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봐/김두식

순종하면 일이 더 안된다?

leejoosuk 2008. 3. 4. 11:04

요즘은 사도행전을 묵상중입니다.

16장에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 나오더군요.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가서 복음 전하려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신 후, 그는 밤중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아시아가 아니라 반대방향이라 할 수 있는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서는 자기를 청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곧 마케도니아로 가게 됩니다. 워낙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인 그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케도니아 첫 지경인 빌립보에 바울이 도착하는 순간, 처음 일어난 사건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바로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고쳐준 후 그 주인들의 무고로 감옥에 갇힌 것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뿐 아니라 무지하게 얻어터지기까지 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결과가 기껏 얻어터지고 옥에 갇히는 것이라니... 그 밤에 바울과 실라가 보여준 태도도 인상적입니다. 그 상황에서 기도하고 찬미한다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그리고,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립니다.

죄수 탈옥시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간수가 자살을 기도하는 순간, 사도 바울은 그 유명한 한 마디를 던지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편지한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인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감옥에 갇혀 밤새껏 찬양할 수 있었던 사람이나 쓸 수 있는 권면의 말인 것이지요. 감옥에 갇혀서도 담대히 구원의 복음을 외친 바울의 인생은 그 이후에도 참 더럽게 안 풀립니다. 맨날 감옥 아니면, 얻어터지고, 살해기도를 모면하는 일들만 벌어지니까요.

사실,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해서, 즉시 하늘에서 돈벼락이 내리거나 병이 낳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축복의 개념 자체가 우리 생각과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간 이후 처음 만난 것도 돈벼락이 아니라 무서운 기근이었습니다(창12장).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지내면서 처음 겪은 일도 시냇물이 마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과부집에 얹혀지내게 된 후에는 그 집 아들이 죽는 일까지 생기지요. 물론,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도 있었고,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일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왕상 17장).

작년에 처음 미국으로 올 때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멀쩡한 직장을 팽개치고 떠난다고 해서 미친 놈 소리를 들으면서도 결정을 밀어부칠 수 있었던 것은 그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곧 한국경제가 완전히 맛이 가더군요. 퇴직금으로 받은 것도 달러로 환산하면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공부전망도 매우 불투명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음성에 순종한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하는 회의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누구라도 떠나온 애굽을 그리워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아내가 미국정부에서 상당히 많은 액수의 장학금을 받게 되는 등 이곳 생활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어도, 제 개인적인 형편은 지금도 썩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급변하는 사회, 당분간은 돈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할 것이 분명한 한국의 복지정책 분야... 영어실력도 그렇고...

그러나, 오늘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믿고 하나님 음성에 순종해서 일이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우리가 갈 길이라면 그냥 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은 단기적인 것도 있지만, 아주 장기적인 것도 있다. 때로는 얻어터지고 망하는 것이 축복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내가 할 일은 눈앞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또다시 그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의 인생은 "한 번의 순종 - 영원한 축복"의 공식으로 정리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끝없는 순종 - 영원한 축복"인 것이지요. 그래서,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한 번 순종한 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두고온 애굽을 돌아보기보다는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또 순종하고, 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너무 초조해 하지도 말아야겠지요. 비록 바울이 아시아를 향한 복음 전파의 여정에 오르지는 못했어도, 끝내는 우리 귀에까지 복음이 들려왔습니다. 시간은 1800여년이 걸렸지만, 결국 우리도 그의 복음의 열매인 셈이지요.

모든 결과를 내 눈으로 보겠다는 욕심을 버리면, 여유가 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못하면 내 딸 희수라도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