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고대 나온 남자다. 아내는 고대 나온 것으로 부족해, 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장인과 장모는 고대에서 함께 공부하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지난 18년 동안 나는 고대 근처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가끔 조깅을 해도 고대 운동장에서 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딸은 세상에 대학교라곤 고대밖에 없는 줄 안다.

제국대, 미션스쿨 그러나 고대는 민족대?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10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붉은 티셔츠의 무리를 보았다. 붉은 악마는 아니고 고대생들이다. 이틀간 열리는 ‘고연전’(어떤 이는 ‘연고전’이라 한다)의 첫날이었다. 저 신촌에서는 푸른 티셔츠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을 테다. 그들을 따라 잠실 야구장, 목동 아이스링크에 가버릴까? 문득 나는 옛 정체성이 그리워졌다.

고연전은 고대생의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는 최고의 ‘의례’다. 1993년 가을 고연전을 앞두고, 고대 축구팀 스위퍼 이임생은 국가대표팀 합숙소를 무단 이탈했다. 미국 월드컵 예선전이 코앞이었다. 국가대표 감독은 나가지 말라 했고, 고대 감독은 나오라 했다. 이임생은 태극마크와 월드컵을 포기하고, 붉은 줄무늬 유니폼과 고연전을 택했다. 곧바로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제명됐다. 1-0으로 고대가 이겼다. 이임생은 고대 총장과 함께 연단에 올라 모든 고대생의 환호를 받았다. “고대, 만세!” 그렇게 연호했던 것 같다. 고대의 정체성은 대한민국보다 우선한다.

그 정체성을 포함해 여러 집단 정체성의 융합이 바로 ‘나’다. 나는 집안의 장손이고, 대구에서 자랐으며, PD(방송국 직군 말고 운동권 말이다)들과 어울렸고, 한겨레신문사 기자고, 결국 한국인이다. 각 집단의 정체성을 섞으면 나를 얼추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맘에 쏙 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막내딸이었다면, 고향이 광주였다면, NL이었다면, 핀란드인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기수 고대 총장은 지난 9월6일 혼란스런 내 정체성의 일부를 설명해주었다. “국립대학(서울대)은 일본이 침략의 방편으로 만든 관립대학이었고, 연세대·이화여대는 기독교 전파의 수단으로 만든 대학이었다. 고려대는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건학이념으로 만들었다.” 총장이 직접 강의하는 이른바 ‘고려대學’ 첫 수업의 내용이었다.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이 제국대학·미션스쿨의 후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총장의 강의에 두 가지 잘못이 있다. 남의 흠을 들춰낸다 하여 내가 잘나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치장한다 하여 오늘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대 설립자 김성수는 가난한 선비 집안 출신이다. 19세기 말, 그의 증조부가 전북 고부의 대지주에게 장가가면서 가세가 폈다. 김씨 집안이 전북 고부 대지주와 연을 맺던 시기, 바로 그 고장에서 관리·지주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김성수 아버지대에 이르러 이 집안은 다시 한번 크게 일어섰다. 일본에 쌀을 수출하고, 경성방직을 세워 만주에 물건을 팔았다. 절대다수의 조선인이 경제적 궁핍의 밑바닥을 체험하던 1910~30년대의 일이다. 1943년 김성수는 이런 말도 했다. “대의에 죽을 때에 황민의 책무는 크다.” “나는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 그가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뜻으로 고대를 세운 것이 맞다 해도,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제대로 밝힐 필요가 있다.(<오마이뉴스> ‘김성수 집안 재산 축적기’ 참조)

교수는 영어 능력 필수, 와인 마시기 운동…

지난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김성수의 이름도 올라 있다. 책에 나온 친일 행적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중일전쟁의 의미를 알리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시국강좌 참여 △총독부 학무국 주최 전 조선 시국강연대회 참여 △경성군사후원연맹에 1천원 국방헌금 헌납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에 참여 △학도지원병 참가를 독려하는 다수의 글 발표…. “민족자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항력’의 논리로 그를 변호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때의 잘못을 근거로 평생을 매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과자라 하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저지른 잘못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 반성하거나 처벌받아야 ‘사회적 갱생’이 가능하다. 김성수는 그런 일 없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 부통령까지 지냈다.

경성방직·고려대·동아일보 등을 건립한 김성수가 일제 시기 ‘토착자본가’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하여 곧장 민족자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 땅에서 돈을 번 자 가운데는 민중의 고혈을 빨아 일제에 부역하며 일신의 출세를 도모한 ‘매판자본’도 있다. 식민지 조선의 최고 부자였던 그가 독립운동가에게 자금을 댔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가 일제에 침략전쟁의 자금을 쾌척한 것 역시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도 김성수는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될지언정, 순수무구한 민족자본가는 아니다. 그 대목을 빼놓고, 제국대학과 미션스쿨을 험담하면, 남들이 코웃음치기 마련이다.

한 세기 전의 ‘친일 여부’를 길게 논할 것 없이 세간의 비웃음을 사는 이유는 오늘에도 있다. 한국사·국문학을 포함해 모든 학과의 신규 교수 임용 때, ‘영어 강의 능력’을 요구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인문계열 교수들은 “한국 학생에게 국문학을 가르치는데 왜 영어로 수업해야 하느냐”고 개탄한다. 느닷없이 와인 마시기 운동을 펼치다, 막걸리 열풍이 불자 슬그머니 와인 행사를 접어버린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학생들은 “아무리 부잣집 자제들이 득시글대는 학교라도 어떻게 학생이 와인을 사마시겠느냐”고 개탄한다.

