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뭐야?
장하준 교수의 최근 경제 진단 (2008. 07. 연합뉴스)
leejoosuk
2008. 7. 11. 17:08
-- 원유 가격이 1년 사이에 배가 올랐습니다. 그 배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고유가 시대의 경제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요.
▲ 궁극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유가 상승의 원인은 중국, 인도 등 고성장에 힘 입은 수요 증가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멕시코 등 일부 산유국의 생산설비 노후화, 그리고 전 세계적인 정유시설의 부족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물시장의 발달로 투기적 요소가 개입되어 실제 필요한 것보다도 가격이 더 오르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유가에 대한 단기대책은 석유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및 소비 전반을 줄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경기하강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지요.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는 것은 환경에도 좋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 고유가가 지속된다는 주장과 하반기나 내년에 가면 10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는데요.
▲ 계속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격이 높아지면 채산성 없던 유전도 개발하게 되고, 채굴이나 정유시설에 대한 투자도 늘어납니다. 그렇게 하여 중장기적으로는 공급이 늘고, 그에 따라 어느 점에 이르면 가격이 안정이 됩니다. 그러나 공급 능력의 증가가 얼마나 빨리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고, 이에 더해 투기에 의한 가격상승분이 얼마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어디까지 유가가 다시 떨어질지를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 고유가 시대의 대응과 관련해 에너지 효율화와 에너지 절약,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이 영국에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우리가 채택하면 좋은 것이 있는지요.
▲ 영국은 에너지 효율화를 위하여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만, 모범사례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북구권 나라들이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사례들은 모르겠습니다. 영국 등 유럽 나라들의 취약계층 지원은 광범위한 복지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간다고 바로 대응정책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 겨울이 되면 특히 빈곤층 노인들에게 난방연료에 대한 보조를 늘리는 등 수단을 취할 것입니다.
--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경제와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하도 금융기법이 발달하다 보니, 서브 프라임 채권을 조각 내어 여기저기 끼워 팔았고, 그 때문에 서브 프라임 채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거시경제는 심리적 요소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더 예측하기가 힘들지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분간 미국 경기는 지금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가 어려워지면, 대미국 수출 의존도가 큰 중국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우리의 첫째 수출시장인 중국과 셋째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중국은 자산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어서, 특히 미국에 대한 수출 하락으로 실물경기가 꺼지기 시작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이미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경기는 후퇴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하에서 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어떤 정책으로 대응해야 합니까.
▲ 지금과 같이 외부에서 충격이 오면 물가를 관리할 방책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개별 품목의 물가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 그들의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고유가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 고환율 정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고환율 정책을 통해 원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수입 물가는 오르지만 수출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금 국제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더 고환율 정책을 써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워낙 외부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커서 고환율 정책을 쓰면 수입물가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민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은 무역적자가 좀 나도 환율을 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도 국제수지 적자가 너무 커지면 또 방향을 바꿔야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현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물가를 잡는 것이 지상의 과제는 아닙니다. 물가를 잡으려고 경기를 냉각시키면, 그 과정에서 도산하는 기업도 나오고 실업자도 나옵니다. 물가가 조금 낮아지면 전 국민이 조금씩 덕을 보겠지만, 그 과정에서 큰 손해를 보는 일부의 사람들이 나온다는 말이지요. 물가를 잡기 위해 얼마만큼의 기업파산과 노동자 실업을 감수해야 하는가는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물가와 성장 중 무조건 한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보십니까.
▲ 사실 일시적인 물가상승이나 경기침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우리 경제의 체질이 상당히 허약해 졌다는 것입니다.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기업부채는 줄었지만,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늘어, 국민의 일상생활이 거시경제지표의 변동에 더 민감해졌습니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늘려 놓은 정부부채도 만만치 않아 만일 경제가 위기 상황에 빠지면 재정정책을 통해 그에 대응하는데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더 제약이 큽니다.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도 아직 거품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거품이 천천히 빠지면 괜찮지만, 지금과 같이 급격히 빠지면 후유증이 매우 클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는,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투자가 부진하여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 FTA에 반대입장을 피력해오셨습니다만 FTA를 피할 수 없다면 어떤 대응과 준비가 필요합니까.
