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도행전을 묵상중입니다.

16장에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 나오더군요.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가서 복음 전하려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신 후, 그는 밤중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아시아가 아니라 반대방향이라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서는 자기를 청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곧 마케도니아로 가게 됩니다. 워낙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인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 첫 지경인 빌립보에 바울이 도착하는 순간, 처음 일어난 사건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바로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준 후 그 주인들의 무고로 감옥에 갇힌 것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뿐 아니라 무지하게 얻어터지기까지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결과가 기껏 얻어터지고 옥에 갇히는 것이라니... 그 밤에 바울과 실라가 보여준 태도도 인상적입니다. 그 상황에서 기도하고 찬미한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립니다.

죄수 탈옥시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간수가 자살을 기도하는 순간, 사도 바울은 그 유명한 한 마디를 던지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편지한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인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감옥에 갇혀 밤새껏 찬양할 수 있었던 사람이나 쓸 수 있는 권면의 말인 것이지요. 감옥에 갇혀서도 담대히 구원의 복음을 외친 바울의 인생은 그 이후에도 참 더럽게 안 풀립니다. 맨날 감옥 아니면, 얻어터지고, 살해기도를 모면하는 일들만 벌어지니까요.

사실,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해서, 즉시 하늘에서 돈벼락이 내리거나 병이 낳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축복의 개념 자체가 우리 생각과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간 이후 처음 만난 것도 돈벼락이 아니라 무서운 기근이었습니다(창12장).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지내면서 처음 겪은 일도 시냇물이 마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과부집에 얹혀지내게 된 후에는 그 집 아들이 죽는 일까지 생기지요. 물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도 있었고,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일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왕상 17장).

작년에 처음 미국으로 올 때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멀쩡한 직장을 팽개치고 떠난다고 해서 미친 놈 소리를 들으면서도 결정을 밀어부칠 수 있었던 것은 그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 한국경제가 완전히 맛이 가더군요. 퇴직금으로 받은 것도 달러로 환산하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공부전망도 매우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음성에 순종한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하는 회의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누구라도 떠나온 애굽을 그리워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아내가 미국정부에서 상당히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받게 되는 등 이곳 생활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어도, 제 개인적인 형편은 지금도 썩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급변하는 사회, 당분간은 돈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할 것이 분명한 한국의 복지정책 분야... 영어실력도 그렇고...

그러나, 오늘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믿고 하나님 음성에 순종해서 일이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우리가 갈 길이라면 그냥 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은 단기적인 것도 있지만, 아주 장기적인 것도 있다. 때로는 얻어터지고 망하는 것이 축복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내가 할 일은 눈앞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또다시 그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의 인생은 "한 번의 순종 - 영원한 축복"의 공식으로 정리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끝없는 순종 - 영원한 축복"인 것이지요. 그래서,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한 번 순종한 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두고온 애굽을 돌아보기보다는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또 순종하고, 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너무 초조해 하지도 말아야겠지요. 비록 바울이 아시아를 향한 복음 전파의 여정에 오르지는 못했어도, 끝내는 우리 귀에까지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시간은 1800여년이 걸렸지만, 결국 우리도 그의 복음의 열매인 셈이지요.

