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렁궁시렁/중얼중얼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leejoosuk
2009. 3. 12. 14:04
반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우린 깊은 애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그린 화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밀레는 하루 종일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편 채 이삭을 줍는 농촌의 가난한 여인들을 그렸습니다.
풍자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는 지치고 피곤한 몸을 삼등열차에 맡긴 도시의 가난한 민초들을 포착했습니다.
도로시아 랭은 배고픈 아이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감에 빠진 어머니, 그리고 뼈 빠지게 일해도 형편이 나아질 줄 모르는 노동자들의 암울한 상황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 따뜻한 가슴을 지닌 예술가들의 명단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고흐는 깊은 신앙심으로 성경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렘브란트의 성화와 정직하게 빈농의 삶을 그려냈던 밀레를 동경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영혼의 깊이는 이러한 신앙심과 가난한 이웃에 대한 이해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반 고흐의 영혼이 잘 투영된 한 작품을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보리나쥬라는 탄광촌에 머무르며 평신도로 전도와 봉사활동을 했던 시절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따듯한 사색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1885년 4월 30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이 같은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테오에게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 날짜에 맞춰 <감자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했지만 완성하진 못했다. 마지막 부분은 기억을 더듬어 그리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되겠지.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해 왔다.
강한 열의를 갖고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루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무어냐. '행동하고 창조하는 것‘ 아니냐.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 손은, 몸으로 하는 힘겨운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
나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황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는 충분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감자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한 농부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분위기의 것을 원하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 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진실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처녀는 날씨와 바람과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갖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숙녀의 옷을 걸친다면, 그녀의 개성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 이와 비슷하게, 봉부의 삶을 닮은 그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냄새, 비료냄새, 거름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겠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
분명 “웬 쓰레기 같은 그림이냐!”는 말을 들을게 뻔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있듯 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농촌생활을 그리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술과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반성을 하게 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밀레나 드그루 같은 화가들이 “더럽다, 저속하다, 추악하다, 악취가 난다” 등등의 빈정거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는 모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런 악평에 흔들린다면 치욕이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할 것이고,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가는 잊어야 한다. 자주 생각하는 문제인데, 농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명화된 세계보다 훨씬 더 낳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그들이 예술이나 다른 많은 것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 (....)
이 그림에 빠져 지내느라 이사해야 한다는 것도 잊을 뻔 헸다. 이사에도 신경을 써야했을텐데,
걱정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런 장르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워낙 할 일이 많아 다른 화가보다 편하게 자내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런 화가들도 어떤 식으로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이상, 나도 물리적인 어려움으로 잠시 주저할 수는 있겠지만, 파괴되거나 침식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어쩔 수 있겠니.
나는 <감자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너도 알다시피, 근래 몇일 간은 물감 때문에 고생했다.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는 그림을 망칠 각오를 하지 않고는 붓질 한번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정할 때는 작은 붓으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해야 했다. 가끔 그림을 친구에게 가져가서 혹시 내가 그림을 망치는 건 아닌지 물어본 것도 이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너도 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걸 곧 확실하게 알게 될 거다. 네 생일에 맞추지 못해 절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1885년 4월 30일.
우린 깊은 애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그린 화가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밀레는 하루 종일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편 채 이삭을 줍는 농촌의 가난한 여인들을 그렸습니다.
풍자화가였던 오노레 도미에는 지치고 피곤한 몸을 삼등열차에 맡긴 도시의 가난한 민초들을 포착했습니다.
도로시아 랭은 배고픈 아이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력감에 빠진 어머니, 그리고 뼈 빠지게 일해도 형편이 나아질 줄 모르는 노동자들의 암울한 상황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 따뜻한 가슴을 지닌 예술가들의 명단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젊은 시절 고흐는 깊은 신앙심으로 성경을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렘브란트의 성화와 정직하게 빈농의 삶을 그려냈던 밀레를 동경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영혼의 깊이는 이러한 신앙심과 가난한 이웃에 대한 이해에서 유래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반 고흐의 영혼이 잘 투영된 한 작품을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보리나쥬라는 탄광촌에 머무르며 평신도로 전도와 봉사활동을 했던 시절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는 삶과 예술에 대한 따듯한 사색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1885년 4월 30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이 같은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테오에게
네 생일을 맞아, 늘 건강하고 마음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란다. 오늘 날짜에 맞춰 <감자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잘 진행되긴 했지만 완성하진 못했다. 마지막 부분은 기억을 더듬어 그리니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되겠지.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해 왔다.
강한 열의를 갖고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루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무어냐. '행동하고 창조하는 것‘ 아니냐.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 손은, 몸으로 하는 힘겨운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
나는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황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는 충분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감자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한 농부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분위기의 것을 원하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 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진실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있고, 먼지로 뒤덮인 푸른색 스커트와 상의를 입은 시골처녀는 날씨와 바람과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을 갖고 있을 때 숙녀보다 더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숙녀의 옷을 걸친다면, 그녀의 개성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또 이와 비슷하게, 봉부의 삶을 닮은 그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냄새, 비료냄새, 거름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겠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
분명 “웬 쓰레기 같은 그림이냐!”는 말을 들을게 뻔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있듯 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농촌생활을 그리는 건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예술과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지한 반성을 하게 될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밀레나 드그루 같은 화가들이 “더럽다, 저속하다, 추악하다, 악취가 난다” 등등의 빈정거림에 아랑곳 하지 않고, 꾸준히 작업하는 모범을 보였는데, 내가 그런 악평에 흔들린다면 치욕이 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농부를 그리려면, 자신이 농부인 것처럼 그려야 할 것이고, 농부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그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가는 잊어야 한다. 자주 생각하는 문제인데, 농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문명화된 세계보다 훨씬 더 낳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점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그들이 예술이나 다른 많은 것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 (....)
이 그림에 빠져 지내느라 이사해야 한다는 것도 잊을 뻔 헸다. 이사에도 신경을 써야했을텐데,
걱정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런 장르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워낙 할 일이 많아 다른 화가보다 편하게 자내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런 화가들도 어떤 식으로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이상, 나도 물리적인 어려움으로 잠시 주저할 수는 있겠지만, 파괴되거나 침식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어쩔 수 있겠니.
나는 <감자먹는 사람들>이 아주 좋은 작품이 되리라 믿는다. 너도 알다시피, 근래 몇일 간은 물감 때문에 고생했다. 물감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는 그림을 망칠 각오를 하지 않고는 붓질 한번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정할 때는 작은 붓으로 냉정하고 침착하게 해야 했다. 가끔 그림을 친구에게 가져가서 혹시 내가 그림을 망치는 건 아닌지 물어본 것도 이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너도 내 그림이 독창적이라는 걸 곧 확실하게 알게 될 거다. 네 생일에 맞추지 못해 절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1885년 4월 30일.