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유 가격이 1년 사이에 배가 올랐습니다. 그 배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고유가 시대의 경제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요.

▲ 궁극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유가 상승의 원인은 중국, 인도 등 고성장에 힘 입은 수요 증가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멕시코 등 일부 산유국의 생산설비 노후화, 그리고 전 세계적인 정유시설의 부족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물시장의 발달로 투기적 요소가 개입되어 실제 필요한 것보다도 가격이 더 오르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유가에 대한 단기대책은 석유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및 소비 전반을 줄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경기하강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지요.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는 것은 환경에도 좋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 고유가가 지속된다는 주장과 하반기나 내년에 가면 10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는데요.

▲ 계속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격이 높아지면 채산성 없던 유전도 개발하게 되고, 채굴이나 정유시설에 대한 투자도 늘어납니다. 그렇게 하여 중장기적으로는 공급이 늘고, 그에 따라 어느 점에 이르면 가격이 안정이 됩니다. 그러나 공급 능력의 증가가 얼마나 빨리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고, 이에 더해 투기에 의한 가격상승분이 얼마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어디까지 유가가 다시 떨어질지를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 고유가 시대의 대응과 관련해 에너지 효율화와 에너지 절약,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이 영국에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우리가 채택하면 좋은 것이 있는지요.

▲ 영국은 에너지 효율화를 위하여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만, 모범사례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북구권 나라들이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사례들은 모르겠습니다. 영국 등 유럽 나라들의 취약계층 지원은 광범위한 복지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간다고 바로 대응정책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 겨울이 되면 특히 빈곤층 노인들에게 난방연료에 대한 보조를 늘리는 등 수단을 취할 것입니다.

--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경제와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하도 금융기법이 발달하다 보니, 서브 프라임 채권을 조각 내어 여기저기 끼워 팔았고, 그 때문에 서브 프라임 채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거시경제는 심리적 요소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더 예측하기가 힘들지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분간 미국 경기는 지금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가 어려워지면, 대미국 수출 의존도가 큰 중국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우리의 첫째 수출시장인 중국과 셋째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중국은 자산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어서, 특히 미국에 대한 수출 하락으로 실물경기가 꺼지기 시작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이미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경기는 후퇴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하에서 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어떤 정책으로 대응해야 합니까.

▲ 지금과 같이 외부에서 충격이 오면 물가를 관리할 방책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개별 품목의 물가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 그들의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고유가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 고환율 정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고환율 정책을 통해 원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수입 물가는 오르지만 수출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금 국제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더 고환율 정책을 써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워낙 외부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커서 고환율 정책을 쓰면 수입물가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민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은 무역적자가 좀 나도 환율을 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도 국제수지 적자가 너무 커지면 또 방향을 바꿔야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현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물가를 잡는 것이 지상의 과제는 아닙니다. 물가를 잡으려고 경기를 냉각시키면, 그 과정에서 도산하는 기업도 나오고 실업자도 나옵니다. 물가가 조금 낮아지면 전 국민이 조금씩 덕을 보겠지만, 그 과정에서 큰 손해를 보는 일부의 사람들이 나온다는 말이지요. 물가를 잡기 위해 얼마만큼의 기업파산과 노동자 실업을 감수해야 하는가는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물가와 성장 중 무조건 한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보십니까.

▲ 사실 일시적인 물가상승이나 경기침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우리 경제의 체질이 상당히 허약해 졌다는 것입니다.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기업부채는 줄었지만,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늘어, 국민의 일상생활이 거시경제지표의 변동에 더 민감해졌습니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늘려 놓은 정부부채도 만만치 않아 만일 경제가 위기 상황에 빠지면 재정정책을 통해 그에 대응하는데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더 제약이 큽니다.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도 아직 거품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거품이 천천히 빠지면 괜찮지만, 지금과 같이 급격히 빠지면 후유증이 매우 클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는,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투자가 부진하여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 FTA에 반대입장을 피력해오셨습니다만 FTA를 피할 수 없다면 어떤 대응과 준비가 필요합니까.

FTA를 피할 수 없다는 ’신화’부터 깨야 합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해온 것과는 달리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는 중동, 중미 등 미국에 매달리지 않으면 살기 힘든 나라들을 제외하면 호주, 싱가포르 정도입니다. FTA가 ’대세’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대세’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한-미, 한-EU 등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은 진정한 자유무역도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과 FTA를 맺어 미국 쇠고기와 자동차를 더 수입한다면, 호주 쇠고기와 일본 차에 대해 차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무역주의자로 유명한 美 콜롬비아 대학 바그와티(Bhagwati) 교수조차도 양자간, 혹은 지역에 국한된 FTA는 진정한 다자적 자유무역질서를 해치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쇠고기문제와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인간 광우병이 가장 먼저 발병했던 영국으로부터 우리가 배우거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 있는지요.

▲ 광우병의 위험성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90년대에 광우병의 원조였던 영국은 그를 극복하기 위해 수십만 마리의 소를 도살하여 태워버리는 극단적 조치를 썼고, 그 이후 인간 광우병의 발병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광우병의 정확한 잠복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광우병의 위험이 큰 것은 아닐지라도,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위험이 낮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을 자극한 것은 쇠고기 자체보다도 정부의 태도라고 봅니다. 정부가 한미 FTA를 조급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해 놓고, 비판 여론이 일자, 자신들의 잘못은 감추고 국민이 무지해서 잘 모르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받아친 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정책의 내용보다도 정책의 추진 방식이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영국에서 광우병이 일어난 것은 대처 정부 때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소에게 먹이는 동물성 사료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규제완화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입니다.

--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 요구되는 국가 지도력은 어떤 것입니까.

▲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된 저성장과 양극화, 그리고 계급구조의 고착으로 어느 때보다도 잠재적 갈등 수위가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군림하는 스타일로 통치를 하면 갈등이 더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불순분자’나 무식한 사람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남의 의견을 겸허히 듣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 신자유주의 여파로 빈부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님이 언급하신 사회적 대타협은 더욱 어렵지 않겠습니까.

▲ 사회적 대타협을 하자고 하는 이유는 바로 양극화와 그에 따른 갈등을 줄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년 전 제가 사회적 대타협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비해,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사회적 대타협의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상황이 심각할 때 도리어 큰 타협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1938년 사회적 대타협으로 유명한 스웨덴도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파업율이 가장 높은, 갈등의 골이 깊은 사회였습니다.

-- 저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 지금 현재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만, 이런 저런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학술서적도 생각하고 있고,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이 워낙 묘한 물건이어서, 다음 번 책을 언제 정확히 어떤 형태로 쓰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시장의 입장에서는 신간이 곧 나옵니다. 2004년 미국 덴버대학의 아일린 그레이블 (Ilene Grabel) 교수와 같이 썼던 ’발전을 다시 요구한다’(Reclaiming Development)라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곧 나올 예정입니다. 이 책은, 그 부제인 ’대안적인 정책 지침서’(An Alternative Policy Manual)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발도상국 정책입안자들에게 주요 분야에 있어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한계를 설명하고,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적 정책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를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 장하준 교수는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90년 10월 만 27세의 나이로 이 대학교수가 됐다. 2002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의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꼬집으면서, 그들의 위선적인 세계화를 고발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출간했다. 이어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뮈르달상’을 한국인 처음으로 받았으며, 2005년에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최연소로 수상,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 경제’ 등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과거의
"잘못된" 경제체제를 고치려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 (특히 "관치금융")과 재벌의 독점적 지배라는 반(反)시장적인 요소들로 특징지어지는 과거의 경제체제를 고치기 위해 우리는 자본시장 개방, 무역 자유화,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각종 규제완화 (특히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 완화), 금융규제 완화, 기업지배구조의 개조 등 많은 변화를 시도하여 왔다. 이러한 "개혁" 정책들은 시장원리를 확산시켜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고 재벌들이 독식(獨食)을 막아 경제의 공정성을 높이고 분배를 개선할 것이라고 기대되었다.

외환 위기 이후 몇 년은 일견 이러한 정책들이 효과를 거두는 듯이 보였다. 1998년의 위기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더 빨리 탈출하였다. 재계 2-3위를 다투던 대우 그룹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비효율적인 재벌들이 해체되었고, 살아남은 재벌들은 부채비율을 낮추고 계열기업 수를 축소하였다. 또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주주중심의 경영에 눈을 뜨면서 최근 몇 년간은 사상 최대의 경상이윤율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3년에 들어 지난 몇 년간 경기회복을 주도해 온 소비의 증가가 신용불량자의 누적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면서 우리 경제는 눈에 띄게 감속(減速)을 하게 되었다. 많은 보수논객들은 이것이 마침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고 반기업적 정서를 고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현재 경제의 문제의 핵심인 투자의 저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은 1990년-1997년에 평균 37.1%이었으나 1998년-2002년 사이에는 2/3 수준인 평균 25.9%로 떨어졌다. 심한 경제 수축을 경험한 1998년을제외해도 평균 27.1%의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번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신용카드업 자유화 조치를 취하여 결국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게 된 것도 투자가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비율이 OECD 최고 수준에 달하게 될 정도로 노동시장을 유연화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은 증가하고 빈곤층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 닥쳐온 것도 결국은 투자가 되지 않아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 내부 인사들을 비롯하여, 소위 "개혁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의 많은 수는 현재 경제의 문제가 과도기적 현상이며, 무엇보다도 "개혁"이 불충분하게 추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문제는 시장원리가 충분히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시장을 더 개방하고,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며, 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하면 경제의 활력이 회복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개혁적" 인사들의 "개혁불충분론"은 보수논객들의 "노무현 정부 책임론" 만큼 틀린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경제문제의 근원은 1997년 환란 이후 추구된 개혁 정책들이 불충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책의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를 하나 하나 짚어 보자.

 

재벌개혁의 문제점

현재 재벌개혁은 재벌이라는 구조가 과다한 차입 경영, 무분별한 다각화, 피라미드식 출자 등의 "부당한" 수단을 통한 "가공자본"의 창출 등에 기초한 기형적인 기업구조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형적 구조 때문에 우리 기업의 효율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석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재벌 기업들이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에 의존하여 성장해 온 주된 원인은, 흔히 생각하는 대로 소유권 약화를 꺼린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동원을 기피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역사가 일천한 관계로 기업내부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율적으로 따져볼 때,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 기업들 보다도 주식시장을 통해 더 많은 자금을 동원했는데, 1970∼1980년대에 걸쳐 우리 기업들이 신주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총자금의 13.4%로 미국(-4.9%), 독일(2.3%), 일본(3.9%), 영국(7%)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이다.

또 고도의 차입경영은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흔히들 350∼400%라는 우리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병적으로 높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일본도 고도성장기에는 500%대의 부채비율을 기록했다. 또 우리 나라의 부채비율이 366%였던 1980년대에 스웨덴 (555%), 노르웨이 (538%), 핀란드 (492%) 등의 부채비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았으며, 프랑스 (361%), 이탈리아 (307%) 등도 우리와 유사한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시기에 부채비율이 높은 이들 나라들이 부채비율이 낮은 영국 (148%)이나 미국 (179%) 보다 경제가 훨씬 더 잘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브라질(56%), 멕시코(82%) 등은 미국이나 영국보다도 부채비율이 월등히 낮았음에도 경제가 잘 안되었다. 부채비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들이다.

다각화의 문제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은 "전문기업"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기업의 다각화는 위험을 분산하여 적극적 투자를 가능하게 하고 기존 계열사로부터의 보조를 통해 신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돕는 장점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전문화만 추구하였다면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현재 우리의 주축산업들의 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재벌들이 중소기업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다각화 자체를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피라미드형 출자 등을 통한 "가공자본"의 창조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이러한 "가공자본"은 내부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가공자본"이라는 개념을 "거짓으로 만들어 낸 자본"의 의미로 해석해서 마치 허구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자본인가 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자본은 궁극적으로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불환지폐, 은행신용, 금융파생상품 등 지금은 당연히 "자본"으로통용되는 많은 것들이 자본주의 초기에는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것들이 자본으로 인정 받게 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법과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하는 "선진 금융기법"의 핵심도 "더 효율적인 가공자본의 창조"이다. 따라서, 계열사 출자 시 "실제로 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특히 출자한 회사가 피출자사의 주식을 인수하고 그에 따라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에서, 재벌 계열사간 출자만을 "가공자본"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가공된 자본이 문제가 있는가 아닌가는, 가공성 자체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재벌들을 비롯한 우리 기업들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이 높은 이자비용 때문에 경상이윤율이 국제적 기준에 비하여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영업이익율 등 다른 기준을 사용하면 우리나라 기업의 효율성은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편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1988-1997년 기간 동안 한국 제조업체의 평균 매출액대비 경상이익률은 2.1%로 대만의4.5%, 미국의 4.2%, 일본의 3.3%에 비해 낮지만, 이자 등 금융비용을 제외한 매출액대비 영업이익률은 7%로 미국의 6.6%, 대만의 6.5%, 일본의3.3%에 비해 높다. 다시 말하여 기업 "효율성"을 측정하는 방식에 따라 재벌의 효율성에 대한 판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최근 재벌의 경상이윤율이 사상최고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적으로는 투자와 성장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2년에는 제조업체의 경상이익률은 4.7%에 이르러 1988년-1997년 평균인 2.1%의 두 배가 넘었고, 현금예금은 46.6조로 1991년-1997년 평균인 20조 5천억의 2.3배나 되었다. 일견 유사 이래 최대의 "건전 경영"이다. 그러나 제조업 설비투자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과거의 3분의2 수준으로 떨어졌다 (1991년-1997년 평균 31조 5천억에서 1998년-2002년 평균 20조 6천억으로). 2002년의 설비투자는 20조 7천억원으로 1991년의 22조 9천억원보다도 낮다. 이 기간 동안 국민총생산이 (명목금액 기준) 2.7배나 늘었음을 감안하면 2002년의 설비투자는사실상 1991년의 3분의1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통상적인 기준으로 본 기업의 효율성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전체가 잘 되지 않고 있다면, 현재 통용되는 기준 (특히 경상이윤율)이 경제전체에 대한 기업의 기여를 판단하는 데에는 적절치 않은 기준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기업금융의 고갈

재벌개혁과 함께 추진된 금융개혁은 금융기관의 안정성과 수익성 제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기업금융을 극도로 회피하게 되었다.