국내에서 최고로 비싼 공대·의대 등록금을 필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선도한 대학이 있다. 특목고 출신 학생을 집중적으로 입학시키고, 총장이 나서 “기부입학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고향 후배들은 “강남 부자들만 가는 대학이 됐으니, 지방 출신은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다”고 개탄한다. 이 대학은 지난 10여 년간 가장 ‘탈민족적’이고 ‘탈서민적’인 행보를 최선봉에서 걸어왔다. 권력자의 지배 논리를 관철시키는 게 제국대학이고, 자본주의적 서구 논리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미션스쿨이라면, 고려대는 이들의 ‘건학이념’을 오래전에 끌어안아버렸다.

고려대 교우회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교우회보를 배포했다. 교우회 간부들이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고도 지난 6·2 지방선거 때는 이 대학 출신 후보들의 지지를 요청하는 전자우편을 교우들에게 보냈다. 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권력에 줄을 댈 수 없다 하여 ‘고·소·영’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자기들끼리 권력을 독점하려는 ‘패거리 대학’이라는 비난이 먹혀들 자양분을 쉼 없이 제공하고 있다. 민족 고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民(의)敵’ 고대로 변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정권의 제적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그때

고연전이 치러지지 못한 적이 있다. 1983년 가을이었다. 당시 고연전은 수만 명의 학생이 ‘합법적으로’ 거리에 나설 기회였다. 경기가 끝나면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를 염려한 전두환 정권이 행사를 취소시켰다. 고대생들이 학생회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의 학내 진입과 연행이 불 보듯 뻔했다. 고대 총장이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대신 총장은 학내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학생 제군들, 몸을 다치지 마라.” 다음날 학생들은 무사히 학교 밖으로 나갔다. 총장이 나서 당국과 협상한 결과였다.

이듬해 가을 고연전 무렵, 전두환 정권은 총학생회 간부를 제적시키라고 전국 대학에 명령했다. 모든 대학이 그 명령을 따랐다. 오직 고대 총장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총장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정권마다 총리직 제안이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장준하와 함께 광복군을 이끌었던 그는 김준엽 총장이었다. 그 여파가 남아 있던 1990년대, 고연전이 끝나면 본관 앞 잔디밭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만취한 학생이 김성수 동상에 술병을 던지는 소리였다. 치기를 섞어 동상에 올라 볼일을 보는 이도 있었는데, 동상 주변의 깨진 술병 조각에 손을 다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시절의 고대를 일컬어 머리 나쁘고 가난한 시골 학생만 입학하는 친일 대학이라고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진 집 자식들의 질펀한 잔치가 돼버린 고연전을 보고, 어떤 이는 축제를 빌려 데모했던 20년 전이 그리울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야말로 고대 정체성의 정수라고 아껴주던 총장도 그리울 것이다. 과거가 아닌 오늘에서, 힘있는 자가 아닌 소외된 자의 편에서, 집단 정체성을 새롭게 가꾸지 못하는 대학을 졸업한 탓에, 나는 내 정체성이 많이 부끄럽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조차 극좌의 주장이다. 북유럽 사민주의자를 한국에 옮겨 놓으면 아마도 한나라당과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그리고 조·중·동 등은 세상에 이런 새빨간 악질 빨갱이를 그냥 놔두냐고 온통 난리법석을 칠 것이 분명하다. 결국에는 하다못해 인혁당이라도 다시 불러내와 감옥에 처넣거나 처형하는 그림이 눈에 훤하다.
 
  그만큼 한국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반공 정신병동 사회란 올가미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좌도 우도 한국전쟁의 피비린내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런 극단의 대립은 학문과 사상이 그야말로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시초부터 절멸시켜 버리는 고엽제이다. 고엽제가 뿌려진 불모의 땅에서는 기형아, 조숙아, 미숙아들이 속출한다.
 
  시대착오의 뉴라이트가 그런 한국형 기형의 한 예이다. 식민지 지배 긍정론은 사실 마르크스의 전매특허였다. 전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식민지 근대화론만을 차용해 친일파 친미파를 넘어 숭일 숭미파로 변신하고, 사회주의를 증오하는 이런 기이한 이론을 도대체 이론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에 짝을 맞추어 뉴레프트를 해야 한다며 북유럽 사민주의의 수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이없는 상상임신이 아닐 수 없다.
  

  김수행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에 수록된 신정완의 스웨덴 사민주의 분석은 왜 북유럽 사민주의가 한국에서는 태어나기 어려운지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민주의란, 그리고 영국 등의 복지국가 체제란 제3세계 민중들의 피와 땀, 제3세계의 천연자원을 무자비하게 수탈하지 않으면 안되는 착취의 이데올로기와 체제이다.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스웨덴의 복지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라는, 자원을 제공해 주고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비서구 식민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스웨덴 사민당은 경제성장만이 복지국가 체제를 가능케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웨덴 사민당은 볼보라는 자동차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대재벌을 키웠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성장 방식이었다. 사회주의를 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를 육성(?!!)하는 전략이다.
 