▲ FTA를 피할 수 없다는 ’신화’부터 깨야 합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해온 것과는 달리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는 중동, 중미 등 미국에 매달리지 않으면 살기 힘든 나라들을 제외하면 호주, 싱가포르 정도입니다. FTA가 ’대세’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대세’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한-미, 한-EU 등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은 진정한 자유무역도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과 FTA를 맺어 미국 쇠고기와 자동차를 더 수입한다면, 호주 쇠고기와 일본 차에 대해 차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무역주의자로 유명한 美 콜롬비아 대학 바그와티(Bhagwati) 교수조차도 양자간, 혹은 지역에 국한된 FTA는 진정한 다자적 자유무역질서를 해치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쇠고기문제와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인간 광우병이 가장 먼저 발병했던 영국으로부터 우리가 배우거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 있는지요.
▲ 광우병의 위험성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90년대에 광우병의 원조였던 영국은 그를 극복하기 위해 수십만 마리의 소를 도살하여 태워버리는 극단적 조치를 썼고, 그 이후 인간 광우병의 발병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광우병의 정확한 잠복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광우병의 위험이 큰 것은 아닐지라도,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위험이 낮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을 자극한 것은 쇠고기 자체보다도 정부의 태도라고 봅니다. 정부가 한미 FTA를 조급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해 놓고, 비판 여론이 일자, 자신들의 잘못은 감추고 국민이 무지해서 잘 모르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받아친 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정책의 내용보다도 정책의 추진 방식이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영국에서 광우병이 일어난 것은 대처 정부 때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소에게 먹이는 동물성 사료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규제완화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입니다.
--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 요구되는 국가 지도력은 어떤 것입니까.
▲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된 저성장과 양극화, 그리고 계급구조의 고착으로 어느 때보다도 잠재적 갈등 수위가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군림하는 스타일로 통치를 하면 갈등이 더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불순분자’나 무식한 사람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남의 의견을 겸허히 듣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 신자유주의 여파로 빈부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님이 언급하신 사회적 대타협은 더욱 어렵지 않겠습니까.
▲ 사회적 대타협을 하자고 하는 이유는 바로 양극화와 그에 따른 갈등을 줄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년 전 제가 사회적 대타협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비해,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사회적 대타협의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상황이 심각할 때 도리어 큰 타협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1938년 사회적 대타협으로 유명한 스웨덴도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파업율이 가장 높은, 갈등의 골이 깊은 사회였습니다.
-- 저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 지금 현재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만, 이런 저런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학술서적도 생각하고 있고,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이 워낙 묘한 물건이어서, 다음 번 책을 언제 정확히 어떤 형태로 쓰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시장의 입장에서는 신간이 곧 나옵니다. 2004년 미국 덴버대학의 아일린 그레이블 (Ilene Grabel) 교수와 같이 썼던 ’발전을 다시 요구한다’(Reclaiming Development)라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곧 나올 예정입니다. 이 책은, 그 부제인 ’대안적인 정책 지침서’(An Alternative Policy Manual)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발도상국 정책입안자들에게 주요 분야에 있어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한계를 설명하고,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적 정책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를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 장하준 교수는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90년 10월 만 27세의 나이로 이 대학교수가 됐다. 2002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의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꼬집으면서, 그들의 위선적인 세계화를 고발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출간했다. 이어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뮈르달상’을 한국인 처음으로 받았으며, 2005년에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최연소로 수상,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 경제’ 등이 있다.