1996-97년 우리 기업들은 (은행 및 비은행) 금융기관 차입, 주식 발행,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118조원의 외부금융을 조달하였는데, 1998-2001년에는 이것이 불과 31% 수준인 49.4조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금융기관 차입은 1996-7년 연평균 38.3조원에서 1998-2001년 연평균 -0.2조원으로 완전 증발하였다. 은행대출금 중 기업대출의 비율은 1991년 88.5%, 1995년 77%에서 2002년에는 45.3%까지 떨어졌다.

이는 결국 대규모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여타 기업들은 거의 외부자금을 동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발행을 통해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대기업들도 외국인소유 주식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투자에 점점 더 제한을 받게 된다. 외국인 주식소유자는 주로 투자신탁이나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인데, 이들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배당금이나 주가차액 이득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장기성 대규모 투자를 싫어하는 경향이 높다. 결과는 위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은 투자율의 급격한 저하였다.

그 결과 이제 우리 기업들은 노후화된 설비의 개체마저도 못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991-97년 우리 제조업체의 유형자산 (기계, 건물 등)은 연평균 12%가량 증가하였으나, 위기 이후 (1998-2002년)에는 연평균 3%가량의 증가에 그쳤다. 그나마 이것도 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갑자기 낮추라는 정부정책 때문에 기업들이 자산재평가를 통해 자산가치를 "인위적"으로 늘렸기 때문이며, 그 효과를 배제하면 우리 제조업체의 유형자산은 이 기간 연평균 2%가량 감소하였다.

2002년 들어 은행 차입이 전년 3조에서 42조로 급격히 늘어난 데에 힘입어 우리 기업의 외부자금 조달은 86조로 96-7년의 73%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기업금융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은 도리어 2001년의 27.1%에서 26%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2001년의 3조에 비하면 무려 14배, 1996-7년의 16-7조와 비교해도 2배 반 가량 되는 막대한 은행 대출금들이 설비등 생산적인 곳에 투자되지 않고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 떠돌고 있는 막대한 유휴자금의 많은 부분이 바로 2002년 폭발한 은행의 "영양가 없는 기업대출"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 신용불량과 부동산 과열 등의 문제도 바로 기업금융의 붕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은행들이 수익성과 안전성을 추구하면서 위험성이 높은 기업금융을 피하고 소비자 금융에 집중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과당경쟁이 생겼고, 이에 따라 소비자 대출이 급증하면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었다. 또한 기업 대출이 줄어들어 유휴자금이 많이 생기면서 이것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어 부동산 경기의 과열에 일조를 하였던 것이다.

 

자본시장 개방의 문제

지난 봄 소버린의 SK㈜ 주식 매집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자본의 국적성 논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유화 된 금융기관들의 민영화를 계기로 더욱 가열되고 있다.

최근 현대투자증권의 미국계 자본에 대한 매각이 결정되고, 내년 매각 예정인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도 외국계가 인수 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투신업계의 외국자본에 의한 지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또 외환위기 이후, 제일은행을 필두로 하여 외환은행, 한미은행 등이 외국자본에 넘어가고, 국민은행, 하나은행의 경우에도 외국자본의 비중이 커지면서, 우리나라의 외국자본에 의한 은행 지배는 아시아 최고이며 OECD에서도 최상위권에 드는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이에 더해 내년으로 예정된 우리금융지주회사를 인수할 마땅한 국내자본이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은행산업의 외국자본 점령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최근 우리금융지주회사의 민영화에 대비하여 국내자본으로 사모펀드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최근 발간된 한국은행 보고서는 국내에 독자적인 금융자본이 형성될 때까지 은행의 민영화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러한 걱정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는 "감상적인 민족주의"에 기초한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60년대식 종속이론의 부활"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감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증적 자료에 기초한 이야기이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이제 다국적(多國籍) 기업을 넘어 초국적(超國籍) 기업이 되었다는 선진국의 대기업들의 경우에도, 장기전략 수립, 연구개발, 브랜드 관리, 고부가가치 상품의 생산 등 핵심 기능은 아직도 거의 전부가 본국에서 행해지고 있다. 최고 경영진도 대부분이 본국인이다. 1998년 독일의 다임러-벤츠 그룹이 미국의 크라이슬러를 인수했을 때 처음에는 양사의 동반자적 결합이라며 이사회에 독일인-미국인 동수를 내세웠지만, 합병 후 5년이 지난 지금은 이사 11명 중에 미국인이 1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은 기업금융을 기피하고 손쉬운 가계금융에 치중하여 우리 경제의 활력을 해쳐 왔다. 또 제조업체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 주주들은 배당을 높이라는 압력을 강하게 행사하여, 기업이 투자를 위해 이윤을 유보할 수 있는 여지를 점점 줄여 왔다.

이렇게 외국자본의 이익이 국민경제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겉으로는 자본에 국적이 없다고 외치는 선진국들도 실제로는 공식적,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국내자본을 보호해 온 것이다.

미국도 2차 대전까지는 자본 수입국으로서 외국인 투자를 엄격히 제한하였다. 연안(沿岸)해운업에 외국인 투자를 금지하였고, 외국인의 토지소유, 채광권, 벌목권 등을 엄격히 규제하였다. 특히 은행의 경우에는 미국에 영주하지 않는 외국인 주주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않았고 외국인이 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하였다. 제조업체의 경우는 외국인 고용을 금지하여 외국기업을 차별하였다. 뉴욕 주정부는 뉴욕시를 런던에 맞서는 금융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1880년대부터 외국은행의 업무를 제약하고 1914년에는 아예외국은행의 지점설치를 금지하였다.

지금도 독일,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등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주요 대기업의 주식을 정부나 정부관련 금융기관이 일정 부분 소유하여 안정지분 확보를 도와주거나, 주식신탁제도나 차등주식제도 등을 통하여 비핵심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 합병을 규제하고 있다.

핀란드 같은 나라는 1930년대부터 1993년 유럽연합 (EU) 가입 때까지 외국인 소유지분이 20%를 넘는 모든 기업을 "위험 기업" (dangerous enterprise)로 공식 지정하여 국가가 특별관리를 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국영기업을 민영화 할 때 정부가 소유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나 기관투자가들에게 일정한 몫의 주식을 넘겨 외국자본으로부터 주요기업을 보호하여 왔다. 일본은 주거래 은행, 보험회사, 거래기업, 계열기업 등이 조금씩 지분을 가지는 형태로 50-70%를 안정지분화하여 외국자본을 견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자본의 국적성이 중요함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러나 자본의 국적성에 대한 논의가 또 다른 극단으로 흘러 국내자본은 무조건 좋다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자본이 얼마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장기적 투자를 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를 결정하는 것은 자본의 국적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의 국적 이외에 그 성격을 결정하는 요인 중에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그 자본이 산업자본인가 금융자본인가 하는 것이다. 같은 국내자본이라고 해도, 설비와 기술로 승부해야 하는 산업자본은 유동성이 높은 금융자본보다 더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경향이 높다. 둘째, 금융자본의 경우에도 어떤 금융자본인가가 중요하다. 같은 금융자본이라고 해도 단기수익을 주된 목표로 하는 펀드형 자본은 은행자본에 비해 국민경제에 득이 덜 될 확률이 높다. 셋째,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상호관계도 중요하다. 같은 은행자본이라도 금융제도나 규제에 따라 산업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장기적 기업금융을 통해 투자를 촉진할 수도 있고, 기업금융을 회피하면서 고수익의 소비자 금융에만 치중하여 투자를 저해할 수도 있다.

물론 자본의 "종류"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은 확률론적인 이야기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경영자가 스톡옵션을 통한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단기적으로 주가(株價)를 부양을 할 인센티브가 높거나, 적대적 M&A가 활발하여 주가(株價) 유지가 중요해지는 경우에는, 산업자본도 단기주의로 흐르게 된다. 반대로 펀드라고 해도 꼭 단기적인 관점만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에 민감한 펀드 중에는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환경친화성을 보고 투자하는 펀드도 있다. 또 다른 예로, 국민연기금이나 최근 정부에서 구상하고 있는 한국투자공사 등 공공성이 있는 펀드라면, 정부정책에 따라서는 은행보다 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관계에 있어서도, 제도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독일, 일본 등에서와 같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면 장기적 투자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재벌이 금융기관을 인수하여 그것을 사금고 (私金庫)화 할 위험을 고려하여 재벌의 금융기관, 특히 은행소유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의 은행 소유지분 한도를 지금보다 높이더라도, 재벌이 많은 지분을 가진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을 금지한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부작용을 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이나 일본처럼 은행이 기업주식을 본격적으로 소유한다면 은행과 재벌간의 상호견제도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제도를 정비하여 장기적 투자를 할 수 있는 자본을 육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있어 자본의 국적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자본이 산업자본인가, 금융자본인가, 그리고 금융자본도 어떠한 형태의 금융자본인가, 또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등, 고려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주주자본주의의 문제

무엇보다도 현재 개혁 정책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 궁극적 목표가 주주 자본주의 (shareholder capitalism)라는 점이다.

주주자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 기업은 주주의 소유물이고 따라서 주주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둘째, 주주의 이익이란 주가로 표현되는 기업가치의 극대화를 말한다. 셋째, 이러한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서는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성화 되어 무능한 경영자를 갈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기업가치의 극대화는 곧 사회적 이익의 극대화이다.

일견 흠 잡을 데 없는 논리 체계이다. 주인인 주주를 위해 기업이 경영되고 그 결과는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는데,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는 이론적, 실증적으로 문제가 많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는 것은 법적인 해석일 뿐이고, 실제로 영미계 나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주주란 직접금융의 조달자로서 경영진, 노동자, 채권자, 하청업체, 지역사회 등 여러 이해 당사자 (stakeholder) 집단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주들은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따른 이익보다는 단기적 배당이나 주가차액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만을 따르는 것이 기업의 장기적 발전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기업의 가치는 주식시장이 가장 잘 판단한다는 가정도 문제가 많다. 18세기 초 영국의 남해회사 (South Sea Company) 에 대한 투기부터 시작하여 20세기 말 세계를 휩쓴 인터넷 거품까지 지난 300여년의 자본주의의 역사는 주식시장이 기업가치의 판단에 있어 얼마나 비효율적일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기업의 실적이 분기별로 평가되는 주식시장의 속성 상 "단기주의" (short-termism)의 만연은 불가피하고, 이는 설비와 기술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통한 경영을 어렵게 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영국에서 주식시장의 단기주의로 인한 기업경쟁력의 저하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또한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성화되어야 기업경영의 효율성이 유지된다는 주장도 근거가 희박하다. 일련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어떤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되는가는 대부분의 경우 그 효율성보다는 그 덩치나 자금 동원력에 의해 결정된다. 인수-합병 이후에 기업의 효율성이 증가한다는 증거도 없다. 대부분의 비영미계 선진국들이 지난 50여년간 적대적 인수-합병 한 건 없이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연 주주이익의 추구가 국민경제 전체에 득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주주자본주의는 글자 그대로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체제이며, 따라서 주식시장이 교과서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주식시장이 단기적 효율성도 담보하지 못하고 더욱이 장기적인 투자를 어렵게 한다면 주주의 이익은 국민경제 전체의 이익과 배치될 확률이 높다.