모든 결과를 내 눈으로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여유가 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못하면 내 딸 희수라도 하겠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에 다녔던 사람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기독학생회 회장을 맡았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교단체 중의 하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참석한 수련회에서는 평생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겠다고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시공부를 시작했지만, 감히 말하건대 남들처럼 사법시험을 통해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조영래 변호사처럼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그런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요. 대학 3학년 때는 고대 법대 기독학생 모임의 회장도 했고, 그 시절 서울법대에 재학 중이던 친구와 함께 서울지역 기독 법대생 모임을 만드는데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신우회 조직을 위해 열심히 뛰어 다니는 한편, 대학 신입생들을 모아 신앙서적 독서모임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군법무관 시절에는 붙잡혀 오는 사병들에게 지나치게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나중에는 소문을 들은 피의자들이 모두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웃지 못할 현상을 낳은 적도 있습니다. 대학 1학년 이후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말씀을 묵상했고, 대학시절 적어놓은 저의 묵상 노트는 교제초기, 법조인들에 대한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제 아내의 마음을 돌리는데 결정적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소 장황하게 저의 전력을 적은 이유는 제가 매우 전형적인 이른바 "복음주의 기독청년"이었음을 설명하고자 함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고, 선교단체에서 훈련도 받았으며, 이런 저런 모임의 책임을 맡았던 저였지만, 세상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쉽지를 않았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부딪혔던 것은 술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인이 술을 먹는다고 해서 잘못은 아닙니다만, 법조계처럼 워낙 폭주를 하는 문화 속에서는 술을 엄청나게 마시거나 아예 안 마시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후자 쪽을 택했지요. 우리 사회에서 술은 그저 먹고 즐기는 그런 도구만은 아닙니다. 술을 통해 만남을 갖고, 술좌석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인간관계를 확장할 수 있지요. 제가 술을 안하는 것을 알면서도 업무상 전화를 마칠 때면, "언제 만나서 한 잔 해야지?"라고 인사하던 동료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그만큼 "한 잔 하자"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시자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가장 즐거운 회식 시간이 저에게는 썩 편치 않은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높은 분들이 권하는 술잔을 거절해야 할 때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회식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술에 만취된 동료들을 하나씩 차에 태워 집에까지 바래다주는 것은 제가 선택한 일종의 자구책이었습니다. 이 정도 노력을 하고 나면, 겨우 "그 자식, 술을 안 먹기는 해도 그렇게 싹수머리 없는 놈은 아니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요. 서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술을 마시고 즐기는 것조차도 완전한 오락일 수는 없습니다. 주도(酒道)라는 것이 따로 있는 나라가 어디 흔합니까? 그러나, 술 취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여러 번 받았지만, 어떻게 술을 조절할 수 있는지를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가르쳐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두 번째로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돈 문제였습니다. 언론에서 법조계의 부패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어 주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뇌물을 거절할 수는 있었어도, 뇌물 주려는 사람을 그 자리에서 잡아넣지는 못했던 약골 검사로서의 한계는 고백하고 싶습니다. 전별금이나 떡값을 수수하는 관행은 대전지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당장 생각해 보십시오. 이번 사건에 걸려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검사들입니다. 일부는 한때 특수 수사의 대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수표추적으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잡아내던 사람들이 수표추적에 걸렸다는 것, 참 이상한 일 아닙니까? 만약 이번에 걸려든 검사들이 이 돈을 뇌물로 생각했다면 절대 수표로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뇌물을 현금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검사들이 수표로 돈을 받아 은행에 입금시켰다는 사실은 그들이 이 돈을 뇌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이 모든 과정이 관행화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저는 기독교인으로 잘 알려진 김태정 검찰총장님이나 몇몇 검사장님들께도 감히 여쭤보고 싶습니다. 총장님께서는 검사로 재직하시는 동안 떡값이나 전별금을 받은 일이 한 번도 없으셨냐고 말입니다.

