는 것은 그건 가치관을 존중하는게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거든. 그래서 동문들이 이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는 거다.

한기연은 니 혼자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많은 구성원들의 공동체인데,이렇게 너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면 적어도 니 자신을 반성해봐야하지 않겠니? 그런 반성의 기간 동안에는 자숙하고 모든 사태에 개입하지 않고 물러나 있어야하지 않겠니?


어쩌면 이럴지도 모르겠는데,혹시라도,니가 한기연을 떠난,그것도 명예롭지 못하게 떠난 뒤의 삶에 대해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 논리를 만들어서 주장하고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한기연에 머물려고 하는 것이라면,그런 두려움은 떨쳐버려라.

니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니가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은 널 용서해주시고 널 써 주실 거다. 다윗이 그랬거든.


***아.

난 말이지,차라리 니가 니말대로 니 나름대로의 '남녀간 애정 관계'에 대한 소신 때문에 이러는게 아니라 사실은 속으로 니가 헌신해온 한기연을 떠나는 것에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겉으로 당당한 척 주장하는 것이면 좋겠다. 그러면 적어도 니가 반성하고 뉘우칠 가능성이 있으니까.

제발,제발. 무엇이 옳은지 제대로 판단해라. 니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이 선배가 이렇게 너에게 부탁하니 제발 한번이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주려무나.

무엇이 옳으니. 무엇이 그르니.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봐.

그리고 니가 어떤 책임을 지는게 맞는지,생각해봐.



난 요즘 솔직히 세상 살 맛이 안난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 사이에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학생 시절의 소박한 믿음이 깨진지는 오래됐지만,내게 가장 소중한 공동체였던 한기연에서도 그걸 다시 경험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지,무엇이 그른지,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지. 이런 생각이 다를 때 어떤 해답을 `공통답안'으로 만들수 있을까.

유한한 경험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행동할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가 이런 걸까.

이런 인간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하니,니나 나나 참 힘들다,그지?

내가 차라리 한기연이란 공동체를 포기해버리면 너랑 나랑 서로 힘들 일은 없을까?

어차피 천년 만년 살아갈 세상도 아닌데,나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할 일이 많은데 그냥 그러는게 나을까.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실 때까지는,이렇게 너를 설득하려고도 하고 학생들도 만나보고,동문들과 논의도하고,내가 정말 하나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건가 되돌아보고,이렇게 살수 밖에 없구나.

우리가 이런 한계를 가진 인간이니,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하는 것이겠지.

하나님이 주신 생,우리의 짧은 생각과 잘못된 판단으로 허비하지 않도록 기도해야하는 것이겠지.

지금 너랑 나랑 서로 세상 살맛나지 않게 만드는 관계이지만,이렇게는 기도해주지 않겠니? 우리가 서로 하나님을 범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혹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빨리 돌이켜 한번뿐인 인생마저 허비하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해달라고.

잘 자라.

 

SBS스페셜팀이 유시민 전 장관을 만났다. 나레이터는 유시민의 인터뷰 첫 마디를 들려주면서 '냉정'이란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유시민이 자신에 대한 평가에서 '냉정'했다는 말이다. 유시민은 참여정부에서 최연소 장관을 지낸 데엔 운과 수완이 따른 것도 있을 것이라며 세상의 시기어린 평가를 일부분 인정한다. 




그리고 유시민은 "대통령한테 아부해서 장관했다 이렇게 보는 분들도 있"는데 그걸 객관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자신에 대해 냉정했던 유시민은 엘리트에 대한 평가에선 관대함을 보여준다. 엘리트가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엘리트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그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시민은 더 나아가 그들이 보수적인 것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보수가 압도적으로 강한 사회에서 출세 루트는 보수세력에 가는 것 뿐인데 그걸 탓해서 어쩌겠냐는 거다. 