최근 주주자본주의를 해야 경제가 잘 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지만, 주주자본주의를 추구한 영국이나 미국은 지난 반 세기 동안 경제 "열등생"이었다. 미국은 2차 대전 직후 경제적으로 단연 1위 국가였지만, 그 상대적 지위가 계속 기울어져 왔다. 1990년대 말 소위 미국 경제의 "부활"도 주식시장의 거품에 힘 입은 반짝 경기에 불과했다. 주주자본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은 유럽 연합 15개국 중 밑에서 5등 안에 드는 2류 국가로 전락하였다.

우리 나라도 주주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기업의 장기 투자가 어려워지고 기업들이 장기적 목표의 추구보다는 경영권 방어에 더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아직도 설비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절실한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기업의 경영에 있어 주주의 이익뿐 아니라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 나아가 국민경제의 이익이 적절히 고려되는 체제를 건설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진정으로 주주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주주자본주의에 의해 기업과 경제의 장기적 발전이 제약된다면 주주들도 결국은 손해이기 때문이다.

 

재벌개혁의 대안

그렇다면 현재 추구되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재벌체제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주의 이익만이 아닌 국민경제의 이익을 위해 그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억제하는 것이다.

재벌체제의 장점은 위에서도 말 한 대로 경영권의 중앙집중, 대규모 자금 동원력, 위험 분산능력 등을 통해 적극적인 투자와 신산업에로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위험도 큰 체제이다. 계열기업간의 상호보조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없어도 장기적으로는 전망있는 산업을 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도 채산성이 없는 기업을 계열사간 보조를 통해 지탱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부실을 장기화 하고 계열사의 연쇄부실을 가져 올 수 있다. 총수에로의 권한이 집중되어 대규모 투자를 과감, 신속히 할 수 있는 커다란 강점이 있지만, 이 투자가 실패 할 경우 그 대가가 크다.

이러한 재벌체제의 단점을 막기 위해서는 현재 개혁에서 추진하는 대로 회계의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 제도의 도입, 소액주주 권한의 강화 등을 통한 외부감시 기능을 제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종업원, 거래은행, 하청업체 등 기업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이해당사자들에 의한 내부감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많은 주주들은 사실상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사정을 잘 모르는 국외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총수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뿐 아니라 주주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합치할 수 있게 조정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들은 지금까지 국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보조와 보호 하에 성장하였으며, 따라서 재벌 기업들은 총수가족의 것도 아니지만 주주들만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재벌총수를 통제한다면 그것은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이어야지, 그것이 주주들만의 이익을 위해서면 곤란하다.

또 재벌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이 꼭 기존의 총수가족의 지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서와 같이 가족소유가 없이도 주거래 은행제도, 관련사간 상호 주식소유 등을 통해 재벌체제의 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정지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수가족에 의한 통제를 단시간 내에 없애려 하면 재벌구조 자체가 붕괴되고 국민경제의 외국자본에 의한 접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들은 역사적으로 국민들에 대해 자신들이 진 빚을 인정하고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며, 국민들은 이러한 전제 하에 재벌들이 안정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도와주는 정치적인 대타협이 필요하다.

재벌들의 안정지분 확보를 위해서는 출자총액 제한을 완화하고, 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완화해 주며, 재벌들 사이의 상호출자를 시도하고, 일본과 같이 관련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우호지분 소유를 장려하며, 국민연기금의 사용으로 "국민 지분"을 만들어 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대가로 재벌들은 주주자본주의 이론을 통해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사회적 간섭을 피하려는 구태를 버리고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산업정책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재벌들이 큰 투자 결정을 할 때 정부는 국민경제적 입장에서 이를 감시, 조정해야 하는데, 이는 부채비율 규제 등 주주입장에서만 본 금융적인 총량 규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성장, 고용, 수출 등 국민 경제적 파급효과를 다각적으로 고려한 산업정책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주, 그 외의 이해당사자, 사외이사, 시민단체 등 위에서 말한 여러 집단들이 정부를 견제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산업정책

산업정책의 부활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 과거에는 경제가 단순하여 정부의 개입이 쉬웠지만 경제가 복잡화 된 상태에서 정부개입은 시장의 효율을 저해한다는 것이 한 이유이고, 또 한 이유는 국가 개입은 필연적으로 권력남용과 정경유착 등의 문제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되어 민간부문의 분석력과 집행력이 증대되면서 과거식의 직접적 개입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3-40년씩 뒤떨어져 있는 중진국으로 아직도 정부가 적극적 개입을 할 단계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 미국을 위시한 지금 선진국들도 거의 모두 과거에 자신들이 최고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모두 정부의 보호와 보조 속에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흔히 영국을 자유무역의 시조로 알고 있지만, 영국이야말로 유치산업 보호를 발명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721년에는 영국최초의 수상인 로버트 월포올 (Robert Walpole)의 지도 하에 본격적으로 국가주도 산업화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이 쓴 산업 및 무역 정책은 유치산업에 대한 보호관세 및 보조금 지급, 수출품 원재료에 관한 관세 환급, 수출보조금 지급 등 20세기 후반 일본이나 한국이 쓴 정책과 매우 유사했다.

미국의 경우는 한 술 더 뜨는데, 유치산업보호론을 세계 최초로 이론화한 사람은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 (Friedrich List)가 아니라, 지금도 10불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튼 (Alexander Hamilton)이었다. 해밀턴의 이론은 그의 생전에는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농산물을 수출하고 값싸고 질 좋은 영국의 공산품을 수입하고 싶어했던 남부 지주들의 저항을 받아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지만, 1816년 영-미 전쟁 종식 후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해밀턴의 이론은 이후 미국이 세계 최고 제조업국가로서 지위를 완전히 굳힌 1945년까지 130여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루었는데, 이 기간 동안 미국은 35-55%에 달하는 세계 최고율의 제조업 관세를 유지하며 자국산업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경제가 복잡해진다고 정부개입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민간기업은 그 성질상 자신들의 이익만을 보고 행동하므로 정부가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하는 정책을 써야 할 필요는 경제발전 단계에 상관없이 상존하는 것이다. 경제발전 단계에 따라 개입의 형태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개입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대부분 선진국 정부들은 아직도 주요기업 일정지분의 국가소유, 첨단산업에 대한 연구비 보조, 지역개발 기금을 통한 특정산업의 간접지원, 약소국에 대한 통상압력의 행사, 자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에 대한 비공식적인 압력을 통한 고용의 창출이나 하청산업의 육성 등 여러 방법으로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유시장 경제의 보루를 자처하는 미국도 연구개발비의 60-70%를 연방정부가 보조하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연구개발비 중 정부가 부담하는 부분이 20%가량에 지나지 않음) 산업 발전의 방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보이는 우위는 항공, 컴퓨터, 반도체 산업 등의 경우에는 막대한 국방산업 연구지원, 제약이나 생명공학의 경우에는 국립보건연구원 (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을 통한 적극적인 연구지원에 힘 입은 바 크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개입이 꼭 권력의 남용이나 정경유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프랑스, 노르웨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민주주의가 발달되고 부패도 적은 선진국들이 지난 50여년간 은행의 국가소유, 선별적 산업정책, 주요산업의 국유화, 외국인투자의 엄격한 제한 등 소위 "한국식" 개입주의적 정책을 추구해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러한 예들은 권력 남용과 정경유착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맺는 말

1997년 환란 이후 "개혁"을 추구해 온 사람들 중의 많은 수는, 그것이 우리 경제를 더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 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정책이 추진된 지 6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이러한 바람은 잘 못된 것이었다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개혁" 정책을 통한 시장질서의 확대는 바라던 대로 효율성과 공평성을 증대시키기는커녕, 우리 경제의 장기적 활력을 파괴하고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부 개혁론자들은 이러한 결과가 새 체제로의 이행에 따르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것이 정부의 "개혁의지 부족"에 따른 개혁의 불충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가 설명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문제들은 우리 "개혁" 아젠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의 체제의 필연적 결과이다.

이제 우리 경제의 "개혁"의 방향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 볼 때이다.

경제문제에 있어서 부딪히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파이를 키울 것이냐

나눌 것이냐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파이를 나눠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파이를 키우는데 관심이 많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복지 위해 세금 더 낼것 ” 18%뿐


“더 낮추자”43%로 ‘이중적’
성장우선:분배중시 7:3 비율응답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복지국가’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태도가 다소 이중적임을 알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복지 혜택은 누리고 싶지만, 그에 따르는 부담을 내가 짊어지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복지제도를 지탱할 핵심 재원인 세금 부담에 대해 여러 차원에서 물은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부자와 고소득자가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답했다. 나이·성별·직업·정치성향 등 변수별로도 의미있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부자와 고소득자의 세금을 낮추자는 의견은 1%도 안된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게 절대 다수의 의견인 셈이다.

그런데 ‘복지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는지 물었더니, 답변이 크게 다르게 나왔다. 더 내겠다는 응답자는 5명에 1명꼴도 안되는 18.6%뿐이다. 오히려 ‘세금을 낮추자’는 의견이 42.9%에 이르렀고, 현 수준을 유지하자는 쪽도 37.1%였다. 변수별로는, 민주노동당 지지자,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화이트칼라, 대졸 이상 학력층 등에서 ‘세금을 올리자’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이들 층에서도 절대 수치는 ‘낮추자’가 높았다. 대체로 세금을 지금보다 더 낼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의 담세율(중앙정부 기준)은 대략 20% 안팎이다. 선진국의 30~40% 수준에 훨씬 못미친다.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3분의 1 수준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코스타리카 등보다도 낮다는 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지적이다.

‘경제성장’과 ‘분배’ 를 제시하고 둘 가운데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 물은 결과, 7대 3의 비율로 ‘경제성장’이 우선해야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변수별로는 대학생 응답자만 유일하게 분배선호가 50%를 넘었고, 민주노동당 지지자는 양쪽 답변이 비슷했다(51.8 대 48.2%). 이를 ‘성장을 기반으로 한 복지’ 추구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현실 속의 복지국가들이 일반적으로 사회분배를 중시하는 추세와는 차이가 나는 답변이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방한 중이던 스티글리츠 교수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초청해 서울 신라호텔 18층 비즈니스미팅룸에서 한국경제의 진로를 모색해보는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또한 노동과 자본간 대타협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협약과 재벌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역설하며, 제대로 된 정부 규제와 개혁은 ‘친기업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혁신은 중소기업에서 나온다고 지적하고, 한국경제의 새 모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상품, 금융, 노동시장에 나타나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관한 연구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시장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경우 각 경제주체들 사이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자원배분의 왜곡이 나타나며, 시장은 그 자체로 최고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1997년부터 99년까지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로 재직했을 때는 금융·외환위기 국가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및 재정긴축 처방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장하준 교수=한국은 흥미로운 시기에 놓여 있다. 한국의 종전 경제 모델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지나치게 폄하됐고,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새로운 모델을 찾고 있다. 현 시기는 정치적으로 처음으로 중도 내지 중도 좌파 세력이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독특한 상황이다. 새 모델이 절실하다. 물론 우리 나름대로 모델을 모색해야 하겠지만 선진국의 경험 역시 참고하고 싶다. 영미식과 유럽식 경제 모델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스티글리츠 교수=동아시아 금융위기 때 외부에서 제기했던 기존 경제 모델에 대한 비판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런 얘기를 한 어떤 사람들은 동아시아 경제가 실패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문제가 국제통화기금이나 미국 재무부에서 말한 것처럼 근본적으로 심각한 것이었다면 한국의 회복에는 12개월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당시 중요한 문제로 지적된 과다한 부채는 근본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하나의 실수이고, 개선돼야 하는 문제였을 뿐이다. 당시의 한국을 회사에 견주어 말한다면, 최고 재무담당자를 해고하면 될 정도의 상황이었지, 회사를 해체해야 할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영미식 자본주의를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 부적합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심각한 빈부 격차와, 의료보장제도 미비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의 영아 사망률은 자메이카보다 높다. 두번째로, 좀더 좁은 경제적인 맥락에서 90년대에 목도한 문제는, 무엇인가 명백하게 제도적으로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과 상자 안에 썩은 사과 몇 개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썩은 상태였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요 회계법인과 투자은행, 대기업, 뉴욕 증시, 뮤추얼펀드들이 명백하게 비도덕적인 행위에 관련되어 있었다. 또 노동자를 어느날 불필요해졌다고 해고하고, 다음날 사람이 필요해지면 다시 고용한다고 하면 노동자는 당연히 기업에 충성심을 가질 수 없다. 이런 게 한국처럼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나라의 경제에 좋은 제도는 아니라고 본다.

반면 스웨덴 같은 나라의 경제 모델은 상당히 잘 작동해 왔다. 스웨덴의 경우 미국보다 우월한 사회보장제도와 교육제도, 의료제도를 갖추면서 동시에 컴퓨터나 휴대 전화 분야도 발전해 있는 등 신경제 기반이 뛰어나다.