돈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관행은 어제오늘의 것이 아닙니다. 과연 한국의 공직자들 중 몇 사람이나 이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이번에 줄줄이 구속된 법원, 검찰 직원들이나 변호사 사무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의 경우, 법원 공무원들에게 돈을 쥐어주지 않으면 당장 사건관계 서류를 복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게 이른바 급행료라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나 혼자 깨끗하겠다고 급행료를 건네주지 않으면, 곧 "왕따"가 되고 시간이 계속 지연되다 보면 업무에도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급행료를 받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료집단의 압력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제가 비리집단을 변호하고 있다고 오해하지 말아주기 바랍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돈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관행이 이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비단 법원, 검찰뿐이 아닙니다. 조그만 회사라도 경영해 본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일이 윤기 있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름을 쳐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기독 청년들이 던져질 사회는 바로 이런 현장입니다. 선교단체처럼 "내가 형제를 미워했었다"고 고백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도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우리 사회가 뇌물을 거절하는 이에게 박수를 보내는 공동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왕따로 몰릴 각오를 해야 부정과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한동안 "이 랜드"라는 기업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는다고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게 어디 화제가 될 일입니까? 그러나, 그게 화제가 되고도 남는 곳이 바로 우리 사회입니다. 돈을 받지는 않아도 주기는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회사에서 돈을 주며, 어디 어디에 가져다주라고 하는데 그걸 거절해 보십시오. 옆자리의 동료는 거래처 사람들을 모시고 룸살롱에 가서 머리에 넥타이를 두르고 한 손으로는 아가씨를, 다른 한 손으로는 마이크를 잡은 채 노래를 멋지게 불러대며 승승장구하는데, 신입사원 주제에 아예 그런 모임에 얼굴도 비치지 말아 보십시오. 그게 어디 쉬운 일일 것 같습니까? 그런데도, 제가 교회를 다니는 동안 누구도 그런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 분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로 저를 피곤하게 했던 것은 끊임없는 부탁이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정말 좁은 물입니다. 얼마나 좁은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한 다리만 놓으면 누구나 고위층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규모가 큰 사건이면 전화통에 불이 납니다. 부탁을 하는 분들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가족 중에 누가 경찰서에 붙잡혀 가 보십시오. 우리는 가장 먼저 친지 중에 누구 힘있는 사람이 있나 찾게 됩니다. 내가 만약 권력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런 친지들의 부탁을 거절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장 "누구누구는 좀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너무 교만하다. 어려울 적 친구들을 잊어버렸다"고 소문이 납니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수없는 부탁 전화를 받으면서, 정말 무서웠던 사람들은 품위가 넘치는 고위 공직자들이었습니다. "고생이 많으시지요? 제가 무슨 무리한 부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건을 자세히 검토해 달라는 말씀 드리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제가 들어보니 억울하다고 하더군요." 뭐 이런 식으로 잔잔히 말하지만, 압력은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검찰이나 경찰 같은 국가기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서든 어디서든, 조그만 권한을 쥐게 되는 순간, 누구라도 이런 부탁의 홍수 속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인정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부탁을 거절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보십시오. 제가 보장하건대, 여러분의 모든 친지들이 여러분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입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불행히도 저는 이런 문제들을 직접 다룬 설교를 들어본 경험이 그리 많지를 않습니다. 성경에는 공의와 관련된 구절이 많이 있는데 반해, 설교에 인용되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네 번째로 우리 사회의 이중 잣대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국민 중의 많은 사람들이 판검사는 도둑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의 누군가가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사람들은 만세를 부릅니다. 돈을 먹은 공직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지만, 막상 공직자가 내민 부조 봉투에 3만원이 들어 있으면 누구나 욕을 합니다. 성공했다고 나를 무시한다며 이를 갈기도 합니다. 월급 150만원을 받는 공직자가 남의 결혼식에 10만원씩을 부조할 수 없습니다. 10만원씩 부조를 열 번 하면 월급을 거의 다 날리게 되어 있는데 무슨 수로 그런 거금을 부조합니까? 그래도, 사람들의 기대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청렴하기는 하되, 나에게는 돈을 막 써야 한다"는 이중 잣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서 돈을 만들어내는 길 뿐입니다. 뇌물을 먹거나, 아니면 부자 장인(?)을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은연중에 법조계는 부자 장인 만나는 것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부정을 막을 더 이상의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식의 이중 잣대는 어떤 직장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청렴하기는 하지만 남보다 승진에 뒤지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존경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능력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인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이,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 하고, 영어를 잘 한다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는 그대로 교회에서의 지위로 연결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기독 청년이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의 글재주로는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술, 돈, 부탁, 이중잣대 등의 문제와 부딪힐 때마다 느끼던 일종의 공포감을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뭔가 거대한 벽 앞에 선 것 같은 절망감도 잘 전달하지를 못하겠습니다. 