  따라서 경제가 침체되고 성장이 중단되면 사민주의와 복지국가는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반 스웨덴에 금융위기가 닥치고 부르조아 정부가 집권하게 되면서 기존의 복지정책이 대폭 수정된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유럽의 사민주의가 근원에서부터 생태 환경 문제를 외면하거나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까닭은 바로 이같은 강한 성장주의 때문이다. 경제성장은 생태적 전환과는 어울리기가 어렵다. 유럽 녹색당이 독자 정당 노선을 천명하게 되는 연유도 근원을 따지면 이런 사민주의 정당들의 뿌리깊은 성장물신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북유럽 사민주의를 비롯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녹색당이 제기한 생태주의 전략을 대폭 수용하긴 하지만, 이른바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전략으로 탈바꿈시켜 마치 생태주의를 수용한 듯이 그럴싸하게 포장을 바꾸었던 것이다.
 
  자, 그런데 지금 자본주의와 유럽 사민주의를 가능케 했던, 에너지와 각종의 천연자원들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을 비롯한 식량정점론과 각종의 정점론(Peak Everything)이 그것이다. 기후변화 한 가지만 놓고 보아도 이제 더 이상의 경제성장은 범죄가 되고 마는 그런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제 정신을 가지고 사회와 생태 문제를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체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면서 석유와 천연자원은 무한히 착취해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민주의 복지체제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민주의 복지 체제란 심하게 말해 국가가 착취의 떡고물을 일부 노동자에게 나누어주는 체제이다. 진정한 복지는 그런 의존형 인간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식 복지체제일 수 없다. 복지는 국가가 아니라 자립과 자치의 지역공동체에 있다.
 
  사민주의 복지국가론에서는 심지어 아이들을 돌보는 육아까지도 '돌봄 노동'이라 해서 돈으로 계산하고 국가가 이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가가 출산과 교육을 담당하는 거대 빅브라더 체제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한국 사회를 어떻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우애와 협동의 사회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상상력과 논쟁은 서구에서 직수입한 이론들의 소개와 적용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분석, 비판한 서구의 이론은 타산지석으로 우리가 배워야 한다. 그러나 지식과 배움은 거름을 만들어 줄 뿐, 정작 씨앗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와 문화와 토양에 맞는 씨를 뿌려야 한다.
 
  김수행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은 그런 토종의 씨앗을 뿌리려는 조그마한 시도로 보인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갑갑했다. 대부분의 필자들이 여전히 자본주의-사회주의 패러다임의 틀 안에 답답하게 갇혀 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민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우물안에 함몰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도 직전의 다국적기업 해외지사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파산당할 리먼을 사려 했던 산업은행과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다른 점이 무엇이 있을까. 
   
 
 
  박승옥/시민발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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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se 1)
담배좀 잘 태우세요
거 진교수님은(어흐흐흐흐) 담배를 좀 점잖케 태우셨으면 좋게쓰~
아 그래 길거리에서 담배피우지마고(어허흐허흐어허흐허흐흐흐) 피우지말고
담배좀 잘 태우세요 다다담배좀 잘 태우세요오?
아 그래 길거리에서 담배피우지 말고

(Rap)
거 담빼쫌꺼쬬 담빼쫌꺼쬬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요 (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배피우지마고)

거 담빼쫌꺼쬬 담빼쫌꺼쬬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요 (어허흐어허흐어허허허허흐흐) 피우지마고

(Verse 2)
거 진교수님은(에헤헤헤) 다다 담배를 좀
점잖케 태우셨으면(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빼피우지말고)

진교수님은(에헤헤헤) 다다 담배를 좀(어헤헤)
점잖케 태우셨으면(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빼피우지말고)

(Rap)
거 담빼쫌꺼쬬 담빼쫌꺼쬬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여? (어그래 길꺼리에서 담배피우지마고)

거 담빼쫌꺼죠 담빼쫌꺼죠요
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않게 매너가 꽝이네
담배좀잘태우세여?

(Verse 3)
진교수님은(담빼쫌꺼쬬 담배쫌꺼쬬) 다다담배를좀(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 않게 매너가 꽝이네)
점잖케 태우셨으면(에헤흐어헤흐헤흐헤헤)
진교수님은(담빼쫌꺼쬬 담배쫌꺼쬬) 다다담배를좀(매어너가 진짜 진교수 이름못지 않게 매너가 꽝이네)
점잖케 태우셨으면(에헤흐헤흐어헤흐헤흐헤헤)

피우지 말고~

고~ 고~ (어헤흐헤흐헤흐 어헤흐헤흐헤흐헤흐)
고~ 고고고~

담배좀 잘태우세여?


본 노래의 원본

  DJ가 노벨평화상 받는 날 공교롭게 YS는 고대앞에서 농성중이었다.




YS 고대앞 14시간 '농성' 1-25신 
[오마이뉴스 2000-10-13 08:29]

제 25신 : 16일 낮 12시 : 상도동 YS자택 기자간담회

지난 10월 13일 고려대 정문 앞에서 14시간 동안 '차 안 농성'을 벌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16일 낮 12시부터 1시간가량 상도동 자택에서 약 40여명의 기자들과 함께 칼국수가 아닌 떡국으로 점심을 겸한 간담회를 갖고 "이번주 금요일에 다시 한번 고대에 가서 강의를 성사시키기로 고대 총장과 함성득 교수하고 다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영삼 씨는 또 "지난주 금요일 고대강의가 무산된 것은 김정일과 김대중이 합작해서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씨는 "이번에도 또 학생들이 막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번에는 옷도 두툼하게 입고 (차안에서 오줌 눌) 큰 깡통도 준비해 가겠다"고 말했다.