장=미국 경제 성공의 어두운 면을 많은 이들이 보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한국에서 미국식 경제 모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문제점을 간과한 채,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와 정치적 맥락을 갖고 있는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문제 아닌가 싶다.

스=맞다. 미국은 노예제가 폐지된 뒤에도 100여년 동안 흑인이 여전히 2등 시민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던 나라다.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수용한 수준의 빈부 격차는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다. 미국식 경제 제도가 일으키는 또다른 비용은 국민이 생계, 의료문제 등에서 느끼는 불안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이는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미국과 미국식 자본주의를 고찰할 때, 우리는 ‘한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원하는가, 아니면 (한국에도 긍정적 효과를 낼) 미국 자본주의의 특정한 부분을 원하는가’를 물어봐야 한다. 벤처같은 것은 미국식 경제에서 고안된 모델인데 상당히 가치있는 것이고 한국에도 적용 가능한 모델로 보인다.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도 긍정적인 모델이다. 이런 부분은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유럽에는 없는 것들이다.

장=불평등과 불안이 성공적인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한국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득 분배가 잘 된 나라에 속했지만 위기 이후 격차는 벌어졌다. 노동유연성이 높아져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노동자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고,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웃돌고 있다. 사회 갈등의 잠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고, 성장을 갉아먹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적 협약을 찾고 있다. 특히 이는 자본과 노동의 대타협에 기반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스=공감대를 찾기 위한 사회적 협약, 그 기반으로 노동자-자본가 대타협의 아이디어는 매우 가치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해낸다는 것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정하는 것일텐데, 이는 파이 자체를 키운다는 전제 아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합의를 향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럴 때 모든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고, 그런 예를 보여주는 나라도 많다.

사회적 협약에서는 정부 역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과도한 규제’를 얘기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규제’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나쁜 놈’만은 아니다. 인터넷은 누가 만들었나 미국 정부다. 한국에서도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정부가 매우 중요하고 건설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가 변화하고 한국이 다른 발전 단계에 들어섬에 따라 이 역할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최소화되는 방향이 아니라 정부가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타협을 모색하는 데 있어 중심이 돼야 한다.

개도국 자본자유화 비용만 크로 혜택없어
자본유입세 검토‥투기자본엔 세금 높게


장=정부의 역할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한국경제에서 재벌의 역할에 대해서 말해보자. 재벌 역할을 두고 여런 논쟁이 있어왔다. 재벌을 무능력한 공룡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재벌 자신들은 경제를 견인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진실은 이 가운데쯤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스=재벌 문제는 일단 경쟁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재벌은 ‘망하기에는 너무 큰’ 크기를 갖고 있다. 정경유착과 이에 따른 부정부패도 문제다. 기업지배구조에서는 회사의 경영진이 ‘누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두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에서는 회사는 주주의 이익에만 신경쓴다. 반면 유럽식 자본주의는 주주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노동자도 신경쓴다. 나는 유럽의 견해를 지지한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우월하다는 경제이론적 근거나 실증적 증거는 없다.

경영자의 결정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 제도는 이런 면에서 결함이 있다. 주주들은 경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주요 세력이지만 일반적으로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정보가 없기에 주주총회에서 경영진에 강력하게 제제를 가하기 어렵다. 은행도 기업의 활동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으나, 90년대에 미국 은행들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또 하나의 견제 매커니즘은 기업인수·합병인데, 나는 내 저서에서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핵심적인 문제는 기업들이 지배구조를 개선하게 하는 유도장치,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안에도 그런 장치가 존재하지만, 항상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정부가 시장 안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매커니즘을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게 이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경제를 더욱 발전하게 만들 수 있다. 이를 누가 저지하는지 자명하다. 경영진이다. 경영진은 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기에 견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반기업적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된 정부의 규제가 수반하는 개혁은 친기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주로 경영진인데, 그들은 기업에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좋은 것을 주로 이야기한다.

빌게이츠나 록펠러는 반독점이 반기업적이라고 말한다. 반면 나는 더 많은 경쟁이 있었다면 미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더 잘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에 끼워판 익스플로러와 윈도 미디어 플레이어는 넷스케이프와 리얼미디어를 고사시켰다. 이런 독점은 기술혁신을 가로막는다.

재벌이 수십년간 한국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재벌은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고, 이제 중요한 문제는 경제가 균형이 잡혀 있느냐이다.

장= 그렇다면 한국경제가 새 시대에 맞는 균형을 이루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스= 한국 경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전을 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하이테크 분야와 서비스 분야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서비스 분야는 중소기업이 지배적인 분야이고, 이는 결국 중소기업 지원 정책, 중소기업 자본 확보 등의 문제와 연결된다.

하이테크 분야의 연구개발(R&D)에는 대기업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많은 중요한 기술혁신은 중소기업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신약은 중소기업에서 고안돼 대기업에서 시험된다. 대기업에서는 혁신이나 발명이 나오기 어렵다. 대기업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장=오늘날 한국에서는 국내자본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내 기업은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요구받고 있지만, 외국기업은 택스헤이븐(조세피난처) 등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거나 투명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가운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더 일반적으론 개방된 자본시장에서 외환위기를 피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외화를 보유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현재 한국은 1400억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연 1%에 불과한 이자만 받으며 썩혀두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에 따른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정책의 자율성이 침해될 정도로 ‘외국인 투자자’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싫어할지 모른다는 강박 관념은 정부 당국자들을 매우 보수적으로 만들고 있고, 이들이 고안한 거시경제정책은 불안과 불평등, 노동시장 유연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전반적인 추세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스= 외환 보유에 드는 비용은 막대하다. 어떤 나라의 경우 국내총생산의 3%에 이른다. 단순히 외환 시장 방어를 위해 이렇게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외환보유고 문제는 정책 자율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것 이상의 문제다. 본질적으로 자본시장에서 하루하루의 이익을 좆는 자본은 장기성장을 신경써야 하는 한국과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와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런 나라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 비용은 매우 크고, 혜택은 거의 없다. 세계은행도 이제는 개발도상국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가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한국 처지에서는 자본시장 자유화와 관련해서 취할 수 있는 조처에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몇 가지는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자본시장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칠레와 유사한 ‘자본유입세’가 고려될 수 있다. (칠레는 1990년대 초반 외국자본들에 유입 자금의 30%를 1년간 기탁하도록 하고 1년이 지나서 나가면 돌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이를 포기하게 하는 가변예치의무제를 도입했다.) 강한 은행 규제를 통해 외국환 거래를 제한하고, 투기성 대출을 규제하는 방안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투기 행위는 국내에서 돈을 빌려 환전한 후 이뤄지기 때문이다. 많은 국가들이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약간 더 논쟁적이고 모호하기는 하지만 자금성격을 감안한 자본이익 과세를 들 수 있다. 단기 자본이익 취득에는 높은 세금을, 장기 자본이익 취득에는 낮은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증시에서 어떤 자본이 한달간 치고 빠졌다면 높은 세금을 물지만, 5년 동안 불렸다면 낮은 세금을 내게 하는 식이다. 투기 행위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는 정당한 과세정책이고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미국이 택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물론 단순히 1년, 5년식으로 구분짓는 것보다 더 정교히 고안돼야 한다.

장=그런 경우 자본유입이 멈추거나 빠질 가능성이 없는가

스=일단 칠레의 경우를 보면 과세가 장기자본 유입에는 영향 없고, 약간 증가시키는 효과까지 있었다. 단기에서 장기 위주로 구성이 바뀐 것이다. 두번째로 다시 저축률을 높이고 믿을만한 국내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다. 단기자본의 속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일주일 내에 빠질지도 모르는 외국 자본에 기대 공장을 지을 수는 없다. 단기자본 갖고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쓸모가 없다. 상당히 공격적인 발언이고 월가에서 말하는 것과는 반대지만 현실이 그렇다.

장= 좋은 말씀 감사했다. 우리나라가 새 길을 모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국내 식료품점과 식당들을 모두 국영화하여 공기업으로 만들면 어떨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음식이 아닐까 싶다. 음식을 먹지 못하면 며칠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밀가루 가격 인상 등의 문제로 국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식료품 가격이 올라 서민 생활에 많은 부담이 되고 있다. 또한 부유한 사람들은 비싼 생선회나 쇠고기 등심을 먹지만, 많은 서민들은 이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 또한 불공평하다고도 볼 수 있다.

■ 국영 식료품점ㆍ식당 만들면?

이런 문제점들을 단박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모든 식료품점과 식당들의 공기업화이다. 이 공기업의 이름은 ‘식생활 공사’가 좋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식생활공사는 정부가 운영하게 될 것이므로 식료품이나 음식 가격은 많이 내려가게 될 것이다. 또 돈 있는 사람에게만 생선회와 등심을 팔기에는 따가운 정치권과 국민의 시선이 느껴질 것이므로 정치권에 의해 임명된 식생활공사의 사장은 월 1회 모든 국민들에게 생선회와 등심을 무료로 제공할지도 모른다.

더불어 전국 모든 식당과 식료품점에서 근무하는 수십만 명의 식생활공사 직원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정규직원이 되어 고소득이면서 안정적인 일자리가 대량으로 제공되게 된다. 싼 가격에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고, 가끔 생선회와 등심도 무료로 먹을 수 있으며, 평생 보장되는 고소득 일자리가 창출되는 식생활공사는 얼마나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식생활공사는 농어민들에게 농수산물을 구입할 때 가격을 깎아서 원가를 절감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논리에 민감한 식생활공사의 사장이 중요한 투표권자인 농어민들에게 박한 가격을 매겨 원망을 들으려 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식생활공사가 저렴한 가격에 식료품과 음식을 제공하려면 적자를 내고 정부 보조를 받는 길밖에 없게 된다.

당연히 국민들은 저렴한 식료품과 요리 가격에 기뻐하면서도 늘어나는 세금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세금 부담은 고용이 보장된 식생활공사 직원들의 비효율과 높은 임금, 연금 등을 메우기 위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또한 식생활공사는 전 국민에게 피자, 베트남 쌀국수, 치즈케이크 등 몇 만 가지 종류의 다양한 음식들을 제공하려면 아무래도 관리가 힘들고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으므로 월요일에는 미역국 또는 우거지국, 화요일에는 자장면 또는 짬뽕 등의 식으로 가능한 한 식료품과 요리의 가짓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게 될 것이다.

동남아 음식이나 이탈리안 피자, 홍어회 등은 식단에서 사라질 것이고, 점차 초ㆍ중ㆍ고 학생 때의 학교 급식제도를 전 국민에게 적용하는 형태로 변하게 될 것이다. 비효율로 식료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식료품점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기다란 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가격은 다소 저렴하지만, 정부의 적자는 늘고, 즐겨 먹던 피자도 포기해야 하며, 한참 줄을 서서야 식료품점에 들어갈 수 있는 식생활공사의 설립에 찬성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기업이 민영화하면 가격은 오를 것이다. 당연히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세금으로 갚아야 할 공기업의 비효율과 적자는 사라질 것이고, 전혀 못 먹던 피자나 치즈케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되듯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것이다.

■ 민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 필요

식생활공사 설립에 장ㆍ단점이 있듯이 공기업 민영화에도 장ㆍ단점이 있다. 장ㆍ단점을 살펴보면 민영화시켜야 할 공기업과 그렇지 않은 공기업들을 구분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와 같이 국민 생활에 너무도 필수적인 것은 민영화를 하면 가격이 크게 상승해 국민 생활에 너무 큰 부담이 되겠지만, 다소의 가격 상승을 국민이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공기업은 당연히 민영화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에 너무도 중요한 이 민영화 문제에 대해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국민들의 깊은 이해가 필요한 시기이다.







정운영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옛생각이 많이 난다. 97년 학부시절 뭣모르고 막 들었던 정치경제학과

2000년 대학원 수업 때 정치경제학의 '정'자도 몰라 엄청 깨져가며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정치경제학이라는 아웃사이더 전공에 벨기에 루벵대학교라는 아웃사이더 학교....

경제학의 아웃사이더였지만 수많은 경제학도들이 그의 강의와 책에 열광했던 것은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였던

당연한 것들에 대해 뒤집어서 그것이 정말 당연한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줬기 때문이다.

항상 수업을 마치고 보헤미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시던 모습.......

지금은 저 세상에 계시지만 그 분께 수업을 들었다는 것은 내 20대의 큰 행운이었음이 분명하다.