이런 공포는 물론 저의 믿음 없음에 주된 원인이 있었겠지만, 다른 한 편 "왕따"로 따돌림을 받는 것에 대한 불안도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독실한 기독교인들이었고, 대화의 주된 화제는 전도와 사회개혁이었습니다. 크리스천 게토에 갇혀, 우리들만이 쓰는 언어("도전받았다"는 식의 영어단어 직역이 대표적인 예)를 사용하며 기쁨을 누렸던 셈이지요. 교회와 선교단체에서는 누구도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간혹 직장생활을 조언하는 기독교 서적들이 있기는 해도, 제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한국적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선교단체 출신의 대학생들이 모두 선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수의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직장이라는 새로운 전쟁터로 투입됩니다. 이는 마치 비행기 조종 훈련만 받던 공군 장교가 특공대를 이끌고 적후방에 투입되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혼자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직장생활을 1-2년만 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맞장구를 칠 이야기들도, 목사님들이나 선교단체 간사님들에게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말로만 듣는 것과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가끔은 '목사님께서 직장생활을 1년만 해 보셨다면 교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선교단체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1-2년만에 직장을 그만 두거나,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겼습니다. 순수한 친구일수록 현장에서 겪는 고통은 더 심했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배웠지만,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는 배우지 못한 우리 세대의 장렬한 전사였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젊은 그리스도인들 중 더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단체나 교회에서도 좀 더 강한 군사들을 길러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인 원리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일러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선교단체, 또는 복음주의 운동단체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평생 학문이나 목회에만 종사하신 분들이라는데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그렇게 순수하고 용기 있는 외침을 외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기독교 지도자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좀 더 한국적인 선교단체, 좀 더 한국적인 청년부 조직을 통해 저희 세대보다 훨씬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양성되기를 원합니다. 싸움하는 방법을 정확히 배운 후배들이 저희 세대보다 더 강하고 담대하게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왕따"가 되기를 자원하는 용기 있는 기독 청년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교회들로 인해 이 땅이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나라 대학생 중의 상당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재수를 생각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지요. 특히, 입학 초의 대학 적응기를 보낸 후 지금쯤 되면, "더 나은" 대학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됩니다. 최소한 어느 대학은 가야 사람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우리 나라에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은 "그 대학" 밖에 없다는 생각, 그리고 그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낙오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4월부터는 우리 주변의 학우들이 한두 명씩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라진 얼굴들을 보고 싶으면 이른바 "명문학원"에 가보면 됩니다. 그들 중 몇 명은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게 될 거고, 나머지는 1년 후 초라한 얼굴로 돌아와 후배들과 함께 강의를 듣게 되겠지요. 그들 중 몇 명은 30년 후 아들, 딸을 다그치면서 "아빠가 그 대학에 못 갔기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 그러니, 너는 꼭 그 대학에 가야한다"고 소리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기독 대학생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오늘 저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을 위한 제 나름대로의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면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대학"에 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가 열등감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디에도 최고의 자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외부에서 바라볼 때 사법연수원은 비교적 일찍 성공했다는 청년들이 모여 있는 집단입니다. 그 안에는 열등감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A대학을 졸업한 합격생들은 B대학을 졸업한 합격생들에 대한 묘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대학 4학년 때 합격한 동료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대학 4학년 때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보다 좋은 성적으로 합격한 친구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5등으로 합격한 사람은 1등으로 합격한 사람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지방에 발령 받은 사람들은 서울에 발령 받은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성적 때문에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목표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런 열등감 때문에, 또는 무시 받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변호사인데도 어쩔 수 없이 남의 눈을 의식하여 판검사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사법연수원을 예로 들었지만, 세상 어디에도 이런 법칙은 적용됩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일반적 현상을 보면서, 세상의 어떤 자리도 인간을 열등감으로부터 자유케 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자리를 향해 아무리 달려가 봐도, 그 자리를 확보하고 나면, 또 더 나은 자리가 눈앞에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에 가도 자기보다 나은 사람은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이런 열등감으로부터 자유케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나 자신이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존귀한 자임을 깨닫게 될 때만 우리는 이 비참한 열등감의 덫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그리스도 안에서 열등감을 극복해 봐야, 남들이 나를 우습게 보는데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와 관련하여 한 가지 말씀을 더 드리겠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 한번쯤 있게 마련입니다. 