김영삼 씨는 "지난 금요일에 14시간이나 식사도 안하고 버텼는데, 어떻게 화장실도 안갈 수 있느냐"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어두워질 무렵 보좌관이 몰래 가지고 온 조그마한 우유통에다 소변을 봤다"면서 "우리 보좌관이 다른 사람들 몰래 가지고 와서, 몰래 가지고 나가느라고 혼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마이뉴스 기자를 가리키며 "뉴욕에 있는 내 친구가 인터넷 중계를 보고 매우 소상히 알고 있다면서 안부를 전해왔더라"면서 "그렇게 빨리 인터넷신문에 보도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김영삼씨는 고대앞에서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과 대화를 나눈 것을 소개하면서 김 회장에게 충고도 했다. 김영삼씨는 "김회장이 그때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CD를 들어보라고 하는 등 재미없는 이야기를 해서 귀찮았다"고 했다. 그는 "여기 동아일보 기자 있지?"라면서 "김회장한데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전해라, 대낮부터 술먹지 말라고"라고 덧붙였다.

제 24신 : 14일 01시 30분: YS 정문앞 농성 풀고 상도동으로

드디어 김영삼씨가 고대정문 앞 '차 안 농성'을 풀었다. 김영삼씨는 14일 새벽 1시 7분 정문 앞에 주차해있던 차를 돌려 중앙선을 넘어 종암동쪽으로 사라졌다.(유턴을 할수 없는 곳에서)

총장과의 '차 한잔'도 이뤄지지 않은채, 아무런 '농성해제 성명'도 없이 그는 14시간만에 그렇게 운전법규를 위반하면서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고대생들의 '민족고대 정기가'만이 울려퍼지고 있다.

경찰에 의하면 김영삼씨가 탄 차는 상도동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김영삼씨의 한 측근은 "총장이 사과를 했고 빠른 시일 안에 다시 강의를 할 기회를 갖는다는 약속을 해서 돌아간 것이다"고 말했다.

동영상 보기(click 하면 당시 상황의 동영상이 나옵니다.)

(1) "한겨레?" 횡설수설 김이사장1

(2) "주사파다" 횡설수설 김이사장2

(3) YS-고대생 고대앞 대치

(1) 저지학생과 수강생의 논쟁

제 23신 : 14일 0시 35분: 새날 맞은 YS "중앙문으로"

날이 바뀌었다. 13일 오전 10시 50분경부터 고대 교문앞에서 학생들과 대치하면서 '차 안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영삼씨는 새날이 된 14일 0시 35분 현재까지도 '투쟁'중이다.

반대시위 학생들은 13일 밤 11시 40분 '철수'를 선언했지만 일반학생 20여명과 시민 20여명이 여전히 정문에 남아 김영삼 고대입성을 반대하고 있다.

가세한 시민중에는 오마이뉴스의 생중계를 보고 열받아 합류한 이도 있어 화제. 일산에서 달려왔다는 이군례(45,여)씨는 "오마이뉴스 중계를 보고 열받아서 아들을 데리고 달려왔다"면서 "오늘 하루 자랑스럽게 살고 싶었다, 이런 자리엔 어른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고대근처에 산다는 시민 최용철씨(49)는 "고대 문화는 지역주민도 지켜야 한다"면서 합류 이유를 설명.

이런 가운데 지금까지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는' 박종웅 의원에게 물어봤다.

-누군가 YS에게 도시락을 건네줬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니다. (정문에 처음 도착한 이후 죽) 정말 식사 안했다."

-화장실에도 정말 안갔나요?

"모르겠어요."

-총장하고 차 마시고 끝마친다고 한것 같은데 왜 학교안으로 안들어갑니까.

"총장이 모시러 와야 하는데 안오잖아. 또 가운데 문이 안열려 있잖아."

가운데 문이란 정문의 중앙문을 말한다. 반대시위 학생들이 철수하면서 중앙문을 쇠사슬로 칭칭감아 쇠통을 채워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중앙문(폭 약 9미터) 옆의 4개의 곁문(하나의 폭 약 4미터)으로도 충분히 승용차가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김영삼씨는 굳이 중앙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0시 20분경 수위 아저씨가 절단기로 중앙문에 감겨진 쇠사슬을 잘라냈다. 이제 중앙문을 열렸다. 과연 YS는 이제 고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제 22신 : 13일 밤 11시 55분: 반대시위 학생들 철수, 총장-YS 대화

밤 11시 40분경 고대 김정배 총장이 나타나 김영삼씨 차 안으로 들어갔다. 수분 후에 차밖으로 나온 김 총장은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함구로 일관.

반대시위학생들은 대부분 철수하고 없는 상태. 현장 분위기는 김 총장이 김영삼씨와 함께 총장실로 들어가 차 한잔을 하면서 위로해주고 13시간 동안의 교문앞 '농성'을 마무리하는 쪽으로 기우는듯하다.

제 21신 : 13일 밤 11시 35분: 다시 밖으로 나온 YS "답답해, 서울공기가 안좋아"

밤 11시 30분. 이젠 그야말로 심야다.

김영삼씨는 11시경 다시 차 밖으로 나왔다. 민주산악회 회원들로 보이는 시민들이 "김영삼" "김영삼"을 연호하자 그는 "답답해, 서울 공기가 안좋아"라면서 "학교측이 한달 안에 공식강의를 다시 하게 한다는 확약을 이자리에서 안하면 못간다"고 강경입장을 다시 강조.

그는 부인 손명순씨로부터 "괜찮냐는 전화가 와서 괜찮다고 했다"라면서 차 주변을 왔다갔다 하면서 다리운동.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여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습니까?