 



오해 혹은 무지, 소득분배 vs 경제성장

높은 성장과 균등한 분배, 이 둘은 경제학자나 정책결정자들이 언제나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일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상대적으로 더욱 중요한가 하는 것은 가치판단에 달려 있고 각국이 처한 역사와 제도 그리고 정치적 역관계에 따라 상이할 것이다. 성장과 분배 간의 상호관계도 무척이나 복잡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민주의가 분배가 더 나쁜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은 것 같지는 않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성장과 분배가 모두 나쁜 반면 동아시아는 둘 모두에서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론적 그리고 실증적으로도 소득분배와 경제성장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들은 이제 막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1955년 쿠즈네츠는, 이제는 고전이 된 논문에서 여러 나라의 경험을 살펴본 후 경제성장의 초기에는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노동력 이동 등으로 분배가 악화되다가 선진국이 되면 분배가 더욱 개선된다는 이른바 ‘역 U-자 가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후일 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으로 그 증거가 그리 뚜렷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80년대 이후 성장에도 불구하고 분배가 상당히 악화되어 이런 주장을 무색하게 하였고 전세계를 보아도 방글라데시와 같은 남아시아 개도국들이 상당히 균등한 분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쿠즈네츠의 주장이 전반적으로 확인이 되기도 하지만, 각국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복잡한 관계를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Barro, 2000)

90년대 이후의 관심은 성장에서 분배가 아니라 분배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으로 급속히 옮겨왔다. 특히 세계은행의 빈곤퇴치 정책의 발전과 학계에서는 경제성장에 관한 계량연구와 신성장이론 등의 발전을 배경으로 최근에는 분배->성장 에 관한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빈곤에 관한 여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고 이러한 노력에 기초하여 각국의 지니계수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고 그 홈페이지에도 분배와 빈곤 문제에 관한, 이론과 실증연구 그리고 정책적 제언 등을 포괄하는 여러 연구들을 모아 놓고 있어서 주목할 만 하다.(http://www1.worldbank.org/prem/poverty/inequal/index.htm)

균등한 분배에서 고성장으로

최근 한국에서도 성장 대 분배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얼마 전 한국경제학회 회장의 발언에서도 보이듯 압도적인 다수의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은 분배를 강조하면 성장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지금은 성장에 집중할 때라 목소리를 높인다. 먼저 파이를 키우고 나중에 나누자는 주장은 몇십 년 동안 들어왔던 이야기니까 별반 새롭지조차 않지만, 과연 이들의 우려대로 지금의 정부가 노동자 편이고 좌파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어찌보면 이는 확실히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공세인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주장들이 최근의 이론의 발전과 현실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파에게는 곤혹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제학 연구들은 균등한 분배는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다양한 실증연구들도 이를 확인해주고 있다. 불평등한 소득 혹은 부의 분배가 성장을 악화시키는 가능성은 직관적으로도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으며, 최근의 신성장이론은 보다 엄밀한 수학 모델들을 제시하고 있다.(Aghion et al., 1999)

우선 단기적으로 거시경제를 생각해보면 역시 균등한 소득분배는 총수요와 구매력을 높여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계층의 한계소비성향이 더욱 높을 것이므로 케인즈도 주장했듯 소득분배가 평등해지면 사회전체의 소비가 늘어나고 이는 경기를 진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빈곤층으로의 재분배를 통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으며 실은 그다지 좌파적인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골프채나 수입가구 등 부유층의 지갑을 열기 위한 최근의 특별소비세인하나 그 혜택이 상류층에만 돌아가는 감세는 오히려 이런 이론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소비를 더욱 강조하고 저축과 투자가 따로 결정되며 저축이 자동적으로 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저축이 장기적으로 투자와 성장에 중요하다면 오히려 소득분배의 악화가 부유층의 상대적인 저축을 늘여서 성장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것도 하나의 이론적인 가능성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한국은 부유층의 부동자금이 투자로 전혀 이어지지 않으며 빈곤층의 소비위축이 훨씬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

경제학 연구의 발전

최근의 발전된 논의들은 총수요의 관점보다는, 보다 미시적이며 정치경제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먼저 알레시나 등 초기의 정치경제학적 입장은, 분배의 악화는 재분배를 위한 요구를 심화시키며 소위 중위투표이론에 따른다면 이러한 요구가 세금을 높이는 재분배정책으로 이어져, 이는 결국 경제의 왜곡과 비효율성을 높여서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Alesina and Rodrik, 1994) 경제에 나쁘다고 맨날 얻어맞는 포퓰리즘이 정작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서 등장하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그럴 듯한 이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분배가 나쁜 나라라고 해서 꼭 재분배 요구와 세금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실증적인 난점에 곧 부딪쳤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제시된 보다 세련된 주장은 역시 분배가 악화된 나라의 경우 재분배에 대한 요구와 불만의 심화로 사회적 갈등이 높고 정치적 불안이 심각해져 투자가 저하되고 성장이 낮아진다는 것이다.(Alesina and Perotti, 1996) 실제로 많은 실증연구들이 쿠데타나 암살 등 정치적인 불안이 성장에 뚜렷한 마이너스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 바 있으며 이는 흔히 소득분배의 악화와 연관이 있다. 아무튼 분배가 너무 악화된 사회에서는 경제도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 세련된 연구들은 심각한 정보문제로 인해 시장실패가 만연하기 때문에 나쁜 분배가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러한 시장실패는 자본시장에서 가장 심각하다. 보통 현실에서 은행들은 돈을 빌리는 주체의 정보를 잘 모르며 이 경우 시장이자율보다 낮은 금리에서 대출금을 배분하는 신용할당이나 대출과정에서 담보를 요구하는 행태 등이 흔히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난한 가계나 중소기업의 경우 담보부족으로 인해 신용을 이용하기가 힘들어지게 된다.

결국 좋은 투자계획을 지니고 있어도 중소기업의 투자는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보다 중요하게 가난한 이들이 돈을 빌릴 수 없어서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즉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이 낮아진다는 것이다.(Aghion et al., 1999) 언제나 자금난으로 고생하는 중소기업이나 과도한 교육비로 허리가 휘는 가정들을 보면 한국에서도 이해할 만하다. 나아가, 분배의 악화는 거시적인 불안정을 심화시켜 투자와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도 제시된다.

결국 최근의 연구들은 소득이나 부가 더욱 공평하게 분배된 나라들의 성장률이 높을 것이라 예측한다. 이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성장과 분배가 상충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 경로들은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보수파가 목소리를 높이듯 너무 심한 재분배의 요구는 기업가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고 과다한 복지정책은 노동의욕조차 떨어뜨려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결국 언제나 그렇듯 다시 공은 실증연구에게로 넘어갔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실증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실증연구를 둘러싼 논란들

경제성장에 관한 계량분석의 발전과 함께 많은 연구들은 분배의 성장효과를 크로스컨트리 계량모델을 통해 검증해 오고 있다. 즉 90년대 이후 많은 학자들은 각국의 성장을 검증하는 계량모델에 분배를 나타내는 지표인 5분위 비율이나 소득이나 토지의 지니계수 등을 추가하여 그 영향을 분석했는데, 재미있게도 각국을 비교한 초기의 연구들은 다른 변수들을 통제한 이후 소득분배가 더욱 공평한 나라가 성장률이 더 높다고 보고했다. 이는 위의 이론들을 뒷받침 하는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시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1990년대 초반 알레시나와 로드릭 등은 표준적인 계량연구를 통해 분배의 성장효과가 뚜렷함을 보고했지만(Alessina and Rodrik, 1994) 다이닝거와 스콰이어는 세계은행의 새로운 자료에 기초하여 그 결과가 그리 튼튼하지 않다고 반박했다.(Deininger and Squire 1996) 하지만 다시 페로티 등 최근의 여러 연구들은 발전된 데이터에 기초해서도 분배의 성장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며 특히 사회복지 등 재분배정책도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보고하여 장기적으로 성장과 분배의 양립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Perotti, 1996)

그렇다면 정말 환영할 만한 일 아닌가, 분배와 성장이 사이좋게 함께 갈 수 있다면. 그러나 현실은 역시 만만치만은 않아서, 패널 기법을 사용한 더욱 최근의 연구들은 종래의 관찰과 반대되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한다. 즉, 각국간의 장기적 성장률을 서로 비교한 연구들과는 달리, 각국 내의 시간상의 변화를 함께 고려한 연구들은 분배가 오히려 성장에 나쁘다고다고 보고하여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Forbes, 2000)

이렇게 실증연구들의 결과가 기법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자본자유화 등 다른 정책의 성장효과에서도 확인되지만 역시 해석은 만만치 않다. 포브스에 따르면 각 나라가 서로 상이하다고 가정하여, 관찰되지 않는 이른바 ‘고정효과(fixed effects)’를 고려하고 한 나라의 변화까지 고려하면, 균등한 분배가 오히려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재미있게도 고정효과를 주지 않거나 시간의 변화를 5년 평균이 아니라 더 장기적으로 살펴보면 그 악영향은 사라지고 만다. 흔히 이런 결과는 단기적으로는 분배가 성장에 나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석된다.

한편 다른 이들은 이런 기법을 사용해서 분석하면 분배가 성장에 미치는 효과가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다고 보고하기도 한다. 즉 가난한 나라에서는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소득분배의 악화가 성장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중진국 이상에서는 그렇지 않아서, 분배의 성장효과는 단선적이지 않다(non-linear)는 것이다.(Barro, 2000) 아무튼 최근의 연구들은 온갖 발전된 계량경제학의 기법들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해석과 발전가능성은 열려 있는 듯하다.

이 논란에서 중요한 점은 역시, 성장 자체가 분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어떤 변수가 성장과 분배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므로 계량연구 자체가 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위 내생적 효과들을 모두 고려하면 보다 복잡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각국의 역사적 사례연구가 함께 보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Pardo-Beltran, 2002)

또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주로 소득의 분배를 지표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성장에 더욱 중요한 것은 소득보다는 토지 등 부의 분배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몇몇 연구들은 실제로 부의 분배의 불균등이 성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무척 뚜렷하다고 보고한다. 토지분배의 지니계수를 사용하면 패널데이터를 써도 분배의 성장효과가 여전히 뚜렷하다고 보고되며(Deininger and Olinto, 2000), 소득과 부의 분배를 함께 모델에 도입하면 소득분배의 중요성은 사라지는 반면 여전히 부의 분배는 중요하다고 보고된다. 결국 월급 차이보다도 땅의 분배나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부의 격차 확대가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실증연구들을 둘러싸고는 기법과 데이터를 둘러싸고 열띤 논란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소득이나 특히 부의 불균등한 분배는 적어도 장기적인 경제성장에는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투자, 이윤율 그리고 소득분배

분배와 성장 간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연구의 발전을 더 기다리도록 하자. 우리에게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과연 세계화가 이 둘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엄밀한 실증연구를 기다리고 있지만, 몇몇 흥미로운 이론적 연구들이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잠시 이들의 아이디어를 살펴보자.

흔히 비주류로 불리는,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케인지언 거시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의 경제성장의 동력을 투자에서 찾는다. 투자의 변동이 실로 경기변동의 핵심 아니던가, 그렇다면 투자는 무엇이 결정할까. 이들은 맑스 등의 전통을 따라 투자를 이윤율의 함수로 생각하고, 이윤율을 결정하는 요인들을 다시 분해하여 소득분배를 포함한 경제의 변화가 어떻게 투자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분석한다.(Marglin and Bhaduri, 1990)

쉽게 말해서, 이윤율은 이윤/자본 이다. 즉 들인 자본에 비해 이윤이 높으면 자본가는 당연히 투자를 늘인다는 것이다. 투자행위는 물론 미래에 관한 것이므로 엄밀하게는 미래의 예상이윤율이 중요하지만 보통은 현재의 이윤율이 미래의 투자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가정된다. 하긴 요즘의 한국처럼 이윤율이 무지 높은데도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기업가정신의 부재든 눈치보기든 개기기든, 불확실성이든 구조적 변화든 아니면 이 모든 것이든 뭔가 다른 설명이 필요하긴 하다.

어쨌든 이윤율은 다시=이윤/소득 * 완전고용 소득/자본 * 현실의 소득/완전고용 소득 으로 분해되는데, 여기서 소득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인 이윤몫은 양날의 칼의 역할을 한다. 즉 이윤몫이 올라가면 이윤율이 높아져 투자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반면, 이것이 너무 높아지면 임금몫이 떨어져 케인즈가 말했듯 총수요가 줄어들고 따라서 가동률(소득/완전고용소득)이 하락하여 오히려 이윤율이 하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즉 여기서 총수요 하락 효과가 더욱 압도적이라면 아이러니칼하게도 자본가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이 투자와 성장의 정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시, 임금은 기업에게는 비용이지만 사회전체로는 구매력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소득분배, 그리고 세계화

아무튼 이들은 자본주의 황금기는 가동률이 높아지고 이윤몫도 하락하지 않아서 이윤율이 높았고 고도성장을 이룩한 반면, 70년대 이후에는 생산성이 정체하고 이윤몫이 하락하자 이윤율이 떨어져 경제위기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모델에 따르면 경제성장은 그 조건에 따라 이윤몫의 증가가 저축상승으로 총수요의 증가로 이어지는 ‘활발한 체제(exhilaration regime)’과 임금몫 증가가 총수요를 증가시키는 ‘정체된 체제(stagnationist Regime)’가 가능하며, 임금몫과 이윤율, 투자가 동시에 늘어나는 임금주도적 성장(wage-led growth)도 가능하다. 이렇게 투자와 임금이 함께 늘어난다면 꽤나 이상적이다. 분배와 성장의 동시적인 개선, 소위 평등주의적 발전(egalitarian growth)이 현실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의 전복을 포기한 현대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주장할 수 있는 최선은 이런 정도 아닐까, 이들이 이 가능성에 목을 매다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조건이 사회적 역관계와 제도의 변화와 관련이 크고, 특히 자본이동 등 세계화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FDI 등으로 해외로의 자본투자가 더욱 활발해지고 수출시장이 훨씬 중요해지면 어떻게 될까. 자국의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지면 물론 국내의 총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지만, 해외로 진출할 수 있고 특히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자본들은 이를 비용의 증가로만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체된 체제(stagnationist regime)나 임금주도적 성장의 가능성은 약화될 것이다.