 그들은 앞서지도 뒤떨어지지도 않은 한국 사회의 평균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유시민의 말은 결국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이 모든 걸 다 바꾸겠다고 분통을 터트리는 걸로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유시민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패배주의자가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서 유시민은 보수 엘리트의 불편한 속살을 건드린다.   



유시민은 우리 사회에 주류들만의 세상이 있다고 고발한다. 없는 직책 만들어 자리에 앉혀놓고 용돈 주는 식으로 주류들끼리는 관계를 맺어온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걸 당연시 하며 살아온 그들이 이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엔 이 현실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 한 세대 후에는 그런 모습이 아니기 위해" 우리가 노력을 해야한다고 유시민은 말한다. 이 말은 우리 사회의 점진적 개혁에 보수 엘리트들도 동의해야 한다는 부탁에 가까워 보인다.  


조였다가 풀어지더니 이내 다시 조여들어온다. 존경과 편안함을 동시에 누릴 수는 없다는 유시민의 일갈이 보수 엘리트의 가슴을 깊숙이 박힌다.     


출 세 만 세 - 4부 리더에게 길을 묻다

마지막으로 SBS.스페셜은 유시민에게 한국 사회가 필요하는 리더의 모습에 대해 묻는다. 유시민은 그에 대해 수오지심이라고 답한다. 


누가해도 오류는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불가피한 오류를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리더는 오류를 인정하고 교정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사람들이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의 질문을 저는 첫 손가락에 꼽겠습니다. 

긴장을 해서 조금 더듬긴 했지만 질문의 내용은 그랬습니다.

욕심내지 말고 비우고 나누면서 다함께 잘 살자'라는 말에 너무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입시를 앞둔 수험생으로서 현실을 무시하고 산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

이 질문에는 목사님이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요?

그럴 용기가 없으면 현실에 따라 살면 된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누구도 강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다.

다만 용기 있는 자만이 무한경쟁이라는 전쟁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완전 멋있는 답변이었습니다.


                             
어떤이는 운동권이라 그러고 어떤이는 객기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 글을 올린 학생의 태도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런 학생의 주장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진정한 만남이란

당위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는 만남이다.



2009년 3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2009년 3월 개강총회


2009년 5월 스승의 날




주석아.
잘 지내니.
학교에있으면 말이야,
세상 다 달관한 척,
냉소적인 척 하기 쉬울 것 같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주석이는 누구보다 여린 감성,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지.
주변 사람들에게 그 마음 많이 나누며 살아라..

김지방 ( 2004.12.05 17:53 )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보수 대 진보의 대결 양상이 뚜렷해지는 것 같다. 진보세력의 힘이 이제 보수세력과 맞장을 뜰 정도로 우리 사회가 진보한 것 같기도 하지만,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 꼴통'들의 변함없는 행태나 자칭 진보를 표방하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 아직도 까마득한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보수(保守)가 보호하고(保) 지키고자(守) 애쓰는 것이 전통의 가치나 사회 안정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어제 오늘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백 보 물러서서 이들 기득권 지킴이들을 보수라고 부르기로 하자. "보수란 사상이 아니라 그저 '욕망'일 뿐이다. 남보다 더 가진 걸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사상인가."(김규항) "한국의 보수는 이념이 아니라 반공이라는 식칼을 들고서 제 기득권을 지키는 일종의 처세술이었다."(진중권) 이 시대 독설가들에게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수모를 당하는 진정한 보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오늘날 자칭 보수들은 거의가 수구(守舊)라고 봐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와 냉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진정한 보수가 정치세력화 하기 어려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진정한 진보는 있는가?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와 평등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나이나 성, 피부색, 민족, 종교를 불문하고 인간이면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 그것을 진보라 부른다면 이 땅에 참된 진보주의자는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보수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진보세력은 그 대항 이데올로기로 민족을 내세우면서 시대적 한계를 드러냈다. 민족주의가 서구사회에서는 파시즘과 함께 몰락하면서 보수의 이념조차 되지 못하는 마당에, 자칭 진보를 외치는 우리 사회의 좌파들은 민족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냉전 상황 속의 현실이었다.