"민주주의를 위해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것하고 민주주의하고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아가씬 그것도 모르나. 다 연결되지.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최고의 가치인데..."

-강의하게 되면 어떤 말을 하려고 했길래 그토록 하고 싶어합니까?

"재임시절 경험이야기 하다보면 당연히 김대중 이야기가 나올 것 아닌가."

제 20신 : 13일 밤 10시 35분: 김영삼의 새 제안 "한달 안에 강의하게 해준다고 지금 확약해라"

오전 10시 50분에 시작하여 만 12시간째 정문앞 '차 안 농성'을 하고 있는 김영삼씨는 밤 10시 25분경 잠시 차밖으로 나와 기자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공개했다.

"앞으로 한달 이내에 고대에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학교당국에서 초청을 한다는 확약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해주지 않는다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

학교당국으로서는 참 얄궂은 제안이다. 한달 후에 또다시 이런 홍역을 반복하란 말인가?

지금은 수강대상 학생들은 다 집으로 가고 없고 반대시위 학생들만 남아있다.

제 19신 : 13일 밤 10시 20분: 여기는 국제관 321호

밤 10시 20분, 여기는 김영삼씨가 그토록 가고야 말겠다는 국제관 321호실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금방 새로 지은 건물임을 느낍니다. 계단식 원형 강의실인데 총 142석의 빈 자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강연석에는 컴퓨터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강연대에는 자유, 진리, 정의라고 쓰여져 있고 거기에 마이크 하나가 외로이 놓여 있습니다.

바깥의 쌀쌀한 날씨와는 달리 이 안은 아늑합니다. 조명도 온화합니다.

고대학생들에 의하면 이 국제관은 밤 11시에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국제관 수위아저씨는 "공식적으로는 11시에 닫지만 11시 10분이나 15분쯤에 완전히 닫는다"고 합니다.

지금시각 10시 25분, 이제 35분, 더 처봐야 40-50분 남았습니다.

이 강의실에서 대통령학을 펼치려던 김영삼 대통령은 아직도 고대 정문 앞에서 이 강의실에 들어오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이 '슬픈' 대통령을 만들었을까요?

제 18신 : 13일 밤 10시: 두번째로 차밖으로 나와 다리운동하는 김영삼

KBS 9시 뉴스는 무려 30분간을 김대통령 노벨상 수상 소식으로 이모저모를 다루고 있다. 그 시간 김영삼씨는 두번째로 차밖으로 나와 다리운동을 하고 있다. 김영삼씨는 양 10미터 길이의 인도를 왔다갔다하면서 다리를 푼다. 재미있는 것은 김영삼씨의 이동에 따라 약 10여명의 기자들도 함께 이동하면서 그와 인터뷰를 시도하는 웃지못할 장면이다.

-식사 하셨어요?

"식사 뭐, 23일간이나 굶은 적도 있는데."

-학생들이 해산하면 그냥 돌아갈건가?

"내가 들어가야지. 학생들 수업받지 않아도 내가 들어갔다 나와지. 내가 강의실에 초청받았지 교문앞에 초청받았나."

그런 와중에 함성득 교수가 수강예정학생을 남녀 1인씩 데리고 김영삼씨에게로 갔다. 이 자리에서 함교수는 "오늘 강의가 안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제 그만 가시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김영삼씨는 밤 10시 현재 다시 차에 들어갔을뿐 떠나지 않고 있다.

제 17신 : 13일 저녁 8시: 함교수 "YS가 꼭 국제관 321호실을 고집해요"

벌써 날은 졌다. 가뜩이나 쌀쌀한 날씨, 학생들은 잔뜩 움츠리고 있다. 오전 11시 경부터 벌써 9시간째. 지리한 대치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김영삼이 아직도 안 갔어?"

식사를 하러 학교 밖으로 나오는 학생들은 정문 앞의 학생들과 전경을 보고 10이면 7,8이 이 말을 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정문 앞 학생들은 지금 새로운 안을 가지고 논의하고 있다. 정문을 막고 있는 100여명의 학생들과 '대통령학' 수업을 듣는 40여명의 학생들이 같이 철수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 중 남녀 대표 1명씩 2명이 김 전대통령과 국제관 321호실(오늘 강의가 열리기로 예정된 곳)에서 간단한 담소를 나누게 한다는 것.

이 안은 함성득 교수의 아이디어. 왜 이런 안을 냈냐는 질문에 함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YS가 꼭 국제관 321호실을 고집해요. 아까 내가 갔을 때 YS가 그러더라구요. '교수도 집에 가라. 학생들도 가라. 난 꼭 321호실에 들렀다가 가겠다."

오전에 "나의 강의를 듣고자 하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난 강의를 하겠다"고 말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제 '국제관 321호실을 꼭 찍고 가겠다'로 바뀌었다.

제 16신: 13일 낮 6시 20분: 김영삼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고대 정문 앞에서 학생들과 오전 10시 50분부터 8시간여 동안 '대치' 중인 김영삼 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고 오후 6시 10분에 공식논평했다.

김영삼 씨는 박종웅 의원이 대신 읽은 논평에서 "나는 지금 강연초청을 받고 10시간 동안 차 속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자유, 인권,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느냐. 그건 말도 안된다. 야당말살, 언론탄압, 부정선거를 하는 이런 독재자가 노벨평화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사견임을 전제 "YS가 고대 안으로 못 들어가는 것은 현정부의 방해공작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아직까지 YS는 아침 이후 밥을 안먹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총학생회측과 수강학생측은 단일안 합의에 성공. 즉 두 학생측은 모두 흩어지고 김영삼 씨가 총장실에 가서 총장과 차한잔 마시는 것으로 하자는 것. 그러나 이 합의안이 함성득 교수에 의해 김영삼 씨에게 전달됐으나 김영삼 씨는 이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총장과 차 마시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강의하러 왔다. 애초의 강의장소인 국제관 321호에서 담화하고 가겠다."