▲ 궁극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유가 상승의 원인은 중국, 인도 등 고성장에 힘 입은 수요 증가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멕시코 등 일부 산유국의 생산설비 노후화, 그리고 전 세계적인 정유시설의 부족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물시장의 발달로 투기적 요소가 개입되어 실제 필요한 것보다도 가격이 더 오르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유가에 대한 단기대책은 석유 소비를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산 및 소비 전반을 줄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경기하강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지요.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는 것은 환경에도 좋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 고유가가 지속된다는 주장과 하반기나 내년에 가면 100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는데요.
▲ 계속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격이 높아지면 채산성 없던 유전도 개발하게 되고, 채굴이나 정유시설에 대한 투자도 늘어납니다. 그렇게 하여 중장기적으로는 공급이 늘고, 그에 따라 어느 점에 이르면 가격이 안정이 됩니다. 그러나 공급 능력의 증가가 얼마나 빨리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고, 이에 더해 투기에 의한 가격상승분이 얼마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어디까지 유가가 다시 떨어질지를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 고유가 시대의 대응과 관련해 에너지 효율화와 에너지 절약,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이 영국에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우리가 채택하면 좋은 것이 있는지요.
▲ 영국은 에너지 효율화를 위하여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만, 모범사례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북구권 나라들이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사례들은 모르겠습니다. 영국 등 유럽 나라들의 취약계층 지원은 광범위한 복지제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가가 올라간다고 바로 대응정책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 겨울이 되면 특히 빈곤층 노인들에게 난방연료에 대한 보조를 늘리는 등 수단을 취할 것입니다.
--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경제와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하도 금융기법이 발달하다 보니, 서브 프라임 채권을 조각 내어 여기저기 끼워 팔았고, 그 때문에 서브 프라임 채권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거시경제는 심리적 요소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더 예측하기가 힘들지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당분간 미국 경기는 지금 1929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가 어려워지면, 대미국 수출 의존도가 큰 중국이 가라앉을 것입니다. 우리의 첫째 수출시장인 중국과 셋째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가 좋지 않으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중국은 자산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어서, 특히 미국에 대한 수출 하락으로 실물경기가 꺼지기 시작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이미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경기는 후퇴하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하에서 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어떤 정책으로 대응해야 합니까.
▲ 지금과 같이 외부에서 충격이 오면 물가를 관리할 방책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개별 품목의 물가를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늘려 그들의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고유가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 고환율 정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고환율 정책을 통해 원화의 가치가 낮아지면, 수입 물가는 오르지만 수출은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금 국제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더 고환율 정책을 써서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워낙 외부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커서 고환율 정책을 쓰면 수입물가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국민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은 무역적자가 좀 나도 환율을 내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도 국제수지 적자가 너무 커지면 또 방향을 바꿔야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현재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물가를 잡는 것이 지상의 과제는 아닙니다. 물가를 잡으려고 경기를 냉각시키면, 그 과정에서 도산하는 기업도 나오고 실업자도 나옵니다. 물가가 조금 낮아지면 전 국민이 조금씩 덕을 보겠지만, 그 과정에서 큰 손해를 보는 일부의 사람들이 나온다는 말이지요. 물가를 잡기 위해 얼마만큼의 기업파산과 노동자 실업을 감수해야 하는가는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따라서 물가와 성장 중 무조건 한 쪽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한국경제가 위기라고 보십니까.
▲ 사실 일시적인 물가상승이나 경기침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우리 경제의 체질이 상당히 허약해 졌다는 것입니다. 외환위기 이전과 비교해 기업부채는 줄었지만,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늘어, 국민의 일상생활이 거시경제지표의 변동에 더 민감해졌습니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늘려 놓은 정부부채도 만만치 않아 만일 경제가 위기 상황에 빠지면 재정정책을 통해 그에 대응하는데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더 제약이 큽니다.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도 아직 거품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거품이 천천히 빠지면 괜찮지만, 지금과 같이 급격히 빠지면 후유증이 매우 클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볼 때는, 무엇보다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투자가 부진하여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 FTA에 반대입장을 피력해오셨습니다만 FTA를 피할 수 없다면 어떤 대응과 준비가 필요합니까.