결국 세계화의 진전과 발없는 자본의 이동이 심해지면 한 나라 안에서 사이좋게 먹고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모델은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평등주의적 발전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으로 이른다. 슬프긴 하지만 총수요문제와 역관계의 변화를 고려하면, 개방이 심화될수록 평등한 소득분배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델은 세계화와 성장과 분배가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의 한 측면을 보여줄 뿐이다. 이윤율의 결정에서 기술적 효율성을 반영하는 자본생산성 등의 핵심적 역할도 고려되어야 하며, 특히 생산성 자체도 노자간의 역관계 등을 반영할 것이므로 분석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어떻든 수출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들이 언제나 국제경쟁력 운운하면서 임금비용을 죽어라 낮추려고 하는 것은, 세계화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런 목소리는 자주 이데올로기 공세인 경우가 많고, 제조업 총비용에서 노동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10%이며 임금상승과 협조적 노사관계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는 하이로드(high road)의 길이 가능하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제가 개방될수록 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한 정부의 완전고용정책도 한계에 직면하고 재정지출도 억제될 것이라 우려되며, 세계화는 분배와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정부의 적극적 정책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된다. 물론 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지출 등은 국내적인 역관계나 제도에 더욱 영향을 받으며(Bowles, 2002) 지속되고 있고 로드릭 등이 역설했듯 세계화 자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므로 정부의 재정지출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국내적인 역관계와 경제정책에 미치는 영향들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평등주의적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동아시아와 평등주의적 발전

세계화가 그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곤 하지만 성장과 분배의 동시적인 개선은 여전히 경제학자들이 잡고 싶은 두 마리 토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상적인 사례를 역사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까? 학자들은 다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찬사를 던진다.

세계은행의 ‘기적’ 보고서를 비롯한 많은 연구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토지의 균등한 분배와 성장과 함께 나타난 임금상승과 소득의 확산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학자들은 도약기의 균등한 분배가 사회적 불안정을 완화시켜 경제성장에 효과적인 정치경제적 환경을 만들어내고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원칙(shared growth principle)에 기초한 경제발전이 경제주체들의 참여를 더욱 높였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주목받는 것은 다른 개도국과는 달리 상당히 급진적으로 진행된 토지개혁이다. 토지개혁은 부의 분배를 평등하게 만들고 지주 등의 강력한 이해집단을 약화시켜 정치적인 안정과 함께 정부가 이해집단들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고 자율적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를 배경으로 경제 전체의 성장을 추구하는 효과적인 발전국가체제가 확립되고 국가의 경제개입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토지개혁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진보적인 비판이 머쓱할 정도이다.

아무튼 성공적인 토지개혁에는 해방 이후 상당했던 좌익의 힘과 혁명의 길로 들어섰던 북한의 영향이 컸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이지만 외부적 위협과 내부적 개혁의 열망 등의 역사적 조건이 효과적인 제도의 형성에 도움을 주었으며 이는 핀란드 등 북구의 발전국가의 성공적 경험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이와 함께 무척 중요한 정책은 정부의 적극적인 교육정책이었다. 한국의 교육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물론 조선시대부터 이어오던 배움에 대한 강조와 출세의 중요한 수단이 됐던 교육을 향한 향학열이 높은 것도 중요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다른 개도국들에 비해서 많은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공교육에 노력을 기울인 것은 성장의 촉진과 함께 분배가 동시에 개선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런 근사한 성과로 인해 동아시아는 서구의 진보적인 학자들에게조차 평등주의적 발전의 대안적인 사례로 대접받기도 한다. 혹자는 한발 더 나아가, 앞서 말한 구조주의적 거시모델에 기초해서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과정에서 임금몫의 증가가 총수요를 증대시켜 이윤율을 높이고 투자도 증가시켰다는 실증연구를 제시하기도 했다.(Seguino, 2000) 그러나 이는 너무 멀리 나간 주장인 듯하다. 이미 다른 연구는 한국의 투자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이윤몫의 함수임을 보고했고 (Jang, 1998) 필자의 측정에 따르면 이윤율은 역시 투자에 핵심적이지만 특히 급속히 변화한 자본생산성까지 고려하면 임금몫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독재정부의 재벌 밀어주기 식의 경제발전전략 하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끔찍한 억압이 존재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작 국내의 진보주의자들은 경제발전이 종속적이었으며 민중을 수탈한 재벌중심적인 과정이었다고 소리높이며 박정희식 경제개발전략의 어두운 면을 비판하지 않았던가. 이 또한 너무 편향된 주장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경제의 성공을 너무 신비화하거나 너무 비판만 하는 것은 좋은 자세는 아닌 듯하다.

한국의 기적, 그리고 파산

동아시아나 한국의 기적적인 경험을 다시 들여다보자. 우선 이들 나라의 높은 성장은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투자 덕분이었고 그 이면에는 역시 높은 이윤율이 자리잡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각국을 비교해보면 이는 정확하게 이윤몫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즉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이윤에 비해서 임금이 상당히 억압되었고 이것이 높은 투자와 성장을 낳았으므로. 적어도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임금이 높아져서 성장이 촉진된 것 같지는 않다.(You, 1998)

이렇게 투자는 촉진되면서도 노동자간의 임금격차와 부의 격차는 그리 크지 않아서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분배가 더 균등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역시 초기의 균등한 토지분배가 소득분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이를 배경으로 나타난 발전국가의 효과적인 정책들이 핵심적이었다. 이를테면, 정부가 금융부문의 통제와 산업정책 등을 통해 높은 저축과 높은 투자를 동시에 촉진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분석하며, UN의 아큐즈 등은 국가에 의해 적극적으로 관리되는 고이윤-고투자의 연관(high profit-high investment nexus)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여 고도성장을 낳았다고 주장한다.(Akyuz and Gore, 1996)

물론 이윤율은 자본설비의 확대와 노동자의 세력강화와 함께 하락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경우 특히 80년대 후반 이후에는 민주화의 열풍과 함께, 임금몫이 급속히 상승하였고 이는 이윤몫을 압박하여 이윤율 저하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서 우파들은 이러한 기업수익성의 하락이 97년 경제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업이 파산한 것도 경제가 위기를 맞은 것도 결국은 노동자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수익성이 하락한 것은 현실이지만 그것이 위기로 폭발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90년대에는 전반적으로 노동생산성 상승은 실질임금 상승을 상회하는 경우가 많아서 임금상승으로 인한 이윤압박은 그리 뚜렷하지 않으며, 오히려 급속한 자본투자의 확대로 인한 자본생산성의 하락이 수익성의 하락에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경제위기의 배경으로 지적되는, 90년대 한국 기업의 투자확대와 이윤율 하락에 관해서는 한국에 관한 장에서 분석하기로 하자.

아무튼 경제위기 이후에는 구조조정과 함께 전체 GDP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이 계속 하락하고 동시에 투자와 성장도 함께 정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칭송받아왔던 이전 동아시아 모델의 성과와 정반대의 모습이라 심각하게 우려할 만하다. 물론 불황시에는 분배가 일시적으로 악화되지만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장기적인 경향으로 굳어버리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경제위기와 IMF의 구조조정이 기업의 경영이나 금융시스템 그리고 특히 노자관계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가. 개방되고 주주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노동시장이 마구 유연화된 미국식 자본주의로의 구조조정이 분배의 악화를 심화시키고 앞서 말한 여러 경로를 통해 장기적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최근 KDI에서도 경고하듯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은 단기적으로는 기업에게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민경제의 몰락과 국내수요의 심각한 침체로 이어져 오히력 경제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즉, 이윤몫이 증가하는 효과에 비해 수요침체의 효과가 더 클 수도 있으며 이는 수익성이 여전히 나쁜 대기업 이하의 기업들에게 특히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제난으로 자살률까지 세계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는 지금 부자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 정책이 정말로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미국이나 영국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분배의 악화는 어쩌면 신자유주의의 필연적인 특징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성장이라도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한국은 이전의 역사적 경험과는 반대로 분배와 성장이 동시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구조조정은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내다버리는 오류를 범했던 것인지도 모르며 우리가 바로 세계화가 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개방을 통해 분배에 미치는 악영향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장경제는 무엇인가

시장경제는 국민 모두가 보다 잘 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선택한 나라살림의 운영방식이다. 그러나 최근에 재계, 정계 그리고 경제관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시장경제에 대한 논쟁은 마치 시장경제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 국민들이 보다 잘 살기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했는데도 다수의 국민들이 보다 잘사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경제적 강자들의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만을 가져온다면 국민들은 시장경제를 버리고 대안적 경제체제를 찾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 중요하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성장을 달성한다. 경쟁의 동기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 속성에 기인한다. 국민 각자는 모두가 함께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잘 살기 위해서 경쟁을 한다.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수단으로 시장경제를 선택한 것이지만 개개인은 이기적인 동기로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장경제는 개인과 공동의 목적이 서로 상반되는 모순을 갖는 것이 그 본질이다. 그래서 시장경제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국가의 소임이 중요하다.

시장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경쟁을 유도하는 시장체제를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시장질서을 세우는 것이며

셋째는 경쟁의 결과로 얻어진 성과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시장경제의 논쟁은 세 가지 국가의 역할 중에서 논쟁의 주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시장경제를 왜곡하고 있다. 경쟁에서의 강자의 위치를 확보한 재벌들은 경쟁 촉진을 주장하면서 공정경쟁이나 분배를 말하는 것은 반시장적이라고 매도한다. 정치권은 인기 영합의 수단으로 그리고 일부 노동계는 이기적 동기에서 분배를 주장하면서 분배의 전제가 되는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경쟁을 훼손하는 모순된 주장을 한다. 경제 관료들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부처 이기적인 관점에서 경쟁촉진과 공정경쟁 사이에서 줄타기 곡예를 하며 분배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은 금기시한다. 모두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선택적으로 시장경제를 왜곡하고 있다.

경쟁은 원천적으로 공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서로 다른 능력이 주어진 천부적인 차이는 물론이고, 물려받는 재산과 환경의 차이로 인하여 출발선에서부터 불공정한 경쟁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창의력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체제이다. 그래서 출발선이 다를지라도 노력과 능력에 따라서 성공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공정경쟁이 중요하다. 경쟁은 또한 분배의 공평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경쟁의 결과는 경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지 승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경쟁의 결과가 승자에 의해서 독점된다면 국민들은 경쟁에의 참여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경쟁에 참여한 모두에게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주는 삶의 기본이다. 입고, 먹고 그리고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인간적인 최소한의 삶의 터전으로서 주거의 규모를 국민주택이라고 부른다. 국민주택 분양가 공개로 촉발된 최근의 재계, 정치권, 경제관료들 사이의 시장경제 논쟁은 오히려 시장경제를 왜곡하고 있다. 국민주택 시장에서 경쟁이 공정성과 공평성을 담보하지 못하여 다수의 국민들이 고통 받는 시장 실패의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는 분양가 공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주택 전부 떠맡아서 건설을 한다고 해도 이는 반시장적일 수 없다. 경쟁지상주의적 논리만을 앞세우고 공정경쟁과 균형적인 분배를 위한 규제를 반시장적인 것으로 매도하는 주장이야말로 오히려 국민 다수로 하여금 시장경제 그 자체를 거부하게 하는 위험한 반시장경제적인 왜곡이다

1. 들어가면서
안녕하십니까? 최근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자꾸 들립니다. 세계 경기의 회복으로 수출은 호조를 보이는데도 내수는 여전히 침체되어 있고, 카드사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의 부실과 여전히 심각한 가계 부채 등은 아직도 우리 경제의 체질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수출과 대기업에서 보이는 경기 회복도 생산성의 향상만을 위주로 한 소위 ‘고용없는 회복(jobless recovery)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할 때 한국 경제의 회복과 장기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진단과 함께 장기적 과제로서 인적 자본의 육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거시면에서 보면 괜찮은데 미시 쪽에서 보면 허약한 형상이었습니다. 그 허약함이 겉으로 드러날 때마다 위기가 오곤 했지요. 그러나 그 위기를 또 거시정책으로만 풀었지 미시정책으로 푸는 일은 몹시 미진했습니다. 미시 면에서 고치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 될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비용이 들더라도 구조조정이 필연적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가 성장을 계속하려면 교육이 중요합니다. 특히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경제의 현 단계로 볼 때 우수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대학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오늘 드릴 말씀의 요체라고 하겠습니다.