직장에 취직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박사학위를 따는 순간일 수도 있고, 결혼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들에게 이 순간이 너무 빨리 찾아온다는데 있습니다. 즉 대학입학과 동시에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겨우 10대 후반의 나이에 마치 온 세상을 다 소유한 것처럼 가문 전체의 축하를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5년, 10년이 지나도록, 학력고사 때 자신이 영어에서 몇 개 틀렸고, 수학에서 몇 개 틀렸는지를 정확히 기억하고, 끝없이 그 점수 이야기를 반복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제가 잊고 있던 저의 학력고사 점수까지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학력고사 점수를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던 시점이 그에게는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그는 학력고사 이후 더 이상의 자랑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인생의 목표를 거의 다 성취한 그에게는 더 이상 노력할 거리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지요. 다른 친구들이 작은 목표들을 성취해 가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 친구는 나보다 학력고사 점수가 13점이나 적었던 친구인데..." "저 친구는 나보다 35점 적었던 친구인데..."라고 말입니다. 혹시 마음에 드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아직도 기뻐할 많은 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이미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만약 이미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여 가족들이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들었다면, 빨리 그 자리를 떠날 궁리를 하십시오. 거기 오래 머물면, 당신의 인생은 거기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해야 할 깊은 열등감을 내부적 문제라고 한다면, 사회의 시각은 외부적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적 문제는 열심히 실력을 쌓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너무 빠른 성취는 오히려 인간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실력과 관련해서는 이런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 때문에 이제는 어디 가서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사실입니다. 1997년 이후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제가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바로 우리 문화기반의 붕괴입니다. 가뜩이나 부실하던 출판여건은 날로 열악해져 가고, 많은 출판사들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돈이 될만한 책만을 출판할 수밖에 없는 매우 절망적인 여건이 조성되게 되었지요. 물론 그 이전에도 우리 독서환경이 그다지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읽은 만한 책들은 대개 700페이지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우리말로 번역하게 되면 거의 900페이지에 육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한국에서 출판되는 책 한 권이 300페이지 내외임을 생각하면, 최소한 세 권 분량이 되는 셈이지요. 대부분의 전기, 역사, 정치 관련 기본 서적들이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읽을만한 책들은 도대체 번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출판업자들이 그런 모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미국에 와서 많이 놀랐던 것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책의 질은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일단 양에서부터 이렇게 엄청나게 밀리고 있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외국어를 습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절대적 독서량의 부족(또는 독서할 책의 절대적 부족)은 곧바로 절대적 지식의 부족으로 연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안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요? 물론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북한처럼 무지막지한 자립경제를 주장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매일처럼 외국인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장 터키에 물건을 팔러 간 두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한 명은 오직 한국인의 뚝심과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물건을 팔려고 하고, 다른 한 명은 터키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터키인들과 친구가 되려고 합니다. 누가 오랫동안 많은 물건을 팔 수 있을까요? 단기적으로는 뚝심과 추진력이 승리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방법이 바로 이런 식이었지요.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터키에 대해 제대로 된 입문서가 한 권도 없는 겁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영어로 된 책을 통해서라도 터키를 배워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해외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 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무조건 예수천당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역서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책의 선택권을 남에게 맡겨놓은 것과 같습니다. 잘 나가는 번역가 몇 사람의 입맛에 따라 선택된 책들만을 읽게 되는 셈이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여기서 가뜩이나 비정상인 외국어 공부 열풍을 부채질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 목적도 없이, 영어단어를 외우고, 학원에 다니는 것만으로 영어를 잘 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재미가 없으니까요. 외국어 공부에도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터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명한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www.amazon.com)에 들어가 관련 서적을 검색해 보십시오. 그 중 입맛에 맞는 책을 골라 직접 주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실력이 딸린다고요? 