보수도 진보도 그 색깔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정치판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색깔 논쟁을 벌이면서 그나마 보수와 진보의 양당 구도로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다시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면서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사람이 있듯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분법은 실제 삶 속에서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스스로 이런 이분법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독일에서 귀국한 송두율 교수를 둘러싸고 새삼스럽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색깔 논쟁이 재연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연이은 대선 패배로 코너에 몰린 것 같던 보수세력이 작심한 듯 반격에 반격을 거듭하더니 이제 진보세력이 또 다시 코너에 몰린 느낌이 든다. 거의 평생을 타향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가 친구들이 있는 고향에서 살고 싶어 돌아온 한 인간을 이념의 그물로 사로잡아서는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려드는 이 땅의 보수세력들을 보면서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죽기 전에 좀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조국땅을 밟은 한 인간의 바람이 이루어지기에는 이 땅이 아직도 너무 비인간적인 곳이다.

이런 시대에 교육다운 교육의 길을 고민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앞당기는 가장 확실한 길은 나부터 먼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아닐까.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과연 '사람답게' '산다'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다움과 답지 못함의 경계는 어디며 삶과 죽음의 경계는 또 어디일까?
망명객만 경계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계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과 북의 경계만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 비인간성과 인간성,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가로놓인 외줄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 아닐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것, 달리 말해 죽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깨어 있으면서 사람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30여년전 저 분들을 여의도로 모이게 한 힘이 무엇인가?

저런 열정이 우리안에 여전히 유효할까? 
고통을 정말 끊고 싶습니까?
그럴 때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억과 기대로부터 자유 해야 합니다.

기억으로 듣고 보지 않아야 합니다.
기대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지금 여기로 나와야 합니다.

기억이라는 과거로부터의 탈출
기대라는 미래로부터의 자유
이는 오직 지금 여기를 사는 길 뿐입니다.
현존으로 사는 것입니다.

- 아침햇살

힘내라 맑은 물 (글/곡 류형선)

손이 시리면 따스히 만져주마

추운 날이면 두 볼을 감싸주마

너무 힘들거든 내게 기대오렴

눈물나거든 내 품에 안기렴

냇물아 흘러 흘러 강으로 가거라

맑은 물살 뒤척이며 강으로 가거라


힘을 내거라 강으로 가야지

힘을 내거라 바다로 가야지

흐린 물줄기 이따금 만나거든

피하지 말고 뒤엉켜 가거라

강물아 흘러 흘러 바다로 가거라

맑은 물살 뒤척이며 바다로 가거라



 제가 가지고 있던 큰 물음 중 하나는 무엇부터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으며 제 안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제 안에도 맑은 물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회복해야 할 첫 단추는 제 안에 있는 맑은 물, 곧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깊게 하나님을, 내 이웃을, 나를 사랑하는 마음

제 안에 있는 상한 감정, 욕심, 불안 이런 흐린 물줄기를 넘어서

제 안에 있는 맑은 물줄기에 집중하는 것임을 알아차려 갑니다.


하나님께서  손이 시리면 따스히 만져주고, 추운 날이면 두 볼을 감싸주고, 너무 힘들거든 당신에게 기대며,

눈물나거든 당신 품에 안기라고 그렇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십니다.

그래요.

삶이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땀과 애정으로 나를 살리는 살림임을 알아차려갑니다.

***의 애정이 저를 살립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 앞장서서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의 질책이 저를 살립니다.

염려와 기도를 끊지 않는 ***가 저를 살립니다.

저를 보며 힘을 얻는다는 **가 저를 살립니다.

끊임없이 지지하는 ***이 저를 살립니다.

이런 공동체의 맑은 물줄기들이 마중물이 되어 제가 누군가의 맑은 물줄기가 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쉽진 않지만 조금씩 다시 일어서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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