그래서 다시 대치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온나라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으로 들떠있는 지금 고

대정문 앞은 지극히 평화롭지 못하다.

제 15신: 13일 낮 5시 42분: "날은 저물고 YS의 '고집'은 저물지 않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가 임박한 오후 5시 50분, 이곳 고대 정문 앞은 날이 저물어가고 있지만 김영삼 씨의 '특강성사'에 대한 '고집'은 저물지 않고 있다.

김정배 총장은 학생들에게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훌륭한 식견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자유롭게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라"고 말해 김병관 이사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총장이 그런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 후 시위학생들이나 수강대상 학생들이나 특강은 이미 물건너갔다고 인정하는 분위기.

5시 30분경 한 학생이 어디에선가 왕소금을 한주먹 가져와 정문앞에 뿌리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러나 김영삼씨는 아직 차 안에 있다.

제 14신: 13일 낮 5시 16분: "YS가 동아일보엔 안간다고 한다"

김병관 이사장 겸 동아일보 회장은 약 10여분간 김영삼씨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다 차 밖으로 나와 취재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김 이사장은 "내가 동아일보로 가자고 했는데 YS는 안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약간 술을 한듯한 그는 정문앞 사안과는 다른 몇가지 '민감한 발언들'을 했다(다음에 오마이뉴스에 소개). 그러는 사이 5시 현재 다시 김정배 총장이 학생들 앞에서 설득을 시도했지만 학생들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5시 15분 총학생회는 정문 앞에서 즉석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삼씨 강연을 결사반대하며 단 한발도 들어설수 없게 하겠다"고 애초의 방침을 재확인.

제 13신: 13일 낮 4시 20분: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내가 동아일보로 모시겠다"

4시 19분 급반전 상황이 발생했다. 고려대 재단 이사장인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이 시위중인 학생들 앞에 나타나 이런 선언을 했다.

"너희들이 이러면 동아일보로 모시겠다. 고려대학은 민족대학이고 동아일보는 민족신문이다. 동아일보로 모시겠다. 이상 끝."

그렇게 선언하고 김병관 이사장은 김영삼씨의 차안으로 들어가 4시 20분 현재 김씨와 이야기중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박종웅 의원에게 물었다.

-저분이 정말 동아일보 회장 김병관씨 맞습니까?

"맞아요. 오늘 벌써 여기에 세번째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2시 20분에 나타난 재단 고위관계자는 바로 김병관 회장이었다.---아래 제10신 참조)

-약주를 한잔 한것 같네요.

"그래요."

-아직까지 김영삼 전대통령은 점심식사 안했나요.

"안했어요. 화장실도 안가고."

제 12신: 13일 낮 4시 7분: 함 교수 "YS는 교재용이다"

3시 55분 김영삼씨를 초대한 행정학과 함성득 교수가 최후적으로 시위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호소는 절절했다. 핵심은 "YS는 교재용"이라는 것.

"강의를 우리 다 같이 듣자. 기자들도 같이 들을지는 학생들이 결정하라. 수업진행은 내가 하겠다. 70분인데 전반부는 회고록을 듣고 후에 질문을 하면 되지 않나. 질문 우선권은 수업학생들에게 주고 그다음 반대시위 학생들에게도 주겠다.

이것은 강의고 저 사람은 교재용이다. 싫어하는 사람도 교재용으로 쓸수있다. 나를 믿어달라. 선생을 안믿으면 누구를 믿나.

다시 한번 강조한다. YS는 교재용이다. 교재는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패한 대통령에게 욕만했지 왜 실패했는지를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규명하지 못했다."

이러한 함교수의 즉석설득에 일부 학생들을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다수의 반대시위 학생들은 여전히 입장불변. 4시 현재 학생들은 함교수의 제안에 대해 자유토론중.

제 11신: 13일 낮 3시 40분: 밖으로 나와 2-3분간 다리운동

약 5시간째 차안에 머물고 있던 김영삼씨가 오후 3시 25분경 차 밖으로 나와 2-3분간 차 양쪽을 오가며 걷다가 다시 들어갔다. 이 사이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점심도 굶었는데 배고프지 않나.

"아 뭐 참을 수 있다. 23일간 단식도 했는데."

-화장실 안가고 싶은가?

"참을 수 있지 뭐."

-강의는 할 건가.

"아 당연히 해야지. 이런 놈의 학교가 어디 있느냐. 교수가 초청해놓고 총장이 와서 하라마라 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강의는 한다. 데모하는 너희들도 내 강의를 들어라. 70분 강의 충실히 채우겠다."

-왜 나와서 왔다갔다 하는가.

"......"

마지막 질문에 그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다리운동 차원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그는 곧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머리는 붉은기가 엷게 돌게 염색이 되어 있었다.

제 10신: 13일 낮 3시 20분: 드디어 재단 고위관계자까지 출동했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김정배 총장이 다녀간지 한시간만에 드디어 고려대 재단 고위관계자까지 현장에 나타났다. 이 재단 관계자는 2시 40분경 김영삼씨가 머물고 있는 차에 들어가 약 10여분간 면담.