2. 경제를 보는 두 가지 시각: 거시경기와 미시구조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경제를 보는 시각은 거시 경기적 시각과 미시 구조적 시각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시 경기적 시각은 경제를 하나의 커다란 숲으로 보고, 그 숲을 멀리서 망원경을 가지고 보듯이, 경제를 파악합니다. 그런데 비해서 미시 구조적 시각은 그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 하나 하나 혹은 나무와 나무 간의 관계를 현미경을 가지고 보듯이 봅니다. 한 나라의 경제를 거시 경기적으로 볼 때는, 성장률?고용?물가수준?이자율?국제수지?주가지수?외환보유고?환율과 같은 경제 지표들을 분석하게 됩니다. 그에 비해서, 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의 수익률이라든지 기업의 국제경쟁력?기업 활동의 투명성 같은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미시 구조적 시각을 취하는 것입니다.

먼저 지난 약 40년 동안 한국경제가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거시경기적으로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기동안 한국 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고성장의 신화는 이러한 평가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미시구조적으로 보자면, 항상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가 밖으로 표출이 되면, 우리는 그것을 ‘위기’라고 불렀습니다. 19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겪었던 기업부실 문제?70년대 말의 중동건설 실패?80년대 중반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어려움에 빠졌던 상황?90년대 후반에 겪은 외환위기 같은 것들이 소위 ‘위기’입니다. 그런 위기들을 미시 구조적으로 표현한다면, 경제체질이 약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가 나타날 때마다 우리는 대체로 잘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경기부양책을 사용하여 경제가 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해 온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미시와 거시라는 거울로 지적인 게임을 계속해 봅시다. 한국경제를 거시지표 몇 가지를 통해 분석하고, 또 미시적으로도 재해석해 보기로 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거시 경기로 본 한국경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1. 거시경기로 본 한국경제

우선 성장률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 경제는 지난 40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연평균 8% 성장을 했으니, 40년을 합산하면 320%의 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19C 초반부터 20C 중반까지 150년 동안에 성장한 것을 산술적으로 합해도 320%가 안 되었습니다. 아마도 1960-90년대의 한국의 경제성장 기록은 세계사에서 이변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경제성장의 부작용도 많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파괴되었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불균형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사회는 빈부격차?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도농간의 격차와 같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불균형의 문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경제성장률 자체는 세계사적으로 남을 만한 대단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8%의 고속성장은 이제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GDP로나 GNP로 연 5백조 원 이상, 달러로는 5천억 달러가 되는 경제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규모에서 어찌 8%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겠습니까. 또 많은 산업에서 우리 기업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어야 성장이 지속될 수 있는 성장의 끝부분에 와 있습니다. 남의 기술과 자본을 들여와 성장하는 과거의 양적 성장이 더 이상 가능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성장 신화를 잊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최근 정부는 경제성장률 대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달성되는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지만,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을 줄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게다가 ‘2만 달러’나 ‘1만 달러’라는 구호는 계수 장난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1달러 당 환율이 1,200원이어서, 우리의 국민소득은 1만 달러 전후에서 변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환위기 이전 환율인 800원을 고수하였더라면, 우리 국민은 ‘1인당 국민소득 1만 5천 달러’인 나라에 살고 있는 격이 됩니다. 결국 ‘1인당 국민소득 몇 달러’라는 수치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현재 우리는 구조조정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자꾸 국민소득을 올리려는 경기 부양적 시각으로만 한국경제를 운용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둘째, 고용을 통하여 한국경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1, 2년 전까지는 한국이 고용 측면에서도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수준을 유지하였습니다. 외환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실업률이 연 3-4%인 경제였으니, 국제비교로 볼 때 참으로 대단한 나라라 할만 합니다. 단지, 고용에서 임시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 대기업 중심의 고용구조라서 중소기업은 인력채용이 힘들다는 점,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용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용 상황은 괜찮았다고 평가내릴 수 있겠습니다.

물가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1960, 70년대까지 물가상승률은 20~30%나 되었습니다.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1980대와 90년대에는 계속해서 물가를 한 자리 숫자로 지켜냈습니다. 油價가 안정되는 등의 외적 요인도 물가안정화 정책을 도와주었겠지만, 한 자리 숫자의 인플레이션율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합니다. 게다가 경제가 개방된 이후로, 우리들은 물가 걱정을 크게 할 필요는 줄어들었습니다. 개방경제 속에서는 물가가 상승되더라도, 수입이 즉시 늘어나서, 물가가 다시 잡히기 때문입니다. 또 경제이론으로 보자면, 디플레이션보다는, 완만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약간의 물가상승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자율도 외환위기 이후 10%이하까지 떨어지더니, 요즘에는 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주가지수 역시 한때 200-300까지 내려갔지만, 지금은 700-800선에 올라가 있습니다. 외환보유고도 1,400억 달러가 넘어서서, 이제는 오히려 많은 것이 문제가 될 지경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7-8% 이자를 주고 빌려온 달러를 한국은행의 지하금고에 놓아둘 수는 없는지라 결국 예치를 다시 하는데, 대출한 달러를 뉴욕에 있는 시티뱅크나 체이스 맨하탄 은행에 이자 2-3%를 받고 다시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외환을 비축하자는 의미에서 많이 빌려왔지만, 결국 우리가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1,400억 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외환위기를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입니다. 즉, 엄청난 외환 보유로 인한 이자 손해는 또 다른 외환위기를 막기 위한 보험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지표를 보건대, 거시적 측면에서 본 한국경제는 최근까지 대체로 ‘괜찮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2-2. 미시구조로 본 한국경제

이번에는 한국경제를 미시구조적으로 평가해 보겠습니다. 즉 기업의 수익률이나 국제경쟁력 등의 기준에서 한국경제를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그 모습의 초라함에 상당히 실망하실 것입니다.

제조업에서의 총자산수익률은, 자산에 비해서 수익이 얼마나 되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한국의 총자산수익률, 즉 기업수익률은 60년대 이래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하락을 거듭하여 왔습니다. 해외비교를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낮은 상황입니다. 1960년대는 8.5, 70년대는 4.3, 80년대는 2.6, 90년대 와서 1.4로 떨어졌습니다. 90년대의 총자산수익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일본 역시 낮아서 3.4, 독일은 10.2, 타이완이 5.6, 미국이 6.7입니다. 즉, 실물부문에서 한국 제조업의 총자산수익률이 너무 낮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융부문에서는 부실채권이 아주 많습니다. 은행의 부실채권은 아직도 3-4%대를 맴돌고, 상호저축은행, 투신사와 같은 제 2 금융권은 20% 전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부실채권비중이 1-2%만 되면 금융 감독 당국에서 해당 금융기관에 경고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모두 높으니, 누구에게도 경고신호를 보내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면 “거시 경기적으로는 좋은데 미시 구조적으로는 나쁘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비유해 보지요. 거시 경기적 상황은 체온으로, 미시 구조적 상황은 체질로 1:1 대응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의문은 “체질은 나쁜데 체온이 좋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되는 셈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약한 체질에 링거주사를 주어서 생기를 어거지로 돋우어 체온은 유지시켰지만, 체질개선에는 신경쓰지 않았다.”고 답변하겠습니다. 즉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경제운영자들이 약한 체질의 경제에 자꾸 불을 때어서 경기는 좋게 유지해왔고, 체질을 튼튼히 하는데는 소홀히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식의 임시방편이 한계에 도달하여, 1997년 후반에 IMF 구제금융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후 잠깐, 즉 98년-99년 초까지만 해도, “이제는 거시 경기가 아니라 미시 구조다.”라는 생각으로 구조조정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한데 어느 날 IMF 차입금을 다 갚더니, 이제 체질개선을 다 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 이후 주로 경기 불때기에 눈을 돌리면서 과거의 행동방식을 재연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에 다시 어려움을 가져온 것입니다. 지난 2-3년 간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 특소세 면제, 아파트 분양권 전매 허용 등의 무리한 정책을 통해서 경기를 살려놓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위적 경기부양책에 의한 일시적 경기회복이었습니다. 작년과 올해동안 경기가 계속 나빠져 왔고, 내년이후에 회복될 전망도 불투명합니다. 응급처방식 경기부양에 치중하느라, 경기부양이나 미시구조의 조정, 이 둘 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경제가 체온 즉 거시경기는 괜찮은데, 경제의 체질 즉 미시구조는 괜찮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한국경제에 축적된 문제가 무엇이기에, 우리가 미시구조적으로 허약한 경제체질을 갖게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과거의 성장방식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 ‘좋은 거시경기 속의 나쁜 미시구조’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경제정책의 초점을 성장에 맞추어 시장에 직접 개입하였습니다. 그것은 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자원배분과 경쟁제한 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유망산업을 선정해서 기업별로 사업영역을 구분해 주었고, 금융을 산업정책수단으로 이용하여 산업별ㆍ기업별로 자금지원규모를 결정ㆍ집행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들을 경쟁과 자금동원의 압력으로부터 해방시켜서 성장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서구 여러 나라들이 100, 200년에 걸쳐서 이룩한 성장을 한국경제는 불과 40여년 만에 이루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경제체제 내지는 구조가 왜곡되기 시작하였고 점차 심화되어 왔습니다. 경제를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 우선 실물부문에서의 중복-과잉투자가 경제의 효율성과 신축성을 떨어뜨리고 거품경제를 야기시켰습니다. 금융부문에서는 대출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결과 부실대출을 양산했습니다.

우선 실물부문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장원리의 기본법칙은 적자생존입니다. 이윤을 내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기업은 뒤쳐지고 이윤을 내는 효율적 기업만이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런 단순한 논리가 한국에서는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대기업은 정부의 보호 속에서 경쟁적으로 몸집 불리기를 계속 해왔습니다. 생산규모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재벌들은 공급과잉을 불러일으키며 재고조정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자금회수는 늦어졌고, 금융비용이 급증해서 현금흐름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은 큰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대기업들이 연쇄도산하면서 1997년에 경제위기가 촉발한 것입니다.

기업이 중복과잉투자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비효율을 낳는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첫째, 한국에서는 내적 기준이 아닌 외적 기준에 따라서 기업이 평가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장제도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기업규모보다 수익성이 기업성패를 좌우합니다. 기업이 작다는 이유로 투자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의 인프라스트럭쳐가 미비된 나라에서는 금융기관이 (내적 기준에 해당하는) 수익성을 산정해 낼 방법이 없습니다. 자연히 기업이 금융기관이나 정부와 협상할 때, 기업규모와 같은 외적기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규모가 큰 기업은 담보제공능력이 좋습니다. 설혹 사업계획이 실패한다고 해도, 국가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우려한 정부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규모만 크면 망하지 않는다, 즉 ‘Too big to fail’이라는 원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대마불사의 신화는 IMF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사실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에 따라서 기업은 이윤 극대화보다는 규모 극대화를 추구해왔고, 이는 필연적으로 중복과잉투자를 가져왔습니다.

두 번째로, 재벌들의 교차 소유구조가 중복과잉투자를 심화시킨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A기업이 B기업에 투자하고, B가 다시 A에, 또 B가 C기업에 투자하는 등의 교차투자를 함으로써, 재벌 오너는 3, 4%의 작은 지분을 갖고도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행사하였고, 그 과정을 견제할 장치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로, 정부나 금융기관도 이른바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습니다. 혹시 금융기관이 위험한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서 손실을 보더라도,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손실을 보전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금융기관은 이른바 downside-risk보다는 upside-gain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행은 자연히 기업들의 대출신청심사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게 되고, 철저한 심사 없이 대출을 해 줍니다. 방만한 대출의 결과는 당연히 부실채권의 누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인 투자가 집행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경제적인 이유 외에 정치적 측면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 3공이나 유신, 5공, 6공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정부는 정통성 결여나 과실에 대한 일종의 보상수단으로 가시적 경제성장을 무리하게 추구해왔습니다. 예컨대 경제성장에 도움만 된다면 기업에게 분별없이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기업들은 중복? 과잉투자를 하게 되었고, 기업의 현금흐름은 더 나빠져 갔습니다. 기업의 현금흐름이 나쁘니 채무상환이 안 되고, 은행에는 부실채권이 쌓였습니다. 결국 은행도 기업도 모두 어렵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그런데 어떻게 거시 경제적으로 성공했느냐?’라고 질문합니다. 그에 대해서 대개의 경제학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대충 이런 것들입니다. 1960년대 이후 80년대까지는 노동력이 풍부했고 외국으로부터의 기술도입도 용이했을 뿐 아니라, 기업경영 마저 단순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87년 이전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기술도입 용이성, 기업경영의 단순함 덕분에 성장이 쉬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 70년대는 동서냉전의 기류속에서 외국의 원조를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70년대의 중동건설 붐, 오일 달러의 환류, 80년대의 3저 현상과 같은 것들도 고도성장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보너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제성장이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 어려움의 절정이 마침내 1997년에 경제위기로 나타났습니다.

