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광복의 빛을 가슴 속에 간직할 줄 알고, 타율의 무거운 도전에서도 자율을 위한 온갖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고대정인은 민족국가의 장래와 새역사 창조를 위해 길이 보존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학은 현재의 문제해결을 위해 그 힘을 모두 소진할 수 없으며 현실의 정치를 위해 교육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되겠습니다. 대학은 민족장래의 믿음직한 발전을 위한 도약대이지 현실정치의 거점이 되어서는 안되며 어느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학원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엄연한 교육의 주체입니다.

여러분은 가치혼돈의 산업사회로 나가서 이와 같은 건전한 가치관을 전파하는 정신적 지도자가 되고 의리와 신의가 쇠미해가는 무정하고 삭막해가는 경쟁사회속에 인간이 인간을 믿고 존중하는 유정한 인격사회의 실현을 위해 우리 모든 고대인의 뜻과 힘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우리 민족의 보람찬 내일의 비전을 마련하는 민족 부흥의 힘이며 우리 고대인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있는 지혜와 힘을 바칠 줄 아는 애국애족의 민족적 양심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끼고 사랑하는 모교 고려대학교의 영원무궁한 발전을 축복하면서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영원히 빛나라”의 교가의 한 구절을 우리 모두의 가슴 깊이 길이 간직합시다.

1985년 고려대학교 졸업식사 중.....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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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꼭 빠지면 안되는 것이 바로 농구이다.
94-95 농구대잔치 마지막 1초를 남기고 던진 서장훈의 공이 링으로 빨려들어갈 때 도는줄 알았다.
3월 MBC 대학농구가 시작되었을때 수업도 째고 잠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겼다.
95 정기전은 완전 압승....
김병철, 전희철, 신기성, 현주엽, 양희승 5인방, 박재현, 박훈근, 이지승......
그리고 농구계의 전설 박한감독...

그러나 90년대 최고의 게임은 97년 농구대잔치일 것이다. 김병철, 전희철, 양희승이 나가고 현주엽이
부상에 시달리던 그시절 전희철의 백넘버 13번을 달고 이규섭과 이정래가 들어왔지만 고대는 거의
연전연패였다. 반면 연대는 김택훈, 조상현, 조동현을 앞세워 고대의 49연승 대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이란
전망과 함께 파죽지세의 연승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코뼈가 다쳐 보호대를 착용하고 나타난 현주엽과
고대는 연대를 박살내 버리고 연대의 연승행진을 끊어버렸다.

응원가 소리가 우렁차 연대가 엠프를 고대의 두 배로 늘릴 수 밖에 없었던, 농구 고연전이 열리면 잠실벌이
메어터지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필승! 전승! 압승!
(kubs 방송에서 따왔다.)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받고 학생들에게 나의 소회가 담긴 메일을 보냈다.

강의를 시작한지 4년이 지나며 과연 나는 좋은 선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참 좋은 선생님의 상으로 문득 곽연교수님이 생각났다.


"물론 내 눈에 거슬리는 학생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철듦에 늦고 빠름의 차이지.
나는 학생들을 99.9% 신뢰한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고대생이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이 "현대음악의 이해"이다.

대강당 6-102강의실에서 분필가루에 찌든 당시 학교 내 유일한 피아노를 연신 두들기시며

교가도 부르고, 응원가도 부르고, 종종 가요도 불렀다.

이분이 남긴 다양한 일화들이 있다. 가장 유명한 일화로,

어느 학생이 컨닝을 하다 들키자, 선생님이 그 학생의 답안지를 쫙쫙 찢으며 말했다.

"넌 B야!"

졸업을 앞둔 4학년들에게는 당신의 자택에 과일바구니를 가지고 찾아오지 말라고

수업시간에 경고를 하시지만 과일바구니를 가지고 찾아간 선배들은 어김없이

A+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곽연 선생님이 학생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것은 단지

학점을 잘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고대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어느 순간 학교에서 사라지셨다.

상대평가가 시작되고 더 이상 현대음악의 이행와 같은 학점폭격기는 학교에서 발붙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년 12월 선생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쉬운 것은 평생 강사의 신분이셨지만 누구보다도 학교를 사랑하고 사람냄새나는 고대정신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그분 가시는 길에 학교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막걸리 찬가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에라18 니* 조*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 같이 마시자

고려대학교 막걸리 대학교

아 고려대학교 막걸리 대학교

막걸리를 마셔도 사내답게 마셔라

만주땅은 우리땅 태평양도 양보못한다.



 

고대문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사발식이다. 20년간의 나를 막걸리로 소독하여 다 내밷고 당당한

고대생으로 거듭난다는 고귀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사발식을 좋아하는 것은 사발식을 통하여

나도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가끔은 비합리적이더라도 악으로 깡으로 부딪쳐보자는 일종의 객끼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성중심적이다. 폭력적이다라는

이유로 그 자취를 조금씩 감춰가기에 못내 아쉬운 것이 이 사발식이다.
 


1990년대 초반 우리를 X세대라고 했다.
일과 이분의 일, 칵테일 사랑, 사랑과 우정사이가 크게 히트했었다.
서태지가 입고 나온 292523storm옷을 입으면 한 패션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좀 잘나가는 얘들은 스페이스니 알라딘이니 하는 신촌의 락카페를 들락거렸고
칵테일 소주가 유행했었다.

항상 술한잔 하면 노래방은 필수 그리고 당구와 스트리트 파이터.....
엇그제 같은데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별로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생활 패턴을 보면 대략 난감이다.
느지막히 일어나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오후가 되면 아이들과 노닥거리다가 잽싸게 집에 오면
밤늦게 까지 과외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동아리에서 살림하고
한마당하고 토요일을 집에서 방글라데시 하고.....
주일날은 늦잠자고 교회를 안가든지 갔다오면 과외가고.....

대학생활의 반이 과외다. 된장.....

그래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이 그렇게 안타까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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