▲ FTA를 피할 수 없다는 ’신화’부터 깨야 합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해온 것과는 달리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는 중동, 중미 등 미국에 매달리지 않으면 살기 힘든 나라들을 제외하면 호주, 싱가포르 정도입니다. FTA가 ’대세’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대세’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한-미, 한-EU 등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은 진정한 자유무역도 아닙니다. 우리가 미국과 FTA를 맺어 미국 쇠고기와 자동차를 더 수입한다면, 호주 쇠고기와 일본 차에 대해 차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무역주의자로 유명한 美 콜롬비아 대학 바그와티(Bhagwati) 교수조차도 양자간, 혹은 지역에 국한된 FTA는 진정한 다자적 자유무역질서를 해치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 쇠고기문제와 촛불집회를 어떻게 보십니까. 인간 광우병이 가장 먼저 발병했던 영국으로부터 우리가 배우거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 있는지요.
▲ 광우병의 위험성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90년대에 광우병의 원조였던 영국은 그를 극복하기 위해 수십만 마리의 소를 도살하여 태워버리는 극단적 조치를 썼고, 그 이후 인간 광우병의 발병은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광우병의 정확한 잠복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광우병의 위험이 큰 것은 아닐지라도,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위험이 낮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을 자극한 것은 쇠고기 자체보다도 정부의 태도라고 봅니다. 정부가 한미 FTA를 조급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쇠고기 협상을 졸속으로 해 놓고, 비판 여론이 일자, 자신들의 잘못은 감추고 국민이 무지해서 잘 모르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받아친 것이 문제였다고 봅니다. 정책의 내용보다도 정책의 추진 방식이 문제였다는 것이지요.
영국에서 광우병이 일어난 것은 대처 정부 때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소에게 먹이는 동물성 사료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규제완화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입니다.
--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 요구되는 국가 지도력은 어떤 것입니까.
▲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년 동안 진행된 저성장과 양극화, 그리고 계급구조의 고착으로 어느 때보다도 잠재적 갈등 수위가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군림하는 스타일로 통치를 하면 갈등이 더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불순분자’나 무식한 사람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남의 의견을 겸허히 듣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 신자유주의 여파로 빈부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님이 언급하신 사회적 대타협은 더욱 어렵지 않겠습니까.
▲ 사회적 대타협을 하자고 하는 이유는 바로 양극화와 그에 따른 갈등을 줄이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년 전 제가 사회적 대타협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 비해,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사회적 대타협의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상황이 심각할 때 도리어 큰 타협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1938년 사회적 대타협으로 유명한 스웨덴도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파업율이 가장 높은, 갈등의 골이 깊은 사회였습니다.
-- 저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 지금 현재 확정된 것은 없습니다만, 이런 저런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학술서적도 생각하고 있고,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이라는 것이 워낙 묘한 물건이어서, 다음 번 책을 언제 정확히 어떤 형태로 쓰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시장의 입장에서는 신간이 곧 나옵니다. 2004년 미국 덴버대학의 아일린 그레이블 (Ilene Grabel) 교수와 같이 썼던 ’발전을 다시 요구한다’(Reclaiming Development)라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곧 나올 예정입니다. 이 책은, 그 부제인 ’대안적인 정책 지침서’(An Alternative Policy Manual)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발도상국 정책입안자들에게 주요 분야에 있어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한계를 설명하고,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적 정책들이 있는가, 그리고 그를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책입니다.
◇ 장하준 교수는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90년 10월 만 27세의 나이로 이 대학교수가 됐다. 2002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의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꼬집으면서, 그들의 위선적인 세계화를 고발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출간했다. 이어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어지는 ’뮈르달상’을 한국인 처음으로 받았으며, 2005년에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에게 수여하는 ’레온티예프상’을 최연소로 수상,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개혁의 덫’, ’쾌도난마 한국 경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