4.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 평가

이제는 외환위기를 맞은 후에 한국경제가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거시경기적으로 보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에도 거시경기적으로는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경제의 성장잠재능력에 비해서 더 많이 성장했고, 물가도 안정되었습니다. 국제수지도 큰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장은 오래 못 가는 법입니다. 6% 성장은 무리한 경기부양책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가는 정부정책 덕분이라기보다는 개방경제라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국제수지는 수출이 잘 되서가 아니라 수입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에 개선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미시구조적인 눈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경제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실물부문에서는 1999년 이후에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지속하여왔으므로, 이른바 망해야 할 상당수의 한계기업들이 퇴출되지 않고 생존하고 있습니다. 시장 내 잠재부실 요인이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상을 이자보상배율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말해봅시다. 이자보상배율이란 영업이익을 차익금 이자로 나눈 수치(=영업이익/차입금이자)입니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큰 기업은 이자를 내고도 영업이익이 생기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작아서 영업이익이 금융비용, 즉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는 제조업체가 1999-2000년 동안에 30%나 됩니다. 그 가운데 5%는 3년 이상 이자보상배율이 1이하입니다. 정부는 한국경제가 고통을 겪는 것을 참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인위적으로 지연시키며, 또 다시 경기진작이라는 유혹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은 아직도 요원하니,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한국경제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융부문의 부실채권도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암적 존재입니다. 이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하겠습니다. 2003년 3월말 기준으로 국내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 규모는, 느슨한 한국기준으로도, 35조원이나 됩니다. 은행권에는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서 부실비율이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 금융권의 부실채권 문제는 아직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2 금융권 중에서 IMF 구제금융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친 보험사, 종금사, 증권사는 상대적으로 건전합니다. 그러나 같은 제2 금융권이라도 투신사, 상호저축은행, 리스사의 부실은 심각합니다. 투신사, 상호저축은행, 리스사의 부실비율은 각각 36%, 15%, 15%입니다. 이렇게 부실채권이 많아서는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금융권 전체의 안정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대출행태의 변화로 등장한 가계부채문제도 한국경제를 뒤흔들 만큼의 위력을 가진 새 불씨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금융회사들은 기업대출을 매우 꺼려하였고, 가계대출이라는 손쉬운 대출방식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가계부채는 급속하게 늘어갔고, 자금흐름의 불균형 현상을 유발하면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부채규모가 97년에 247조 원이었다가, 2003년 3월에 462조원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업부채는 같은 기간 동안에 644조 원에서 699조 원으로 증가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 진행된다면, 가계들이 빚을 못 갚는 것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날 것입니다. 경제가 불황에 빠져서 물가가 하락하는 경우, 가계부채의 실질치가 커진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계는 훨씬 더 소비를 줄일 것이고, 경기는 더욱 더 수렁에 빠져들 것입니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한국경제가 “제2의 위기”로 갈 우려가 커집니다. 과거의 금융위기가 은행부채를 갚지 못한 기업 때문에 일어난 외환위기였다면, 이번에는 은행부채를 갚지 못한 가계로 인해 금융위기와 ‘심각한 디플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경제위기를 동시에 몰고 올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5. 한국경제의 중단기적 과제 -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개선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은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로 경제개혁의 주체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구조조정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구조조정에 대해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구조조정이 무엇인지 알고, 구조조정을 행할 추진력이 있는 사람들이 경제를 맡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정부가 시장경제에 개입을 해서 구조조정을 격려하고, 그 역작용인 실업대책도 강구해야 합니다. 국민정부와 참여정부의 많은 정책 관여자들은 글로벌 시대라는 이유로 혹은 선진국들의 예를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저절로 해결될 텐데 자꾸 정부가 개입하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시장체제가 만족스럽게 확립되지 않은 경제에서는 정부가 어느 정도는 개입을 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야 경제를 시장에 맡기되, 대통령은 개혁주체를 잘 정비하고, 그들에게 구조조정 작업 권한을 상당한 수준으로 부여해야합니다. 즉 구조조정만은 정부가 일정수준에서 개입하는 개혁적 케인즈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가 확립된 곳에서 거시 경기가 나쁠 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케인즈주의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입장이 시장주의입니다. 기본적인 케인즈주의라고 하는 것은 ‘시장이 확립된 경제에서 거시 경기적 상황이 과도하게 끓으면 진정시키고, 지나치게 냉각되면 부양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확립되지 않은 곳에서는, 거시적 케인즈 정책뿐만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시장 확립을 위한 제도의 개편 등을 하는 미시적 케인즈주의도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결국 한 마디로 말해서, 실물이건 금융이건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구조조정은 간단하게 두 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물기업이건 금융기업이건 그 활동상황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잘 되는 기업은 시장에서 보상을 받고, 잘 안 되는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기업은 문닫고 싶은데 정부가 사회적 충격을 고려해서 못 닫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정부는 문을 닫기 원하지만 기업이 문을 닫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재벌 그룹이 소유한 4-5개 기업 가운데, 한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이 3년 이상 1 미만이라고 합시다. 그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런데, 재벌 그룹의 본부에서 그 기업을 키우고 싶어서, 잘 되는 타기업의 이윤을 그 쪽으로 돌리고, 망하지 않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적인 자원배분 측면에서 그런 행위는 옳지 않습니다. 정부는 문 닫으려는 기업이 있으면 그대로 문 닫게 두고, 또 재벌 그룹 내의 망해야 기업들은 문을 닫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투명성과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큰 부작용은 말할 것도 없이 실업입니다. 정부는 실업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회 안전망 확충을 비롯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6.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과제 - 인적자원 재구축으로서의 교육 혁신

한국 경제가 이와 같은 경제정책 외에 중?장기적 대책의 하나로 역점을 두어야 할 중요한 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육정책, 즉 인적자원의 재구축정책입니다. 지난 7월 하순에 ‘차세대 성장엔진’에 관한 국제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기 소르망이나 폴 로머 같은 발표자들 모두가 ‘교육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제대로 교육받은 인적자원이 경제운영의 핵심 엔진’이라는 평소의 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세계가 개방되었기 때문에 자본부족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이 모자라면, 외국자본을 유치할 환경을 조성하면 됩니다. 하지만 WTO 체제 하에서조차도 사람의 이동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인적자원은 우리가 개발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인적자원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좋을 지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몇 가지만 추려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한국 대학의 현실과 문제들을 지적해보고, 이 문제들을 타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대학의 구조조정과 선발방법의 다양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6-1. 한국 대학의 현실

과거 3?40년 동안,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의 지식격차가 컸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우리의 대학들은 선진과학과 기술을 전수하고 확산하는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여 왔습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교수들로부터 선진지식을 습득하고, 사회 각 곳으로 진출하였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전 분야에 확산시킴으로써, 자본과 자원이 모두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연 8%의 고도성장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대학은 경제성장의 동인이 될 수 있는 인적자원을 성공적으로 양성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을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잘 안 되는 대학은 문을 닫고, 지금 잘 되는 대학도 정원을 줄여야 하겠습니다.

우선 방만하게 늘어난 대학원 규모부터라도 줄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 서울대 대학원생 수가 1만 천명인데, 세상에서 이렇게 큰 대학원이 많지 않습니다. 숫자로 비슷한 대학이 하버드대와 콜럼비아대학인데, 그 대학들의 경우도 특수대학원인 법대?상경대?신학대?의대등의 대학원생을 제외하면, 일반대학원생 숫자는 3-4천명에 불과합니다. 다음으로 학부생 정원 축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대는 그동안 정원을 감축하였지만, 현재도 매년 4천명 정도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연대와 고대는 각각 5000명 이상씩 입학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세 대학에서 1년 동안 약 만 오천여 명이 입학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 하바드 대학의 경우에 1년에 1,500명 뽑습니다. 예일대는 1,300명을, 프린스턴 대학은 1,200명을 선발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좋고 크다는 10개정도 사립대학에서 배출되는 학생 수가 1만 명을 크게 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학생 수를 줄이고 더 잘 교육해야겠는데, 어떤 학생을 가르칠 뽑을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선발하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신입생들을 다양한 출신지역에서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전국의 행정구역이 232개인데, 서울대에 학생을 하나도 못 넣는 행정구역이 72개나 됩니다. 20년 후에 한국의 지도자들이 지역적으로 골고루 퍼지게끔, 서울대는 다양한 지역출신의 학생들을 균형적으로 선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출신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모아놓으면 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부수효과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간접경험을 나누어 가지며, 이질적인 문화 자본을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다양한 지역의 학생들을 균형적으로 선발한다는 의미의 ‘지역 균형제’라는 입시제도가 탄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각 지역에 최소 5명의 쿼터를 배정하려 했으나, 현실적 난점이 있었고, 생각 끝에 내신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로 했습니다. 서울보다는 지방 고등학교에서 내신 1등을 하기가 쉬울 것이므로, 지방학생들이 지역 균형제에서는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사전에 내신으로만 학생을 뽑으면, 사후적으로는 전국에서 골고루 합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신입생 정원 4,000명 중에 800명 정도만 이런 방식, 즉 지역 균형제 하에서 뽑기로 하였습니다.

그 외에 서울대는 수능만 잘하는 사람,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사람들도 뽑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두 잘 하는 평균인을 뽑던 입시제도에서 다양한 기준에서 다양한 재능을 갖춘 사람을 뽑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학부모님들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서, 경시학원을 조장하는 ‘국내’ 올림피아드 입상경력이라든지 과외를 하고 만든다는 자기소개서, 돈주고 만든다는 추천서 같은 것들은 입시자료에서 모두 폐지하였습니다.

저는 이 방법을 다른 대학교에도 권장하고 싶습니다. 방법은 다르나, 외대나 경북대에서도 이런 방식을 도입하려고 한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지역균형선발제를 통해 서울대가 지방인재를 독식하려고 한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지역균형선발제는 입학정원 내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입니다. 지역균형 선발제 때문에 불합격한 우수학생들은 타대학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인재독식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의미있는 새 선발기준을 개발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다양한 기준에서 학생들을 뽑아 놓으면, 그들이 다양한 환경에 자극받아 창의성을 개발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7. 나가며

실물부문에서의 구조조정, 금융구조부문에서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단ㆍ중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시정책은 아주 단기적인 것이고, 구조조정은 중기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우수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것은 장기적 대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인력양성을 주도하는 교육이 기존의 방식 위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교육에 접근해야할 때입니다.

사실 대학은 전문지식 뿐 아니라 지식, 지혜, 자긍심, 자기통제력, 사명감, 타인에 대한 감수성, 비판정신 등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창의성의 토양을 개발하고 경륜을 키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완수해야만, 비로소 한국의 미래가 밝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정보화 사회가 가속화 할수록 개별지식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판별할 수 있는 감식안과 종합적 판단력을 갖춘 인재가 요구됩니다.

또한 대학의 교육은 전문지식의 전수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과 연관해서 정의, 고결함, 도덕관념, 책임감, 의무감, 그리고 지도력의 가치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행하는 역할과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과과정을 개발하고,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적절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학이 기능을 제대로 하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재정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예컨대 학생 1인당 교육경비, 교수와 학생의 비율, 도서관의 장서 수 등의 제고를 위해 과감한 교육투자가 이뤄져야 하며 그래야 한국경제는 장기적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의 분위기는 학생들을 전통적인 학문 탐구보다는 자격증 획득에 더 관심을 보이도록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건강하고 본질적인 지식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기초학문의 지원이 시행되지 않으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빈칸 밖에서 사고하는 창조적 능력의 습득은 요원해지고 그럴수록 새로운 지식창출은 어렵게 됩니다. 현재로서는 연구지원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일부 분야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연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려면 학문 전반적의 영역에서 기존연구자들이나 학문 후속세대들을 위한 지원체제가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학은 교육인적자원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으로 발전해나갈 기회를 갖게 되었으면 합니다. 재능있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나 혁신적인 교과과정을 만드는데 있어서나 제한이 있어선 곤란합니다. 최근 대학의 자율성이 다소 인정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학의 유연성과 능력을 제한하는 부차적인 규정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에 자율성을 더욱 허용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와 대학에 대한 저의 제안들이 잘 시행된다면 앞으로 한국의 미래는 희망이 있습니다. 세계 어딜 가보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바람들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 되어서, 한국경제나 대학이 어려움을 겪을 우려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방향으로 노력을 한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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