그래도, 아무 의미 없이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는 관심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 실력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미국 신문들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매일처럼 올라오는 서평을 검색해 보는 것도 좋은 책을 찾을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학생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냐고요? 불행히도 세계의 많은 대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책을 읽고, 이런 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독일, 영국, 이스라엘, 캐나다, 스웨덴, 심지어는 에스토니아의 친구들까지도 인터넷을 통해 모두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영문판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이미 영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판에 자기 혼자 "나는 00대학교 들어갔네"하고 목에 힘을 주며, 다른 대학에 간 친구들 앞에서만 유난히 많은 영어를 섞어 쓴다고 해서 세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국제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기독대학생에게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 신문들은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십들과 검찰 수사 뒷이야기에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국제부 기자들도 고작 외국신문에 실린 기사들을 번역해서 알리는 수준에 그칩니다. 그나마, 국제관련 기사들은 늘 뒷전으로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니 세계의 많은 대학생들이 열을 올려가며 토론하고 있는 커드(Kurd)족 문제에 대해 우리 학생들은 도대체 뭐가 뭔지 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코소보(Kosovo)에서 죽어가고 있는 무고한 양민들에 대해서도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넘어갑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앞으로 100년이 흘러도 우리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학 4년을 보낸 후, 국제시장에 내던져진 우리의 운명은 참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좀 더 멀리 바라보고 좀 더 많이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치 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막바지에 달하고 있을 때, 일본 외교관인 스기하라 셈포(Sempo Sugihara)는 독일 점령하의 리투아니아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유태인들에게 일본통과비자를 발급함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구한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감행한 이런 모험으로 인해, 외교관직을 박탈당하기는 했지만, 40여 년이 흐른 후 그는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열방 중의 의인"으로 선정되어 오스카 쉰들러와 동일한 반열에 올랐습니다. 실제로 그가 구한 유태인 수는, 오스카 쉰들러가 구한 수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범한 그 많은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만은 좋은 이웃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스웨덴 외교관으로 비슷한 일에 생명을 걸었던 라울 왈렌버그(Raoul Wallenberg)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역사학자들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왈렌버그 앞에서는 고개를 숙입니다. 대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편안히 잠자던 수 억 기독교인들의 명예는 그와 같은 한두 사람에 의해 겨우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우리 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되고자 꿈꾸는 대학생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세계를 향해 눈을 드십시오.

학교 공부할 것도 많은데 어떻게 그런 다른 분야에까지 관심을 갖느냐고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자신의 하루 시간 사용량을 잘 따져 보기 바랍니다. 저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공부할 양이 엄청나게 많을 때는 오히려 매일 아침 성경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는데 반해, 시간이 남아돌 때는 기도도, 말씀도 멀리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결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밖에 대학시절 중에 좋은 스승을 만나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여기서 스승은 꼭 대학교수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배일 수도 있고 목사님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저의 큰바위 얼굴이 될만한 많은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변호하기 위해서, 낡아빠진 서류가방을 들고, 저소득층 거주지를 찾아다니는 기독인 변호사"의 모습을 눈에 선히 그려지게 만드셨던 법과대학의 김 교수님은 내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제대로 된 기독인 세 사람만 있어도 법조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던 그 분의 이야기는 진로문제로 고민하던 저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분 한마디에 속아서 내 인생이 이 모양(?)이 되었어"라고 미소짓게 됩니다. 대학시절 내내 학문하는 기독청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배 김 판사님이나 송 변호사님도 그런 스승 중의 하나이고, 대학은 달랐지만 법신학에의 눈을 열어준 친구 진 전도사도 역시 나의 스승입니다. 대학 시절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길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소속 대학과 전공이 달라도 상관 없습니다. 어디엔가 훌륭한 스승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냥 찾아가십시오. 편지를 써도 좋습니다. 의외로 여러분이 놀랄 정도로 반갑게 맞아주는 그 분들의 모습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책 읽고, 공부하고, 교회 활동하고, 좋은 스승들과 교류하는 사람에게는 대학 등급으로 고민할 시간이 없습니다. 00대학이라는 학교 이름 안에 자기를 가두어 둘 여유도 없습니다. 개인의 출세를 위해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도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공부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이 하루 5시간은 동아리 방에서 놀고, 나머지 3시간을 연애하는데 쓰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출세욕에 불타는 동료들을 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기독 청년은 공부를 해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합니다. "공부하다 죽으면 그것도 순교"라는 말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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