다음은 차에서 나온 재단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무슨 이야기 했나.

"예전에 같이 술마시던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강의는 2차적인 것이고 내 이사장실에 가서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하겠다."

-이사장실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 건가?

"그냥 간단하게 차나 한잔 마시려 한다."

-강의는 결국 못하는 건가?

"그것은 2차적인 것이다."

제 9신: 13일 낮 2시 50분

긴급 새 제안, "교우회관에서 강의하면 어떨까?"

오후 2시 40분 현재 총학생회 긴급중앙위원회와 수강학생 대표의 회의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 학생에 의해 '묘안'이 떠올랐다. 이 학생은 "교내 강의가 불가하다면 교우회관에서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

교우회관은 고대정문에서 맨 오른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고대 교우들이 결혼식 등을 할때 이용하는 장소. 출입문이 따로 있다.

이런 회의가 계속중인 가운데에도 학생들은 새로운 플래카드들을 만들어오기도. 그중 하나는 "나라살림 거덜내고 통일염원 재뿌리는 김영삼은 입닥쳐라".

한편 이 현장중계 기사의 말미의 독자의견란에는 70여개의 의견이 분단위로 붙고있어 독자들의 관심을 반영. 한 독자는 "김영삼씨는 화장실에는 안 갔나요"라는 질문을 올렸는데 현장취재중인 오마이뉴스 기자가 확인중.

제 8신: 13일 낮 2시 10분

김영삼씨는 남고 손명순씨는 떠나

오후 2시 7분경 김영삼씨와 함께 검정색 체어맨(서울 49라 4337)에 동승하고 있던 부인 손명순씨가 또다른 차인 다이너스티를 타고 정문앞을 떠나 어디론가 갔다. 총학생회 긴급중앙위원회는 수강대상자였던 행정학과 대표 한명을 참석시킨 가운데 대책회의를 계속하고 있다.

제 7신: 13일 낮 1시 50분

학생들은 초코파이와 빵으로 점심 때웠지만

학생들의 정문앞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영삼씨가 오후 1시 50분 현재 3시간째 고대 정문 앞에 주차된 자신의 승용차 안에 머물고 있다. 김영삼씨는 부인 손명순씨와 함께 차 안에 있는데 점심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

반면 학생들은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사다가 점심을 때웠다. 학생들 120여명은 여전히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김영삼씨의 정문통과를 막고 있다.

1시 50분 현재 총학생회 간부들은 정문 옆 잔디밭에서 긴급중앙위원회를 열고 총장 면담을 마치고 온 총학생회장으로부터 총장의 입장을 설명듣고 있다.

제 6신: 13일 낮 12시 50분

김정배 총장-김영삼 차안에서 대책협의

특강 수업시간(11시 30분-12시 30분)은 이미 끝났다. 그러나 수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김정배 고려대총장이 12시 35분경 정문앞에 나타났다. 김총장은 김영삼씨가 머물고 있는 차안으로 들어가 '대책회의'. 10여분간 대책을 논의하고 나온 김총장은 차를 타고 총장실로 직행하면서 모종의 협상안을 제시하려는듯 총학생회장을 총장실로 올라오게 했다. 12시 45분 현재 총장과 총학생회장간의 대화가 계속중.

두시간째 정문앞 차안에서 머물고 있는 김대통령측에 한 기자가 "점심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박종웅 의원은 "그런 것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도 답변.

박 의원은 김영삼씨가 "내가 23일간이나 단식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것 하나 못버티겠느냐"고 말했다고 전언.

제 6신: 13일 낮 12시 15분

담판 결렬 학생-김영삼 '강경대치'

김영삼 선생님은 수업시간을 지킬 수 없었다. 예정된 특강 수업시간은 오전 11시 30분.

그러나 김영삼 선생님은 12시 20분 현재 정문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

정문통과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영삼 특강이 무산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고대 출입문은 정문 말고도 법대후문 등 3개의 후문과 쪽문 등이 있다. 총학생회측은 김영삼측과의 막후협상에서 "우리는 정문만 막고 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정치적 의도가 없는 강의라면 후문이나 쪽문을 통해 가도 되지 않느냐"는 입장을 피력.

초청교수인 함교수가 이 '협상안'을 차안에 머물고 있는 김영삼씨에게 알렸으나 김영삼씨는 "이게 민주주의냐, 밤새도록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강경입장.

한때 총학생회간부들은 이정도면 됐다는 유화론이 고개를 들어 정문앞에서 즉석 운영위원회를 열기도. 정동희 총학생회장(24, 기계공학4)과 이규철 정경대학생회장(23, 신방과4) 주도로 열린 이 운영위원회에서는 '강경파'의 논리가 우세해 "김영삼씨의 정문통과를 저지한다"는 최종입장을 정했다.

제 5신: 13일 낮 12시

정문앞 김영삼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

정문앞에서 40여분간 차안에 앉아있는 김영삼씨는 박종웅 의원을 통해 '입장'을 학교측에 전달.

박의원은 고대 학생처장에게 "고대총장까지 나서서 우리를 오라고 했으면서 왜 이렇게 사태를 방치하느냐"면서 "우리는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 학생들이 스크럼을 풀고 해산할때까지 이 자리에 있겠다"고 '강경대응'을 선언.

하지만 학생처장은 "교수 개인의 강의여서 학생들이 나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도 답변.

차안의 김영삼씨는 매우 침통한 표정.

