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는,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의무와 명분으로는 약합니다. 단순한 진보적인 의식만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정말 내가 잘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모두 다 버리고 떠나도, 나 혼자서도 스스로 주어진 삶을 갈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일에 자신을 올인해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주변의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영성의 깊이를 더해가십시오.’ 특별히 명상을 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고, 일기를 쓰고,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고, 여행을 하고,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깊이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지 않으면, 습관이 나를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당위가 나를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더 이상 진보하고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늘 깨어서, 나의 작은 의식과 삶까지도 성찰하고, 새롭게 반응해 나갈 때만이 끝까지 푸르고, 성장해 나가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평생공부를 해 나가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 앞으로의 삶에 플러스의 효과를 잠시 줄 수는 있으나, 보장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진짜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대학 때는 최소 200권 정도의 책을 읽어내고, 졸업 후에는 의무적인 공부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서, 꾸준히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급변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공부가 없이는, 진정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공부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삶의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공부여야 하고, 나아가 깊은 묵상으로까지 이어져, 삶으로 나타날 수 있는 지혜의 공부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 공부는 곧 인격의 변화와 성숙으로까지 나타날 수 있는 공부여야 합니다.
네 번째는, ‘몸 수련을 해 나가십시오.’ 젊을 때는 잘 못 느끼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 통하지 않는 진리는 공허함을 알게 됩니다. 몸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기독교의 복음주의적인 전통에서는 몸에 대한 강조가 없습니다. 오직 영에 대한 강조만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에서는, 몸을 닦는 것이 곧 영혼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몸과 영혼은 분리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운동이건, 어떤 수련이든 한가지는 꼭 붙들고 가야 합니다. 먹는 것도 아무거나, 그냥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고 먹는 것이 아니라, 깨어서 잘 먹고, 잘 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몸을 가볍게 만들어 가는 일, 우리의 삶에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다섯 번째는, ‘관계능력을 키워가십시오.’ 젊을 때는 지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높은 책임의 자리를 맡아 갈수록, 그 사람이 관계할 수 있는 능력이 어떠하냐, 그 사람이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을 만나고, 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한 사람의 깊은 부분과 만나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그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그런 만남에서 만이 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남에서 만이, 외롭지 않은 깊은 사랑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또한 용서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 내 마음에서 용서하고, 품어 안을 수 있는 그런 큰 마음을 키워갈 때만이, 사람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는, ‘나눔과 연대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나중에 뭔가 갖추게 되면, 돈이 있으면, 시간이 생기면 이 아니라, 지금 작은 것부터, 나눌 수 있는 것부터 나누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 땅에서 소외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과의 깊은 일치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놓치지 않고, 지금의 나의 자리에서 그런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거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기도 하지만, 설사 그렇지 못해도 나의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런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이야말로 나 자신이 더욱 더 성장해 나가고, 이 세상이 변화되어 가는 지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온전한 복음, 총체적 복음화가 단순히 사회적인 변화와 혁명의 차원만이 아니라, 나의 깊은 존재의 변화, 나의 몸 생활의 변화, 그리고 나의 내면의 막힌 감성의 깨어남과 사고의 변화까지 함께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전 존재적이면서도 전면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시대의 혁명은 단순히 의식만이 아니라, 과격한 것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부드럽게 그리고 긴 호흡으로, 안과 밖이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으로 깊이 살아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날 때, 이 세상은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을 깨워내고, 키워내는 운동이 이어질 때, 이 세상은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한기연이라는 이름은 역사에만 남고, 사라진다 할지라도, 이런 비전과 희망과 정신만큼은 우리의 뱃속 깊은 곳에서 흘러 흘러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