제 4신 수정: 13일 오전 11시40분

김영삼 정문앞에서 40여분간 기다리는중

김영삼씨가 오전 10시 50분경 고대 정문앞에 검은색 세단을 타고 도착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바람에 11시 40분 현재 정문옆 지하차도 부근에 승용차를 세워두고 김영삼씨는 그 안에 앉아 있는 상태다. 김영삼의 '입'인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이 정문앞 학생들에게 "이해할수 없다. 학교하고 다 사전에 이야기한 것인데 이게 지성인이 할 짓이냐"고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계속 박수를 치며 김영삼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제 3신: 13일 오전 11시 10분

120여명 시위 중 특강주최 교수와 학생 논쟁

120여명의 학생들의 시위가 정문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문 주변에 배치되어 있던 5백여명의 전경 가운데 1백여명이 시위중인 학생들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김영삼씨 특강을 섭외한 행정학과 함성득 교수와 수업을 받을 행정학과 학생 30여명도 정문앞에 와 있다. 시위대와 이들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 긴장은 김영삼씨가 후문등을 이용하지 않고 정문통과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함 교수는 시위주도 학생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것도 수업인데 왜 수업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느냐"

"수업권은 인정하지만 역사의 죄인인 김영삼씨를 안암땅에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제 2신: 13일 오전 10시 20분

고대학생들 120여명 아침 8시부터 정문앞 시위

고려대 총학생회 소속 학생 120여명이 오늘(13일) 오전 8시부터 고대 정문 앞에서 "김영삼 고대 방문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전경 5백여명을 고대 정문 주변에 배치해 두고 있다.

학생들은

"IMF를 초대한 YS, 우린 당신을 초대하지 않았다"

"김영삼과 개 출입금지"

"개왈, '나를 모독했다'"

"김영삼의 대통령학=한보부도+IMF구제금융"

등이 적힌 플레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며칠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의 반대가 있지만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가겠다"고 밝힌 적이 있어 '정문통과' 여부와 강연 성사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제 1신: 13일 오전 8시

학생들 찬반논쟁--수업받을 권리 vs 민족사학 자존심

김영삼 씨는 알고 있을까? 자신의 고려대 방문을 앞두고 고려대 학생들 사이에 좀처럼 합의하기 어려운 의견이 평행선을 그리며 반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오전 11시 30분에 있을 김영삼 씨의 고려대 강연에 대해 고려대 학생들은 '무엇이 학생다운 행동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것에 대한 해답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지난 10월 8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은 YS의 고대강연을 언론에 알렸다. 박의원은 "YS가 이번 대통령학 강연에서 '나의 회고'라는 제목으로 문민정부 공과 자평, 재임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 정부의 비판, 차기 대선의 성격과 대통령의 자질에 대한 소신 등을 밝힌다"고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고려대 총학생회는 각 단과대의 중지를 모아 10일 중앙운영위를 열어 YS의 고대방문 저지를 결정하였다. 저지 결정의 이유는 명확하고 단호했다. 이길수 고려대 부총학생회장(법과대 96학번)은 "김영삼씨는 기본적으로 나라경제를 망친 대통령이고 한보사태-김현철 비리를 일으킨 부패한 정치인이며, 자신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기 위해 진보세력을 탄압한 반민중적인 대통령이다"고 말했다. 또한, "YS가 역사와 민중 앞에 사죄하지 않는다면 고려대 땅에 절대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학생회의 입장과 대칭 되는 지점에 정경대 행정학과 대통령학 수강생들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학생회의 실력저지로 강의가 무산될 처지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YS의 강의는 학교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담당교수와 36명의 이 과목 수강생들이 함께 논의해 결정한 사안이며, 학문적인 영역에 과도한 정치논리를 대입시킬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었다.

행정학과 학생회실에서 만난 이들은 "수업을 방해하고 있는 학생회가 도대체 한번이라도 이 과목을 들어보기라도 했냐",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 등록금 돌려달라", "우리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김영삼 문민정부의 공과에 대한 비판이 왜 없겠냐"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결국 '우리들의 수업 받을 권리가 왜 침해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다.

정경대학 학생회는 이 양자의 입장에 공동분모를 가지고 있기에 좀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다. YS의 고려대 방문저지를 내용으로 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있던 정경대 학생회장은 현재 '수배중'이었다. 문민정부시절 학생회에 붙인 '이적 규정'이라는 꼬리표는 현재 진행형이다.

"행정학과가 고려대 밖에 존재한다면 몰라도, 고려대 안에 존재하는 이상 YS는 절대 안암땅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물론 대통령학 수강생의 입장을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YS가 강연을 위해서건 다른 이유에서든지 간에, 고려대 정문을 통해 들어와서 나간다는 상징적인 현상은 이 과목 수강생들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는 상식을 가진 대학인이라면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처럼 YS가 강의할 내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현실에서, 그에게 강연기회를 주는 것은 YS 개인을 위한 정치적 공세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 강의를 기획했던 행정학과 대통령학 담당교수인 함성득 교수는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한 채 강의무산 저지를 결정한 학생들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대학원 도서실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이미 YS의 강연 문제로 학생회 대표들과 얘기를 나눈 후였다. 몇번의 실랑이 끝에 겨우 입을 연 그는 "그 녀석들이 내 강의를 뭘로 보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고 "지금은 아무 얘기도 하기 싫으니 담에 와달라"고 주문했다.

이병한/최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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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최고의 히트곡 "너흰 아니야." 그 너희가 난 딴나라당인줄 알았는데 그게 놈현이었다.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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